'나 이런 곳은 처음이라…' '여기 불은 어떻게 켜?
버튼이 왜 이렇게 많아?' 모텔이 어색한 여자. 아니, 어색한 척하는 여자. 처음인 척하는 여자. 원래는 아는 사람들만 아는 그런 우스갯거리에 불과했는데 이제는 개그 소재로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하나의 밈처럼 굳어버려 모두가 아는 '처음인 척하는 여자'. 많은 여자들이 처음인 척을 한다. 하지만 불편한 진실이 있다. 처음인 여자는 없다. 여자가 처음인 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모텔에 처음 가 보는 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섹스 많이 해 본 티를 내면 정이 떨어지니까? 경험이 많은 여자는 문란해 보일까 봐?
내 남자에게 처음을 주는 '척'하면 더 사랑받을 수 있을까 봐?
속는 사람은 없고 속이는 사람만 있다. 가끔 속는 순진한 남자도 있다. 나도 그렇게 속았던 적이 있다.
모텔이 익숙한 '척'하는 남자. 카드를 꽂고 불을 켜고 버튼을 잘못 누르고. 전체등이 꺼졌다가 켜졌다가. 화장실 불을 켜려고 하다가 중앙등이 꺼지고, 샤워기를 켜려고 하다가 천장에 달린 샤워기가 켜져서 머리가 다 젖는다.
뚝딱거리지만 할 건 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선다. 콘돔을 베개에 숨긴다. 콘돔 가지고 오겠다는 핑계로 흐름을 끊으면 없어 보이니까. 여자가 씻으러 들어가면 조명을 어둡게 바꾸고 노래를 튼다. 능숙한 남자는 없다.
그러니까 능숙해 보이고 싶은 남자는 있어도 처음부터 능숙한 남자는 없다. 남자가 능숙한 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처음인 척하면 매력이 떨어져 보이니까? 능숙해 보여야 매력이 더해지나?
능숙한 척이라도 하다 보면 능숙한 사람이 된다. 능숙해지기 위해서는 능숙한 '척'이 반드시 필요하다. 남자가 거짓말하는 것을 아는 여자도 있다.
그럼에도 눈을 감아 준다. 미숙한 사람이 능숙한 척하는 게 귀여워서일까.
여자는 만나던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새 남자친구를 만들었다. 어릴 때는 손잡기까지 가는 것도 쉽지가 않았는데, 성인이 되고는 '술'이라는 좋은 재료 덕분에 진도를 빼는 데에 수월하다. 남자친구와 만난 지 오늘로 30일. 손은 처음 만난 날에 잡았고, 뽀뽀는 만난 지 2주 정도 되었을 때 했고, 키스는 아직. 주변 친구들은 여자를 보고 답답하단다. 만난 지가 언제인데 아직까지 뽀뽀만 했냐고, 우리가 무슨 애들이냐고 난리다. 맞는 말이지만 여자는 조급해 보이기 싫다. 안달 난 사람처럼 보이기 싫다. 그날도 여자는 남자친구와 술을 마신다. 오늘은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고 생각한다. 남자도 같은 생각이다. 오늘은 키스를 할 수 있겠지.
아니, 어쩌면 그 이상까지도. 남자의 머릿속은 뻔하다. 얘랑 자고 싶다.
자고 싶다. 자고 싶다. 여자도 같은 생각이다.
하지만 생각할 것들이 많다. 만난 지 한 달밖에 안 됐는데 섹스를 하면 나를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거 아니야?
아니, 한 달이면 만날 만큼 만났지.
아껴서 뭐 해?
한 번 하기 시작하면 질리게 할 텐데. 감정이 공존한다. 술도 마셨겠다. 남자는 여자를 꼬신다. 어차피 내일 일도 안 가는데 편하게 방 잡고 술이나 한잔 더 하자, 지금 취해서 집 들어가기가 어려우니 술 좀 깰 겸 쉬었다 가는 게 어떠냐. 여자는 못 이기는 척하며 모텔에 들어간다.
아, 방은 이미 남자가 예약했다고. 오빠, 여기 불은 어떻게 켜는 거야?
여자는 다시 처음인 척을 한다. '취한 척 좀 하던' 남자는 여자가 씻으러 간 사이에 주머니를 뒤져 콘돔을 꺼낸다. 미리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 놓고 티브이를 틀어 노래를 세팅한다. 그러는 동안 '취한 척'하던 여자는 샤워하는 척 물을 켜두고 화장을 고친다. 누가 봐도 둘 다 멀쩡한 상태.
샤워를 끝마친 남자는 가운까지 입고 나왔다. 양치하고 오겠다던 여자는 들어갈 때 복장 그대로 샤워실에서 나왔다. 불편하게 옷은 왜 그대로 입고 있냐는 남자의 물음에 여자는 답한다.
(웃음) 어차피 술만 마실 건데 뭘~ 남자가 씻고 나와 침대에 눕는다. 여자는 안 누울 것처럼 행동하다가 못 이기는 척 따라 눕는다. '오빠 나 이러려고 만나'와 같은 뻔한 말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하지만, 여자는 본인이 너무 가벼워 보이지 않을까 걱정한다. 그래서 최대한 모르는 척, 처음인 척, 또 그렇게 처음처럼. 분위기가 어느 순간 달아오른다. 그때 여자가 말한다.
나 아직 안 씻었잖아. 씻고 올게.
속는 사람은 없고 속이는 사람만 있는 게임.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그 이유를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알 수가 있다. 원래는 글로 줄줄이 나열하며 설명하려고 했지만, 긴 글 읽는 사람들이 없을 것 같으니 여자와 남자의 심리를 각각 번호 매겨 적으며 정리해 보도록 하겠다.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이다.
여자가 처음인 척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1.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나라는 유교 국가였다. '언제까지 유교 시절을 운운하며 우려먹을래?
질리지도 않냐?'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유교 정서가 뿌리박힌 나라에서 그 정서를 도려내기 쉽지 않다. 아직도 혼전순결을 강조하는 어른들이 있고, 치마 입고 돌아다니는 여자를 보고 혀를 차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2. 내 남자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사실 당연한 이야기다. 경험 많은 여자, 그러니까 '나' 아닌 다른 남자 많이 만난 여자보다는 내가 처음인 여자를 만나는 것이 좋다. 이건 어쩔 수 없는 남성의 본능이다. 여자는 이런 남성의 심리를 안다. 그래서 한 남자를 좋아하다 보면 그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본인의 과거를 숨기는 것이다.
3. 가벼워 보이기 싫어서가 아닐까?
모텔에 들어가자마자 카드를 꽂고 불을 타닥타닥 켜고, 가운 하나 들고 샤워하러 간 다음 남자를 먼저 덮친다면?
남자 입장에서는 '이 여자 뭐지'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적극적이면 능숙해 보이고, 그러면 자칫 가벼운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까, 이 사람이 나를 가벼운 관계로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여자는 처음인 척을 한다.
남자가 능숙한 척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1. 말 그대로 능숙해 보이기 위해서가 아닐까 남자와 반대로 여자는 '경험 많은 남자'를 선호한다는 설문 조사가 실제로 존재한다. 여러 여자가 이 남자에게 매력을 느끼고 선택했다는 사실이 오히려 매력으로 다가오나 보다. 그것을 본능적으로 아는 남자들은 어리숙한 척하지 않는다.
2. 뚝딱거리면 매력 없어 보일까 봐?
남자 나이 몇 살까지 모쏠이면 하자가 있는 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세상은 모쏠 남자에게 각박하다. 자칫 내 여자에게 내가 처음인 게 들킨다면, 이 여자가 내게 정이 떨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그런 걱정 때문에 처음인 남자도 능숙한 척을 한다.
3. 허세! 남자라면 대부분 어느 정도의 허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 미숙하지 않다, 나 연애 좀 많이 해 봤다, 여자 좀 많이 만나 봤다, 이런 것들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싶어서 부리는 허세라고 생각한다. 남자와 달리 여자는 '매력적인 남자'를 '많은 여자에게 선택받는 남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