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올여름만큼 애매한 여름은 또 처음이다. 장마가 한창이어야 할 시기에 장마는 애매하게 지나가며 많은 것들을 씻어내리지 못했고, 초여름에는 이런저런 일 때문에 나조차도 방황 아닌 방황을 하고 말았다. 여름을 타는 건 한 3년 만인 것 같다. 여름의 시간은 연말만큼이나 빠르게 흘러서 눈 깜짝하니 유월이었고, 유월 하순에는 웬 러브버그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고, 칠월이 오니 이제 바깥에 나가기 무서울 정도로 뜨거운 햇빛 때문에 쉽지가 않다.
내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그래서 최근 한두 달 동안에는 내 이야기를 많이 썼다. 쓰고 싶어서 썼다마는 다수 앞에 공개할 용기는 나질 않았다. 아무래도 보는 눈이 많다는 것을 의식하다 보니 자꾸 가리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한동안 내 개인 블로그를 거의 '쓰레기통' 취급해 가며 그곳에다 필터링 없는 내 생각을 비워냈다. 비우다 보니 벌써 칠월이다. 내가 했던 생각을 몇 개 꺼낸 뒤 정제하여 풀어보기 위해 글을 열었다.
2. 우리는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앞서 끝을 생각해야 한다. 시작보다 중요한 것이 끝맺음이다. 많은 사람들이 끝맺음을 어려워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끝은 후련하기도 하지만 두렵고 막막하다. 업무적인 측면에 있어 '용두사미'와 같은 특성을 보이지 않는 사람 중에서도 다른 일에 있어서는 매듭 짓기를 어려워하는 경우가 있고, 개인 간 관계에 있어 진득한 사람 중에서도 업무적인 측면에서는 용두사미 기질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이 사람의 끝맺음 방식과 저 사람의 끝맺음 방식은 다르다. 너의 방식과 나의 방식은 다르다. 이 사람 눈에는 저 사람이 '회피한다'고 보일 테고, 저 사람 눈에는 이 사람이 '극단적'이라고 보일 테다. 맺을 때 받는 시선을 감당할 수 있는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시작보다 끝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늘 끝을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3. 객기라는 것은 부릴 줄 아는 놈이 부려야 멋있는 것이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부리는 객기는 객기가 아니라 그저 '묘기'나 '밈'에 불과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러한 '객기 기믹'이 먹혔지만, 이제는 너무 식상하고 진부하다.
'나 특별해요' 몸부림치는 건 이제 통하지 않는다. 전부 반짝하고 질 것들이다. 열흘 잠시 피웠다가 져버릴 벚꽃이 될 바에야 일 년 내내 푸르른 잡초가 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숲이 아닌 나무에만 집중하다가는 나무 한 그루도 못 기른다. 객기라든가 퍼포먼스보다는 본질과 실질적인 발전에 집중하여 결과를 내놓는 편이 낫지 않은가!
4. 여행이나 한번 다녀올까 생각 중이다. 올해 내내 서울에만 있었다. 서울이 좋아 서울에 왔다마는 이제 새로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새로운 자극이 없기도 하고, 어디에 정착하여 마음을 두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이제는 서울이 너무 익숙하다.
어디 탁 트인 곳에 가서 소리라도 지르고 오려니 더워서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안 그래도 더위에 약한 내게 이런 무더위는 참 어렵기만 하다. 주변 보면 국내든 해외든 잘만 다니던데, 여행 안 가는 버릇 들여놓으니 움직이기가 쉽지 않구나.
마음만 먹으면 떠나는 건 금방인데 말이다
5. 쓰기 위해 살아야 한다. 읽기와 쓰기 중 무엇이 더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찰나의 고민도 않고 쓰기가 더 중요하다고 답할 것이다. '쓰기'가 가능한 다음 '읽기'가 이루어져야 진정 영양가 있는 '읽기'가 가능해진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무언가를 읽는다면, 읽어도 글의 내용이 머릿속에 남지 않고, 머릿속에 남는다고 한들 본인의 머릿속에 돌아다니는 그 내용을 누군가에게 설명해 줄 수도, 어딘가에 기록할 수도 없다. 많이 읽으면 잘 쓸 수 있다는 건 그저 가스라이팅에 불과하다. 물론 훌륭한 작가들의 작품을 읽으면 어느 정도 쓰기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겠지만, '쓰기'가 안 되는 상태에서 '읽기'로 실력을 키우려는 것은 좋지 못하다. '잘 쓰는 상태'가 된 이후에 읽어도 늦지 않다. 그전에 읽어 버리면 내 것이 아닌 채로 둥둥 떠다니게 된다.
6. 물욕을 버리고 나니 사람과의 대화에서 즐거움을 느낀다. 나는 내가 이렇게나 말이 많은 사람인 줄 처음 알았다. 군대서 성격이 바뀐 것인지, 원래 이런 성격이었는데 이제야 알게 된 것인지 잘 모르겠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다른 사람의 세계를 알 수 있어서 재밌다. 그것이 내 문학세계에 도움이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지만, 대개 도움이 되는 편에 속한다. 대화 잘 통하는 사람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온종일 떠들고 싶다
7. 남은 여름은 무엇으로 채워질까. 이 한여름은 또 무엇으로 장식될까. 세상에는 알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당장 내 앞에 있는 사람의 마음은커녕 내 마음조차 제대로 알 수 없을 때가 많은데, 잡을 수 없는 것에 호기심을 가져 무엇 하나. 장마라도 시원하게 내려야 했는데 말이다.
영 찝찝한 여름이다. 여러분들과 내가 '글'이라는 공통된 취향으로 만났다. 내 취향과 여러분들의 취향은 겹친다. 그러니 블라블라에 자그마치 5만 3천이나 되는 분들이 모인 것 아닐까. 이 막막한 여름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방법에는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
떠오른 생각이 있다. 다음 주쯤 공개하도록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