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을 탄다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계절은 가을이 아닐까 싶은데, 정작 가을에 진짜 가을 타는 사람은 잘 없다. 가을 타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서, 가을 타는 척하는 사람들은 많다. 정작 '진짜' 가을 타는 사람은 없는이 아이러니함이란. 구릿빛으로 물들어 가는 나뭇잎과 선선해지는 공기, 불어오는 가을 냄새 따위에 젖어 가을 타는 척하는 사람들이란.

어떻게 이렇게나 잘 알고 있느냐고 물어본다면, 부끄러운 과거지만 나 또한 가을 타는 사람이 되고파서 그런 '척'을 했던 적이 있으니까.


여름이 왔다. 아직까지 푹푹 찌는 한여름이라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이제 긴팔 입으면 눈초리를 받는 계절이니 여름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여름이 왔다.

앞전 문답에서 언급했듯, 내게 있어서 참 고통스러운 계절인 여름이 왔다. 늘 무슨 일이 생기면 그 계절은 여름이곤 했다. 그것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간에. 나쁜 일인 경우가 많았다. 좋은 일만 있었다면 여름을 좋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그래, 다시 여름이 오고야 말았다. 희한하게도 올해 여름, 내 주위에는 가을 타는 사람들보다 여름 타는 사람들이 더 많은 듯하다. 분명히 가을에는 멀쩡했던 사람들인데, 가을을 잘 나던 사람들인데, 날이 더워지고 밤공기가 선선해지고, 여름 냄새가 나기 시작하니 괜히 여름을 타는 것일까. 색이 바뀌고 온도가 바뀌다 보니 괜한 상념에 젖어 드는 것인지


사실 가을보다 여름이 더 소설적인 계절이다. 여름의 서사성은 그 어느 계절보다 강하다. 그 어느 글의 제목처럼 여름만큼 사연 많은 계절도 없다. 여름의 여운은 그 어느 계절보다 길다. 같은 대화라도 '여름밤'이 붙으면 괜히 더 아련해지고, 같은 사랑이라도 '여름'이 붙으면 미화된다. 여름이니까. 겨울?

겨울은 각종 기념일이나 연말이라는 시기가 여럿 겹치며 나름의 분위기를 풍기지만, 여름만 못하다. 겨울은 그게 전부다. 해가 바뀌면 괜히 허무해지고, 서글퍼진다. 겨울을 떠올리며 무언가 쓰려고 하면 어렵지만, 여름을 떠올리면 청산유수가 따로 없다. 그만큼 사연 많은 계절이다. 여름만큼 오래도록 진하게 남는 계절은 없으니 말이다


여름 타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나도 이번 여름은 타지 않고 보내고 싶다. 내가 여름을 타는 경우는 '자의'보다 '타의'에 의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올해 여름은 방해받고 싶지 않다. 오롯이 나만의 여름을 쓰고 싶다. 마음처럼 될 수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는 수도 없이 여름을 타 보았기 때문에 지긋지긋한 여름병을 극복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지만, 여름 타기 경험이 전무한 내 주변 소중한 이들이 괜한 감상에 젖어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한 계절을 '타는' 것이 아니라 한 계절을 '사는' 것이다.

다들 이번 여름도 잘 살아 보자. 나도 이번 여름은 미워하지 않으련다. 받아들이련다. 여름을 만끽하련다. 이제 장마가 시작되겠지. 일기 예보를 보니 이 글이 업로드되는 날부터 장마가 시작될 성싶다. 곧 '진짜' 여름의 시작이다.

무지하게 덥겠지. 여름은 더워야 여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