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란 그 무게가 가볍든 무겁든 간에 서로 좋아서 하는 행위라는 점은 불변의 사실이다. 내가 사디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고 상대방은 마조히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면, 그러니까 내가 가학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고, 파트너는 피학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면, 섹스할 때는 둘만의 합의 아래에서 도구를 써서 괴롭히든, 천박한 욕을 주고받든 상관이 없다마는, 섹스할 때 '하지 마'라는 말과 '그만해'라는 말보다 더 무서운 말이 있다. 그건 바로, 야, 빼! 일단 저 말을 들어 본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 고조되어 있던 흥분이 싹 가라앉고. 단 몇 초 만에, 그 몇 초 사이에 내 감정은 사정을 한 직후보다 차분해진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 동안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든다. 내가 뭘 잘못했지, 내가 실수한 거라도 있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들지만, 맞다. 대개 이런 경우에는 남자가 잘못한 무언가가 있다. 말실수든, 행동 실수든, 무언가 하나는 했을 가능성이 크다. 나도 피해가지 못했던 "야. 빼". 살면서 딱 두 번 들은 그 말은, 떠올릴 때마다 의욕을 사라지게 만든다. 오늘은 그날의 이야기를 풀어 보려고 한다.
1. 착각에 대한 대가 사실 만났던 여자가 열 손가락만 넘어가도 한 명 한 명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기에 무리가 있다. 가끔은 이름이 헷갈리기도, 후추 못 먹던 여자가 이 여자였는지 저 여자였는지, 그 애의 성이 김이었는지 최였는지 헷갈리는 순간이 온다. 사실 자랑할 건 못 되지만, 일주일에 여자를 열 명 좀 안 되게 만났던 적도 있다. 전부 다른 여자로 말이다. 물론 그 열 명 모두와 섹스했던 것은 아니다.
그랬다면 하루에 두 명을 만나 섹스까지 해야 한다는 말이니까. 그렇다고 모두와 섹스하지 못했던 것도 아니다. 문제는 거기서 발생했다. 열 명이나 되는 여자와 연락하고, 또, 얼굴을 보다 보니, 아무리 기억력이 나쁘지 않다고 해도 그녀들의 사소한 것 하나까지 모두 기억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얘랑 갔던 곳이 어디였는지, 얘의 취미가 무엇이었는지, 아, 사실 생각해 보면 값진 무언가를 얻지도 못하는 그런 겉껍질 핥기에 불과한 관계를 무엇 때문에 그리도 애를 써가며 유지하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그저 섹스 때문이었겠지. 성욕이 뭐라고, 참. 그러다 하루는 모텔에서 내가 말실수를 해버린 것이었다. 말실수 한 번이면 그러려니 하고 넘겼을 것인데, 나는 말실수를 두 번이나 해버린 것이었다.
첫 말실수 때는 그녀도 그냥 넘어가 주는 듯한 눈치였는데, 문제는 그다음 말실수였다. 내가 상대방의 이름을 잘못 불렀던 것이었다. 사실 이름을 살짝 다르게 바꿔 불렀더라면, 예를 들어 민지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를 민주라고 부르는 실수를 저질렀더라면, 그녀 또한 어이가 없다는 듯한 웃음을 짓고 넘어갔을 터인데, 나는 민지를 주은으로 부르는 아주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던 것이었다... 그것도 섹스할 때 말이다. 아,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일까. 듣다 못한 그녀 입에서 나온 말.
야, 뭐 하냐?
빼.
2. 습관의 무서움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듯 성향도 다르다. 연애는 성격이 비슷한 사람과 해야 하지만 섹스는 성향이 정반대인 사람과 해야 좋다. 그렇지 않으면 둘 다 서로를 때리려고 들 테고, 반대의 경우라면 둘 다 맞으려고 들 테니까. 아무튼 나는 때리는 쪽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만나는 파트너들이 전부 피학적인 성향을 가진 쪽이었기에 나는 자연스레 분위기가 달아오르면 가슴이나 엉덩이를 때리곤 했다. 성향에 대해 말 안 해 주면 모르는 거니까. 나는 그녀도 당연히 맞는 쪽인 줄 알았다. 몇 번 때려도 싫은 기색을 내지 않길래 나는 계속 엉덩이를 때렸다. 그런데 갑자기 하는 말. 야, 빼. 존나 아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