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라든가 '누군가를 떠올리며 쓴 글'은 그 자체로 대단한 의미를 가진다. 문자에서는 단 몇 문장, 전화로는 단 한두 마디로 전할 수 있는 뻔하디뻔한 내용의 말이라도 편지에다 적으면 감회가 새롭게 다가온다. 쉽게 예를 들어 '영원히 사랑해'라는 문장을 전화로 내뱉는다고 가정해 본다면, 무슨 애들 장난처럼 느껴지거나 낯이 간지러워져서 분위기에 진지함보다는 웃음기가 돌 테지만, 해당 문장이 적힌 문자를 받아 본다고 가정해 본다면 사뭇 진지함이 느껴지며 이야기가 달라질 테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해당 문장이 적힌 편지를 받아 읽는다고 가정해 보자. 편지의 끝자락에서 '영원히 사랑해'라는 문장을 발견한다면 이유 모를 뭉클함과 서글픔에, 지켜지지 못할 약속에 쏟는 상대방의 미력이 느껴져 괜히 코끝이 찡해지기도 한다. 이처럼 편지가 주는 힘은 대단하다. 우리는 편지 안에서 비로소 솔직해진다. 고작 종이에 내 마음을 써내려 상대방을 전하는 것인데, 우리는 상대방과 얼굴 맞대고 대화할 때보다 종이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할 때 더 솔직해지는 아이러니한 모습을 보인다.


첫 번째 여자는 내가 어렵다고 했다. 여자가 내뱉은 '어렵다'라는 단어를 곱씹으며 의도를 짐작해 보건대, 함께 있을 때 오는 불안이나 불편의 감정에서 사용된 표현이 아니라, 그저 '나'라는 사람이 여자에게 있어 예측할 수 없는 존재로 다가왔다는 데에서 사용된 것이 아닐까 싶다. 여자는 내게 궁금한 것이 많다고 했다.

무엇이 가장 궁금하냐는, 모든 질문에 답변해 주겠다는 나의 물음에 여자는 '그마저도 잘 모르겠다'라며 미소만 한참을 짓다가 입을 열었다.

"유은이 존재해요? 실제로? ""저는 소설가가 아니에요. ""대박""질문은 이게 끝인가요? ""유은이라는 사람이랑 잤죠? ""잤죠. 잠만. ""진짜로 잠만 잤어요? ""글에 나온 그대로예요. 숨길 이유도 없잖아요?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왜 안 된다고 생각해요? "


여자는 거침이 없었다. 꽤나 당돌했다. 그것이 본인이 매력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는 듯해 보였다. 여자는 첫 만남부터 '나를 위한 편지를 써 왔다'라며 직접 구운 쿠키 두 개와 함께 편지를 수줍게 건넸다. 내가 누군가와 첫 만남일 적 편지를 써 준 적은 있지만, 첫 만남에 편지 받은 적은 처음이었기에 그 상황 자체가 신선하게 다가왔으리라. 그 여자와는 이야기를 조금 더 하다가 헤어졌다. 나누었던 대화 군데군데에는 유은이 있었다. 내가 먼저 유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것도 아닌데, 여자는 얼굴도 모르는 유은을, 유은과 나 사이에 있었던 일을 들추려고 했다.


두 번째 편지를 준 여자는 본인이 상상했던 성북구글싸개와 현실의 성북구글싸개 이미지가 다르다고 했다. 두 번째 여자를 알고 지낸 지는 꽤 되었지만, 여자로부터 편지를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여자가 나를 제외한 다른 이들에게는 편지를 자주 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닌 쪽에 가까워 보였다. 불란서 로댕 박물관에 방문했을 적에 문득 내가 떠올라 구매했다는 편지봉투에 삐뚤빼뚤한 글씨체로 쓴 여자의 편지에는 미숙함이 드러나서 좋았다. 원래 편지는 그렇다. 미숙함과 투박함이 느껴지는 편지에서 진심이 더 잘 느껴지기 때문이다. 두 번째 여자도 첫 번째 여자와 마찬가지로 내가 궁금하다고 했다. 하지만 달랐던 점은, 첫 번째 여자가 내게 가진 의문은 '무엇을 하는 사람이지?'에가까웠다면, 두 번째 여자가 내게 가진 의문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가?'였다는 말이다. 여자는 내게 '어떻게 매일같이 무언가를 쓰며 살아갈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고는 하루쯤은 본인도 '성북구글싸개'로 살며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상상을 글로 기록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여자의 천진난만함에 웃으며 말했다.

"네가 나의 글쓰기에 한몫하고 있잖니? 내 글에서 너의 비중이 상당한걸. 출연료라도 주어야 하나 싶을 정도니 말야. "


나는 두 번째 여자를 좋아했다. 얼굴 한 번 실제로 본 적 없는 상태에서 내 머릿속의 상상만으로 여자의 이미지를 그리고 그리다 사랑에 빠졌다. 두 번째 여자의 편지에는 이런 질문이 적혀 있었다.

"나랑 똑같은 네가 궁금했어. 신기할 정도로 내 생각과 닮아 있던 네 생각은 전부 계획된 것이었는지 궁금하구나. 너는 나를 왜 좋아했니? 네가 나를 좋아할 때, 너는 나를 잘 알고 있었니? 소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에서는 이런 구절이 나와. '내가 댁의 편지에 답하지 않은 이유는 여럿 있어요. 첫째로 댁은 서윤주란 현실의 대단찮은 여자아이에게 글을 쓴 게 아니라 댁의 머릿속에 있는 이상의 여인에게 글을 쓰고 있었어요. 거기에 저 따위가 감히 어떻게 답장을 낼 수 있겠어요?' 나는 이 문장에 무척이나 공감이 갔어. 그리고 네게 묻고 싶어. 너는 어떤 나를 봤니? 그리고 어떤 내가 네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니? "


그러고는 이런 문장이 뒤를 이었다. 과거, 여자가 나에게 거리 아닌 거리를 두고 있다고 느꼈던 것이 나 혼자의 오해가 아니었음이 증명되는 구절이었다.

"너를 실제로 마주하기 전까지 나는 여전히 네가 '이상 속의 나'와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어. 나는 보여 주고 싶은 모습만 네게 비췄으니까. 그것이 아예 나와 다른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 모습이 내 전부는 아니었으니까 말이야."


눈치 빠른 사람들이라면 진작 눈치를 챘겠지만, 내게 그 두 번째 편지를 전한 두 번째 여자는 유은이다. 나는 유은이 편지에 풀어내었던 내용을 유은과의 추억을 회고하는 글에서 진작 다룬 적이 있다. '나는 나만의 세상에서 나만의 유은을 만들고 있었던 것 같다. 유은은 이러한 사람일 거야, 유은은 이러한 사람이 아닐 거야, 유은은 이러한 것을 좋아할 거야, 유은은, 유은은, 이런 식으로 나는 혼자 유은을 그리고, 유은을 만들었다. 이러한 행위가 훗날 얼마나 큰 실망을 안겨 줄지 당시 나는 알지 못했다.' 『만나 본 적 없는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는 것」 그리고 유은은 내게 질문했다. 상상 속 유은과 실제 본인 사이에 괴리가 있느냐고. 나는 그 질문에 대한 답장을 하며 글을 줄이려고 한다.


나는 말이다. '내가 만든 유은'에 빠졌기 때문에 너를 사랑한 것이 아니다.'내 상상이 만든 유은'을 붕괴하기 아쉽거나 싫어서 '유은'을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 내가 상상하던 유은과 실제 마주한 너는 달랐다. 하지만 그것이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다름'은 아니라 말하고 싶다. 내 상상 속 유은은 사랑이나 정과 같은 감정보다 본인의 인생과 성취가 더 중요한 사람이었다. 우리가 처음 만나 연애할 때까지만 해도 너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몇 년 전, 우리의 첫 만남에서 느꼈다. 너는 내 상상보다 더 이성적인 사람이구나, 하는 그런 사실을. 하지만, 시간이 흘러 우리가 다시 얼굴을 마주한 지난 오월, 나는 생각을 고쳤다.

너 또한 소녀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만 것이었다. 나는 그냥 네가 좋았다. 상상 속 유은이 어떻고 현실의 유은이 어떻든 간에 너는 내게 있어 수단이 아닌 목적이었다. 사람들은 우리의 연애를 바란다.

왜 다시 만나지 않는 것이냐고 묻는다. 연애는 서로 호감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시작하는 것이 맞지만, 그런 경우에도 반드시 연애할 수는 없는 법이다. 글쎄다. 나는 우리의 미래가 마치 판도라의 상자처럼 느껴진다. 누군가와의 과거를 열어 볼 때 판도라의 상자를 떠올린 적은 있어도, 미래를 그려 볼 때 판도라의 상자가 떠오르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나는 너에게 모난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지난 이별 이후 스스로와 다짐한 것이다. 너에게 있어 나는 언제나 '이전과 달라진 나'로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나는 그렇게 보이기 위해 행동했다. 네 앞에서 나는 모든 행동을 신경 쓰고, 내 생각을 고쳐먹고, 마치 쇼케이스에 잘 전시된 물건처럼 보이기 위해 행동했다. 내 사랑의 방식인가 보다. 네 앞에서는 오롯이 진실된 내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우리 만남의 전제를 이전과 다르게 두고 생각해 보니 나는 다시 거짓된 나를 보여 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종종 네 앞에서 편안히 내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다시 연애할 것이라는 가정 자체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넋두리가 아닐까 싶다.

그러게, 유은아. 남녀 사이에 친구가 어디 있냐. 안 그래? 네 편지에 적힌 말마따나 과거도 미래도 지금은 너무 복잡해서 잘 모르겠다.

네가 숨기듯 쓴 글에 적혀 있던 말마따나 지금 우리는 너무 애매하다.

누구 하나 먼저 우리 사이 관계에 대해 말을 꺼내는 법이 없다. 나는 글로 감정을 표출하지만, 내 글을 매일같이 읽는 너는 아무 말도 않는다. 나는 무언가 얻고 나면 그것이 사라질까 봐 두려움을 느낀다. 이 상황에 옳은 표현인지는 모르겠다마는 내 생각은 그렇다. 네 말마따나 한 10년 더 지나고 지금의 우리를 돌이켜 보면 청춘이려나. 마침표는 우리가 알아서 찍으면 되려나.

때가 아직은 아닌 것일까. 마침표를 꼭 찍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