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니 여태껏 나는 사랑 이야기에는 현실에서 알게 된 사람과의 이야기만 담은 것 같다. 언젠가 썼던 「섹시한 여자에 대하여」에 나왔던 팔로워 10만이 좀 안 되는 그녀도 압구정에서 술 마시다 처음 알게 되고, 인플루언서라는 사실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알게 된 것이었으니 말이다. 현실에서 이성을 만나는 것이 가장 깔끔하고 믿을 만하기에 괜히 귀찮아질 일도 없는데, 가끔은 그런 시기도 있다. 차려입고 밖을 나가 돌아다니는 것도 귀찮은 시기가. 그저 집과 직장만 왔다 갔다 해도 머리가 지끈거리고 피곤해져서 주말만 되면 외출 생각이 싹 사라지고 그냥 틀어박혀서 쉬고 싶은 마음만 한가득인, 그런 시기가 종종 찾아온다. 주로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 이런 생각이 든다. 마음의 여유가 없다면 여자를 만나지 말아야 하지만, 또 그럴 수는 없었다.
직접 밖에 나가 데이트 상대를 찾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휴대폰을 통해 마음에 드는 상대방을 물색해야 한다. 사실 사진 몇 장 보고 마음에 드는 사람을 정한다는 사실이 웃기기도 하다. 워낙 '얼굴 보정'이 보급된 세상이라 아이들도 사진을 찍고 보정을 해대니 실물과 사진 사이의 차이는 커져만 가고, 인터넷과 가명이라는 벽 뒤에 숨어서 본인의 약점은 철저하게 숨긴 채, 만남을 가지는 사람도 있다. 이전 직장에서는 옆 부서 동기가 어플로 사람 하나 잘못 만나서 매독에 걸리기도 하였으니, 참 무서운 세상이다.
아무튼, 내가 어플을 할 당시에도 어플 사용의 목적이 '원나잇'이라든가 '파트너 만들기'와 같이 가벼운 사람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지금만큼은 아니었다. 지금이야 다들 한번 해 보려고 어플을 다운하곤 하는데, 당시만 해도 정말 '건전한 상대를 찾고 싶은데 현실에서 찾는 것이 귀찮고 어려워서' 어플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뭐, 믿거나 말거나다. 물론 나의 목적은 전자에 가까웠다. 당시에도 Tinder는 있었고, 지금보다
무엇이 얼마만큼 달랐는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지만, 그때도 비슷했던 것 같다. 서로 마음에 들면 좋아요를 누르고, 두 사람 모두 좋아요를 누른 것이 확인되면 채팅이 활성화되는.
전화번호를 인증하고 닉네임을 설정하고 내 사진 몇 장 올리고, 한 줄 소개를 쓰고, 한 줄 소개에는 무슨 내용을 적었더라. 아마 '진지한 만남 x'였나. 지금 생각해 보니 어이가 없고 오글거리는 문장이지만, 군더더기 없이 목적 맞는 사람만 찾는 것이 서로 좋을 것 같아서 그랬다. 여성의 경우 계정을 만들자마자 좋아요를 수십 개나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던데, 사실 그 정도까지는 기대도 하지 않았건만 꽤 많은 사람으로부터 좋아요를 받았다. 나도 메인 화면에서 사람들 사진을 슥슥 넘기며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좋아요를 보내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반대로 쓸어 넘겨 넘기고 있자니 마치 쇼핑하는 듯한 기분이 들기까지 했다. 알게 모르게 죄책감도 몰려들었다. 사실 어플은 처음이라, 그런 식으로 터치 한 번에 사람을 고르고 버린다는 것이 참 이상했다. 아무 생각 없이 화면을 넘기다가, 어?
친구의 애인을 발견했다. 몇 번 마주친 적이 있는데, 팔목 부분 타투가 특이해서 기억하고 있었다. 머리 색깔이며 사진에 보이는 흐릿한 커플링까지. 그녀 한 줄 소개에는 '동네 친구 만들고 싶어요'라고 적혀 있었지만, 그 한 줄 소개를 떠나서 애인까지 있는 여자가 Tinder에 가입했다는 사실부터가 참 웃긴 일이었다. 나는 호기심에 좋아요를 보냈다. 만날 생각은 없었고, 설마 매칭이나 되겠어, 하는 생각에, 매칭이 된다면 궁금한 것을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에. 아니, 그녀는 내게 좋아요를 누르지 않아야 했다. 나의 한 줄 소개와 그녀의 한 줄 소개는 너무나 상반되었기에, 그녀가 아무리 한 줄 소개에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았다고 한들, 내게 좋아요를 눌렀다면 변명의 여지도 없었으니까.
아, 친구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사실 미안하다기보다는 안쓰러운 친구를 떠올리면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지만, 그녀가 내게 좋아요를 눌렀다. 누가 먼저 연락을 보내나 의미 없는 눈치 싸움을 하고 있을 때, 그녀가 먼저 내게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 어디선가 본 적 있지 않아요? 안면이 있는데..." 이 눈치 없는 사람. 딴에는 어색함 좀 풀어 보려고 꺼낸 말이었겠지만, 하지 않아도 될 말을 꺼내는 바람에 나는 어떤 거짓말로 상황을 빠져나갈지 머리가 아팠다. 대면하지 않고 메시지로만 이야기를 나누어서 망정이지, 만약 실제로 만난 상황에서 그 말을 들었더라면 나는 표정 관리를 하지 못했을 것 같다. 그녀가 내 얼굴을 보고 안면 있다고 느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친구의 친구이다 보니 인사할 일도 몇 번 생기고, 그러다 보니 나도 그녀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는데, 그녀가 내 얼굴을 어렴풋이 기억 못 할 리가.
나라고 해서 떳떳한 사람은 아니다. 털어서 먼지 안 나올 정도로 정의로운 사람은 아니지만, 내 친구의 애인이 애인을 두고 소개팅 어플에서 남자를 만나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죽어도 못 볼 것 같았다. 만약 내가 양심과 도덕성을 모두 상실해 버린 사람이었다면, 친구의 애인과 만나서, 친구에게는 비밀로 하자는 말을 꺼낸 뒤, 술을 마시고, 한 번뿐이라는 밤을 들먹이며 잠자리를 가지고, 그 시간에 집에 있을 친구를 떠올리며 배덕감과 쾌감을 느꼈겠지만, 친구의 애인은 좀 그래서. 욕심이 적지 않은 나지만, 남의 것에, 친구의 것을 탐내는 데에는 관심이 안 갔고, 소중한 친구를 잃고 싶지도 않았기에 나는 친구를 도와줘야겠다 싶었다.
"저도 안면이 있는걸요. 종혁이 아시죠? "나의 연락을 받는 그녀는 한참 동안 답장하지 않더니 '죄송하다'는 메시지를 보내 왔다. 죄송을 왜 나한테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고, 그 뒤에 온 메시지가 더 가관이었다.
"종혁이한테는 비밀로 부탁드릴게요. 제발요. "
불쌍한 나의 친구. 연애 시장에 신차는 없다지만, 중고차를 사지는 못할망정 친구는 렌트카를 새차인 것마냥 다루었으니. 그녀는 나의 친구와 연애하는 와중에도 수많은 남자들에게 입술을 내어 주었을 것이고, 잠을 잔다는 핑계로 다른 남자들과 잠자리를 가졌을 것이다. 아, 나의 친구는 그것도 모른 채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촉촉한 줄 아는 그녀 입술에 조심스레 입을 맞추고, 다정하게 사랑을 나누었을 것이니, 그 꼴을 생각하면 부아가 치밀어오른다. 이런 경우에 흔히들 말을 해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한다던데, 나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나는 그녀가 어플을 탈퇴하자마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종혁아 뭐 하냐? 다름이 아니라 너 그 여자친구랑 잘 만나고 있냐? 내가 오늘-"이런 내가 옹졸해 보일지 몰라도 나는 해야 할 도리를 했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친구의 애인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애인이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친구의 애인은 좀 그래서. 그래서 그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