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뭐 하고 사느냐는 질문을 근래 들어 많이 받았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지난 인연들이나 반가운 사람들로부터 연락을 받는다. 내 대답은 언제나 '살아 있으니 살아가는 거지. 오히려 이런 연락은 날이 쌀쌀해지는 가을에 많이 올 법도 한데, 나를 스쳐 간 사람들은 가을이 아니라 여름을 타나 보다. 뭐, 썩 나쁘지는 않다.

반복되는 삶에 이런 이벤트 하나씩은 있으면 좋으니 말이다. 나는 근래 글을 쓰고, 또 나름대로 먹고살려고 아등바등 사느라 피로에 찌든 상태로 살고 있다. 당신에 대한 글에 집중하느라 다른 글은 쓰지 않고 잠시 한편에다 치워 놓은 지 오래다. 나이를 먹어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부터 종합비타민을 챙겨 먹고 있는데, 결국 잠이 제일 중요한 것 같다. 하루에 대여섯 시간을 겨우 자는 패턴이 고정되다 보니 푹 쉴 수 있는 휴일에도 여섯 시만 되면 눈이 확 떠지곤 했다. 그러다 지난 주말에는 간만에 잠을 푹 잤는데, 오히려 자고 일어났을 때 평소보다 더 피곤한 기분이 들었다.


꿈에서 당신이 나왔던 것이었다. 나는 근거 없는 확신이 들었다. 내가 휴대폰 화면을 켜면 당신의 연락이 와 있을 것이다,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아닌 확신이었다. 내 확신은 들어맞을 확률이 높았고, 사실 우리의 사랑도 처음으로 돌아가 보면 나의 확신 비슷한 감으로 시작된 것이었으니 말이다. 나는 당신과 내가 연결되어 있는, 아니 어딘가 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믿었으니까. 나는 잠들기 전에 휴대폰을 끄고 잔다. 수면에 오롯이 집중하기 위해서인 것도 맞지만, 언제부터인지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스트레칭을 한 뒤에 휴대폰을 켜서 와 있는 연락에 하나하나 답장하는 재미에 들렸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정말 오랜만에 눈을 뜨자마자 휴대폰을 켜서 확인했다.

아, 역시. 역시나였다.


잘 지내는지 묻고 싶지만 너무 식상하게 운을 떼는 것 같기도, 돌아올 답장이 뻔하기도 해서 썼던 문장을 곧장 지워버렸다. 한참 고민하다

고른 문장을 적어본다. 번호는 그대로니?

가끔 말이야. 사실 그렇게 가끔도 아니긴 하지. 나는 꽤 많은 순간에 너를 떠올렸어. 너라는 사람에 대해 떠올리기도, 너라는 사람이 내게 미친 영향에 대해 떠올리기도 했단다. 우리 사랑은 그저 어린아이들의 소꿉놀이가 아니었으니까 말야. 그러다 며칠 전에는 말야. 인스타에 뜬 글을 하나 읽게 되었어. 익숙한 문체, 익숙한 지명.... 내가 했던 말까지. 맞아 이건 우리 사랑 이야기구나. 하고픈 말이 참 많아. 건강은 어떤지 하는 일은 잘 되는지.

요즘도 사랑하고 사는지, 요즘도 회기에 오곤 하는지. 많고 많지만 참아야겠지.

가능하다면 이 문자를 첨부해줬으면 좋겠네. 나도 흥미롭기는 하구나. 나와 사랑할 때 너는 어떤 생각이었는지 읽으며 추억하곤 해. 글은 계속 써도 좋아. 너도, 나도 글을 써야 직성이 풀리잖니?

여름감기 조심하렴! '성북구글싸개' 씨.


사실 전날 저녁까지만 해도 이 '사랑 이야기'를 어디까지 공개하고 어떻게 전개해야 할지 막막한 기분이 들어서 블라블라 운영자인 상준 씨에게 이러한 고민을 좀 털어놓기도 했다. 때로 우리는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며 글뿐만 아니라 삶에 있어서 더 나은 방향성을 잡곤 하니까. 그러자 돌아온 말은 "분량이 얼마나 많든,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든 끝까지 담겠다. 그러니 부담을 가지지도 말고, 욕심을 내지도 마라. "였다.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고 든든해졌다. 호흡이 긴 사랑 이야기를 지루하지 않게 끌고 가며, 완벽하게 마무리하고 싶었다. 내 사랑은 늘 '완벽'이나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글에서만큼은 그렇게 보이고 싶었다.


상준 씨와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내가 쓴 「어떤 사랑은 갑자기 찾아오고, 그런 사랑은 그냥 사랑보다 아파요.」가 알고리즘을 타서 몇만 명이 봤다느니, 오롯이 텍스트로만 구성한 게시글과 그 후속편의 반응이 이 정도면 대단한 거라느니, 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사실 몇만 명 단위의 숫자를 내가 체감할 수 있는 일이 살면서 없지 않은가. 그러다 이번에 깨달았다. 인스타그램에서 7만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내 글을 보게 되면, 그중에 나를 실제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서너 명은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 당신과 나의 사랑은 우리 둘만의 비밀에 부치길 잘했다.

필명을 만들어 활동하길 잘했다. 그러니까,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된 우리의 이야기지만, 적어도 우리 주변 사람들은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우리 둘이라는 사실을 모르니까 말이다.


그래. 우리 사랑은 영화 같았다. 남들이 보면 믿지 않을 법한 이야기도 우리 사랑에서는 '클리셰'처럼 자주 등장하곤 했다. 그런 이유 때문에 나는 미인으로 변신한 여우에 홀린 인간처럼 당신에게 속절없이 빠졌던 것이었다.

아무튼 당신의 연락을 받은 나는 간만에 당신의 인스타그램에 들어갔다.

여전히 프로필에는 텀블러(Tumblr) 링크가 첨부되어 있었다. 그래. 당신은 항상 무언가를 기록하곤 했다. 어딜 가든 사진을 남겼고, 어딜 가든 노트와 '연필'을 가지고 다녔다. 당신은 디지털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아날로그적인 인물이었다. 당신은 네이버 블로그 혹은 많이 양보해서 티스토리와 같은 대중성 있는 블로그에다 글을 쓰지 않고, 텀블러에다 글을 썼다. 그런 당신의 독특함이 독으로 작용할 때도 있었지만, 매력에 가까웠다.

당신의 텀블러에 들어가 한참을 구경했다. 당신의 글을 얼마 만에 읽는지 모른다. 당신의 별거 아닌 독백에 나는 괜히 울컥해지기도, 당신의 유머 포인트에 나도 모르게 웃음 짓기도 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당신 글을 읽을 때 나는 웃음을 짓는 순간보다 잃는 순간이 많았다는 것이다. 어느 글을 읽을 때 내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누워서 당신 글을 읽었는데, 뜨거운 눈물이 눈매를 타고 흘러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음에 대한 아쉬움과, 당신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몰래 당신을 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허무감, 그래도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드는 후련함, 등이 겹쳐서일까.


당신의 문자에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답장을 보내고 내가 다시 답장을 받는다고 한들 연락을 마무리 지을 타이밍을 잡기 어려울 것 같고, 무엇보다 답장을 보낸다고 한들 당신이 다시 회신해 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말이다. 이 글이 당신에게 답장이 되었으면 한다. 당신이 우연히 인스타그램에서 내 글을 봤다고 하니 이 글도 다시 읽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당신도 나도 이 생각 하나는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랑은 참 아름다웠지만 그만큼 고통스럽기도 했다. 우리가 다시 만날 일이라던가 서로에게 남아 있는 연인 간의 정과 같은 감정은 일절 없다는 사실 말이다.

그럼에도 또 한 가지 확신한다. 당신과 나는 아직 정을 떼지 못하였다. 더는 당신에게 '연인 간의 정'을 느낄 수는 없지만, '인간과 인간으로서의 정' 정도는 느끼고 있는 듯하다. 당신의 뜬금없는 연락, 그리고 그 연락으로부터 비롯된 이 글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이야기가 많이 샜다. 예상했던 당신의 문자가 내게는 너무나 인상 깊어서 이 글을 마무리 짓는 지금에서야 여운이 좀 사그라들었다.

그럼, 이제 다시 우리의 사랑 이야기에 대해 떠들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