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우리 자취방 앞 시장서 팔던 큰 수박 한 통 가격은 요즘 치킨 한 마리 가격보다 저렴했다. 수박 가격이 당시에는 왜 그렇게 부담스럽게만 다가왔는지 모르겠다. 만 원 한 장 귀하던 시기에 기호식품은 사치처럼 느껴졌다. 나 혼자만 입이었다면 수박 따위를 사 먹는 일은 없었겠지만, 나는 수박을 사랑하는 너를 사랑하고 있었다. 일 끝나고 땀에 푹 젖은 채로 동네로 돌아오면 시장 과일 가게에서는 떨이를 치고 있었다. 아주머니께 너스레를 떨면 천 원 정도는 빼 주셨다. 내 손에 들린 수박은 마치 전리품 같았다.


수박은 무거웠다. 수박을 담고 있는 끈이 끊어질까 봐 늘 노심초사했다. 현관문이 열리기도 전에 너는 내 발자국 소리를 듣고서는 미리 현관 앞에 나왔고, 손에 들린 수박을 대신 들어 옮겨 줬다. 나는 발등에 떨어뜨리지 않게 조심하라며 웃으며 다그쳤다. 네 몸보다 큰 수박을 낑낑거리며 옮기는 네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그 모습을 보면 '우리가 결혼해서 함께 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박을 반으로 갈라 절반은 잘라 먹고 나머지 절반은 속을 파내었다. 속을 파낸 수박에 소주 두 병과 덜어둔 수박을 넣고는 화채라며 좋아라 먹었다. 후르츠 칵테일도 사치였다. 너는 늘 씨를 삼켰고, 나는 늘 뱉었다. 취기가 올라오고 물배가 차오르면 우리는 느릿해졌다. '씨 먹으면 배에서 수박이 자라난대'라는 싱거운 농담에도 우리는 웃었다. 값싸게 여름에 취하는 방법이었다.


무언가에 담긴 사랑 이야기를 쓰려고 하면 늘 먼저 네가 떠오른다. 언젠가 겹벚꽃에 담긴 사랑 이야기를 쓸 때도, 너와 나만 아는 장소 이야기를 쓸 때도 문장 속에 네가 있었다.

가장 행복했던 시기였는데 해 준 게 많이 없어 미안하다. 채워 넣으려고 애써도 채워지지 않던 시절이었다. 노력은 노력대로 하는데 돈도 마음도 자꾸 줄줄 새기만 했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이 커지며 불안해질수록 나는 너와 함께하는 미래를 떠올리며 버텼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던 것이었는데 10년이 다 되어 가는 인제 와서 이야기하면 전해지기라도 하나.

여름이라길래 수박을 한 통 사서 오는 길에 네가 생각나 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