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에 갔다. 높은 곳에서 서울을 내려다보고 싶다는 당신의 혼잣말로 인하여 시작된 일이었다. 기념일 따위는 세지 않고 만나던 우리였기에 그때가 언제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학에서 하나둘 축제를 하던 시기였으니 오월 무렵이지 않았을까 싶다. 나도 당신과 함께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보러 가고 싶었지만, 젊은 학생들 다 한 번씩 해 보는 그런 경험 한번 해 보고 싶었지만, 함께 가자는 말을 꺼내지는 못했다. 가고 싶지 않았다. 발 넓었던 전애인 탓에 얼굴 한번 봤던 사람들이 주변 학교에 잔뜩 재학 중이었다. 혹여나 아는 사람을 마주쳐 벌어질 껄끄러운 상황을 상상하면 등이 따끔거릴 지경이었다. 그리고 당신은 나 못지않게 '아는 사람'들을 마주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일반적인 경우에는 아는 사람을 낯선 장소에서 우연히 마주치면 반가워하기 마련인데, 당신은 그 우연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반가운 감정보다 불편한 감정이 크다는 당신 말에 나는 공감하곤 했다. 불편함의 포인트는 서로 달랐던 것 같았지만 말이다.


남산에 갔다. 그래서 우리는 남산에 갔다. 당신이 서울을 내려다보고 싶다며 혼잣말한 그날, 나는 당장 그날 저녁에 남산을 가자고 했다. 당신이 짓던 함박웃음은 아직도 선명하다. 당신은 우리의 추억을 그곳에 걸어 잠그고 오자고 했다. 나는 당신의 그 뜬금없는 바람이 좋았다. 가끔 아이 같은 눈망울로, 가지고 싶은 것을 조심스레 부탁하는 어린이처럼, 오늘 뭘 하면 좋겠다느니, 오늘 무엇을 먹으면 좋겠다느니, 이런 말을 할 때면 나는 당신에게 무엇이든 해 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당신과 나는 노숙을 할 수 있었고, 동해에서 사랑을 열 수 있었던 것이었다.


남산은 그렇다. 거창해 보이지만, 서울 놀러 온 사람들이 무조건 가는 곳이지만 막상 가면 할 게 없다. 서울 속 관광지 느낌이 짙게 느껴지는 곳이기에 놀러 온 듯한 기분이 들지만, 할 것이라고는 '서울을 내려다보는 것'밖에 없으니 말이다. 사실 그것이 우리가 남산에 온 목적이자 이유이긴 했다. 뻔한 것도 함께하면 특별하게 느껴지는 그것이 사랑 아닌가. 당신과 내가 만나면 상황은 늘 뻔하지 않게 전개되었는데, 그날 우리는 여느 연인과 똑같이 행동했다. 담배 두 갑은 살 수 있는 돈으로 자물쇠를 사고, 자물쇠에 이름을 쓰고. 아, 여기서 좀 특별한 부분은 있었다. 다들 자물쇠의 몸통 부분에 서로의 이름을 써서 걸지만, 당신은 자물쇠의 윗부분인 쇠에다가 이름을 썼다.

왜 그곳에다 쓰냐는 나의 물음에 당신은 그냥이라고 답했다. 그냥 당신은 그랬다. 내가 단순 호기심에, 혹은 당신이 하는 행위에 대한 저의가 궁금하여 '왜?'라고 묻는 것에 당신은 '그냥'이라 답할 때가 많았다. 그냥이 정말 그냥인지, 열 마디 설명을 하기 귀찮고 어려워 함축한 의미에서 사용한 단어인지 내가 알 방법은 없었지만, 그냥 '그냥'이라는 말을 들을 때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마도 당신의 의도는 후자에 가까웠겠지만.


남산은 그랬다. 남산이라는 곳에서 할 건 없어도 다시 도심으로 내려갈 때만 되면 아쉬운 감정에 들었다. 그날도 다를 건 없었다. 몸에 힘을 빼고 바람 풍선처럼 터덜터덜 내리막길을 내려가며 우리는 처음으로 현실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가 나온 까닭에 대해서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대화의 주제는 눈덩이가 불어나는 것처럼 빠르게 무거워졌다. 사실 전까지만 해도 당신과 나의 대화 주제는 이성적인 부분보다 감성적인 부분이 컸다. 일이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본 적이 없고, 당신과 나는 여가나 문화생활이 주가 된 인생이었다는 말이다. 나도 나을 건 없었다. 하지만 그나마 몇 번의 계약직 생활을 해 보고, 그러한 삶을 청산하고자 취업 준비를 하던 나와 달리 당신의 삶은 한량과 다를 바가 없었으니 말이다. 나는 내가 느낀 이러한 부분을 당신에게 말해 주었고, 당신은 멍하니 내 이야기를 들었다. 아니다. 그 눈은 생각이 많은 눈이었다. 생각이 너무 많이 멍을 때리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평소 당신의 눈은 산타를 기다리는 어린아이의 눈망울 같았지만, 그 순간에는 마치 산타의 존재를 알아버린 어린아이의 눈망울 같았다. 톡- 하고 건드리는 순간 펑-하고 터질 것만 같아서 나는 다른 말을 덧붙일 수가 없었다.


그날도 우리는 종로에 이름 없는 포차에 앉아 닭발에 소주를 먹었고 회기에 있는 당신의 자취방에서 영화를 한 편 끝까지 다 보고, 섹스를 두 번 하고 잤다. 참 웃긴 게, 무슨 영화를 봤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섹스할 때 무슨 말을 했는지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싱글 사이즈 침대에 겹쳐 누워 자고 일어나서는 함께 담배를 피웠고 늘 가던 해장국집에서 당신은 콩나물해장국을, 나는 뼈다귀해장국을 먹었다. 무언가 불편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때까지는 그리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다. 당신은 정온동물보다는 변온동물에 가까운 사람이었으니까. 당신과의 사랑은 그날 남산에 다녀오기 전과 후로 나뉜다. 나는 아직도 혼자 있을 때면 고민한다. 술을 마신 날이면 거기에 후회도 좀 더해지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그날 당신에게 진실을 전하지 말아야 했던 것일까. 입에 발린 말이나 하며, 불안정한 우리의 삶을 젊은 날의 초상이라 자위하며, 그리 불안하게 연명했어야 했다는 말인가. 정녕 당신이 바라고 지향하던 삶은 어떤 형태의 것이었을까.


그날도 이런 고민에 빠졌다. 평소라면 조잘거리며 입을 가만히 둘 생각을 않던 내가 그날은 열 마디도 하지 않았다. 기분이 안 좋은 건 아니었다. 내가 그토록 상념에 빠졌던 이유는 당신과 함께하는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구체적이지는 못하더라도 대략적인 그림이 그려져야 하는데, 당신의 그 태도에 일말의 기대도 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당연히 나는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아, 당신이 입을 열었다. 성북구글싸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