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사진 찍어 달라는 부탁 따위는 하지도 않던 너는 유독 능소화 앞에만 서면 약해졌다. 짙은 녹빛과 연주홍 물감으로 찍어 그린 듯한 능소화는 얼핏 보기에는 아름다웠지만,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으면 알 수 없는 우울감이 느껴지곤 했다. 그전에 만나던 애인은 팬지꽃을 볼 때마다 괜히 손발이 오그라들면서 소름이 돋는다고 했는데, 그 말이 장난처럼 느껴져 당시에는 웃어넘겼지만, 능소화 앞에 선 내 꼴을 보니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하루는 궁금증이 들어 네게 질문했다. 능소화보다 더 빠르게 꽃을 피우고 지는 벚꽃이라든가 벚꽃이 지고 나면 피우기 시작하는 겹벚꽃, 그것도 아니면 사랑이 연상되는 장미와 같은 꽃이 필 때는 관심조차 없더니 왜 하필 능소화냐고, 능소화만의 매력이 있냐는 나의 질문에 돌아온 너의 답을 들으니 괜히 머쓱해졌다. 능소화는 벚꽃이나 장미보다 늦게 꽃을 피우지만, 그렇게 피운 꽃은 채 사흘을 못 간다고, 오롯이 꽃을 피우는 기간이 이틀 내지는 사흘밖에 되지 않는데, 이때 예뻐해 주지 않으면 능소화의 삶은 무의미하지 않겠느냐고. 그 말을 듣고 나는.

이제 능소화를 볼 때면 네 말이 생각나겠다.

잘 된 일이야.

앞으로 능소화를 볼 때마다

내가 떠오를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우리는 늘 싸우고 화해할 때 어리게 굴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곤 했다. 어리게 군 게 아니라 그때 우리는 어린 게 맞았고 사랑에 미숙했다. 그게 당연했다. 서투른 사랑이 더 어울리던 나이에 나는 괜히 어른 흉내를 냈다. 너와 나의 다름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하지 못하니 인정할 수가 없었고, 우리의 사랑은 연애보다 토론에 가까웠다. 나만큼이나 한 성 하던 네가 왜 나를 떠나지 않았는지, 가끔은 왜 져주기도 했는지, 당시에는 의문이었던 것들이 나이를 먹을수록 풀려만 간다. 당시 너는 나보다 훨씬 더 성숙했고, 나는 너무 나밖에 몰랐다. 이제야 깨닫는다.

요즘도 누군가에게 선물할 꽃다발을 고를 때면 능소화가 꼭 눈에 밟힌다. 건물 담벼락을 타고 내려온 능소화를 보면 한 감상에 젖는다. 여름이 싫은 이유 중 하나는 능소화가 피기 때문이 아닐는지. 나는 능소화가 참 싫다. 어리숙한 내 모습이 비치는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