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정신병자인가?
아, 정신병 걸릴 것 같아 정신병. 우리는 정신병에 대해 쉽게 말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동시에 우리는 정신병 과포화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보이지 않는 병. 정신병의 종류는 정말 다양하다.
그럼, 정신병은 누가 정하는 것이며, 정신병은 언제부터 공식적인 병명으로 인정받은 것일까?
과거, 우리 부모님이 어릴 때만 해도 동네에 조금 모자란 사람이 하나씩은 살았다. 소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반푼이 황만근처럼, 그런 사람 하나씩은 동네에 살고 있었다.
아니, 그보다 전에, 훨씬 더 과거인 16세기 유럽으로 가 볼까?
중세 시대에는 신의 목소리를 대신 전해 주는 '무녀'와 왕을 즐겁게 해 주는 '광대'가 있었다. 이들을 현시대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지적장애인' 혹은 '경계선 지능 장애'일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들을 혐오하거나 따돌리지 않았다. 황만근도 자식이 있었고, 일거리가 있었다. 동네 바보 누나는 '무녀'라는, 동네 바보 형은 '광대'라는 직업을 가지고 사회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갔다.
조금 시간이 흘러 17세기 유럽. '대감금의 시대'가 열린다. 사람들은 정상인과 비정상인을 구분하기 시작한다. 이때 비정상인들은 감금되는데, 이때 감금된 사람은 프랑스 전체 인구의 1%나 된다. 감금된 사람들은 거지나 건달, 백수, 이교도나 무신론자, 동네 바보 등이었다. 그들이 감금된 그곳은 지금의 정신병원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들은 '일을 하지 않는다'는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에만 해도 노동을 하지 않는 사람은 '비정상' 취급을 받았다. 그러다 18세기 중반, 산업혁명이 발생한다. 산업 분야가 발전하며 일손이 부족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비정상인'이라 치부하며 병동에 가둬 놓았던 이들을 두들겨 패서 교화시킨다. 아, 사람을 때리니 말을 듣는다. 일 안 하던 거지나 건달들이 말을 듣고 일을 하기 시작한다. 어라?
두들겨 패면 다 바뀔 줄 알았는데, 그래도 바뀌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동네 바보라고 불리던 '광인'들은 때려도 말을 듣지 않는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광인을 '치료받아야 할 아픈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들에게 폭력을 가하지 않고 약물을 먹였다. 이들은 정신병자가 된 것이다.
한 사람에게 '정신병자'라는 낙인이 찍혀버리면, 그 사람이 어떠한 정상적인 행동을 해도 '정신병자의 행동'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정신병은 대체 무엇으로 진단되는 것일까?
정신병은 DSM(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의 기준을 따른다. 이러한 DSM도 시대를 따라 개정을 거듭한다. 시대가 바뀔 때마다 별의별 정신질환의 개수가 추가된다는 것이다. DSM-4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뒤 겪는 우울감도 정신질환으로, DSM-5에서는 폭식증까지 정신질환으로 분류한다. 정신 장애의 객관적인 기준을 만들었지만, 그 기준 자체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정신병은 원래부터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시대가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말이다. DSM-2까지만 해도 정신질환으로 분류되었던 동성애가 DSM-4부터는 빠졌다. 시대에 따라 정신병에 대한 기준이 바뀌고 바뀐다. 지금 와서 보면 비정상 취급을 받을 사람들도, 과거에는 정상인과 함께 잘 어울려 지냈으니 말이다. 현시대의 사람들은 너무 예민하다. 분류하기를 너무나 좋아하고, 무언가에 의지하기를 바란다. 자립하기를 두려워하고 조금만 아프고 힘들어도 큰일이 생긴 것처럼 행동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정신병은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개념이며, 시대에 따라 바뀌는 상대적인 개념이라는 것이다. 물론 정말 치료가 필요한 정신분열병 환자는 존재한다. 그러나 그리 치료를 받을 정도로 심각한 수준의 환자는 드물다는 것이다. 정상인은 없다. 완벽한 성인은 없다. 그러나 정상이 아니라고 해서 비정상은 아니다. 정상과 비정상 사이의 회색지대가 넓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진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당신은 많이 힘들 것이다. '절대적인 정상 기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다면 스스로 '비정상'이라고 의심하게 되고, 병원에 간다면 의사는 당신의 그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어 준다.
당신은 '정신병자'가 된 것이다. 의료계와 제약회사는 병을 만들고 약을 팔 때마다 돈을 번다. 손을 하루에 서른 번 씻는 사람에게 결벽증이라는 진단을, 삐뚤어진 건 못 참는 사람에게 강박증이라는 진단을, 우울해서 죽고 싶다는 사람에게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아, 자신감이 넘치는 나는 자기애성 성격 장애고, 인스타그램에 피드를 올려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인플루언서들은 연극성 인격장애라고 한다. 그렇게 사소한 것들 하나하나에 병명을 붙이고, 진료비를 받는다. 그렇게 약을 팔고, 상담을 해 준다.
왜냐고?
돈이 되니까.
우리는 모두 비정상인이다. 하지만 그 사실에 매몰될 필요가 없다. 이전까지 '정신병'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들이 '정신병'으로 치부되며, 이제는 '정상'이라는 개념이 희미해졌다. 원래 인간은 항상 행복할 수 없고, 우울함도 느끼는 것이다. 아무리 강한 사람도 무너질 때가 있다. 원래 인생은 행복과 슬픔의 반복이고, 우울감을 느낀다고 해서 '우울증'이라는 낙인을 찍고 살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아마 우리 모두 정밀 검사를 받으면 어디 하나씩은 문제가 있을걸?
나부터도 언젠가 누군가로부터 자기애성 성격 장애 검사를 받아 보라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낙인을 찍고 그것에 매몰되는 것이 싫다.
우리는 보다 강해져야 한다. 정말 정신이 아픈 것을 참으라는 것이 아니다.
심각한 정신질환자는 치료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당신의 그 아픔은 진짜 아픔인가?
잘 생각해 보아라. 당신이 진정으로 홀로 이겨낼 수 없는 것인지, '정신 질환자'라고 진단받아 약물을 먹어야만 이겨낼 수 있는 것인지. 약을 먹는다고 정말 낫는 병인지. 상담사가 던지는 질문들이 당신이 낫는 데에 도움이 되는지. 우리는 넓고 넓은 회색지대에 속한 채로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 대해 잊지 말자. 이상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