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명 청춘! 봄이다! 따뜻한 바람이 불어온다. 내리던 눈은 꽃비가 되고, 볕의 길이가 길어지는 시기가 도래했다. 차려입은 여자아이들의 치맛자락이 흩날리고 술집앞 사람들의 발걸음은 휘청거리며 어색한 사람들과 얼어붙은 표정으로 대화를 나눈다. 늙은 교수는 문학개론을 설명하다 기침을 토하고 토끼 사는 잔디밭에선 매일 같이 버스킹이 열린다.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한 걸음을 내디디면, 밟고 가는 자리마다 생명이 돋아나는 계절.
4월이 왔다. 이곳은 한 대학교의 캠퍼스 중심이고 봄날의 한 가운데서 소리친다
나는 청춘이다!
작년 이맘때는 나도 사랑이란 걸 했다. 걸음걸음마다 생기가 돋았다. 청춘을 대표하는 곳인 캠퍼스에 입성했다는 사실이 마냥 기뻤다. 캠퍼스 밖을 살아가는 청춘들 역시 자신들의 삶을 사랑했다. 스무 살. 고등학교 졸업장 하나 손에 덜렁 쥐어진 채 사회에 내던져졌어도 마냥 행복했다.
얘들아, 너희는 웃기만 해도 예뻐. 하던 선배의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이상하게 쌓은 젠가를 보며 깔깔거리던 날들. 동네 친구들과 곱창에 소주를 마시고. 처음으로 키스 이상의 것을 해보거나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교복을 입은 채 사진관에 가서 기록을 남기던 어떤 시간들이 있다. 우리는 이런 날들을 청춘이라 부르고 추억으로 남겨 둔다.
올해 이맘때는 나도 고민이란 걸 한다. 모두들 나를 청춘이라 부르는데 하나도 즐겁지 않다.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듣다 마음이 물러져 남몰래 울음 터트린 적이 몇 번인지 모르겠다.
누구도 나의 삶을 칭찬해 주지 않고 들여다봐 주지도 않는다. 똑같은 강의실에서 똑같은 친구들과 듣는 비슷한 강의. 얻어가는 것 하나 없는 권태로운 일상. 과실에서 밥을 먹는 후배들에게 무심코 너희는 웃기만 해도 예뻐라고 해주다가 깨달았다. 웃기만 해도 예쁘다는 건 울고 싶어지는 날이 많아질 거라는 뜻이었구나.
나는 짬짬이 연애하고 느긋하게 공부하는 인간이다. 이런 나를 사람들은 '청춘'이라고 부른다. 청춘을 대표하는 건 다 갖고 있다고. 넌 좋겠다고. 나도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그렇단다. 그래서 그냥 걷고 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데 그냥 가본다. 내가 정말 좋은지도 모르는데, 그냥.
청춘은 푸를 청에 봄 춘을 쓴다던데 진짜인가요.
네, 진짜입니다.
봄은 다가왔고 푸른 향이 코 끝을 간질인다. 걷는다. 뛴다. 숨이 차오를 때까지 학교 운동장을 돈다. 누군가 그랬다. 청춘은 행동해야 하는 때라고. 져버린 태양은 아무것도 비춰주지 않고 일렁이는 마음은 생각을 불러온다. 나도 고민이란 걸 한다고 했지. 맞아. 난 고민이 너무 많아. 그런데, 즐거운 것도 정말 많아. 난 예쁜 구두를 좋아하고 인디 밴드를 좋아해. 서점의 묵은 향기와 커피의 시원함을 좋아해.
이런 게 나야. 빠르게 뛰는 심장박동만큼 마음이 일렁인다. 난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고 어디에 취직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몇 살에 결혼을 할지, 연봉은 얼마일지 그런 거 하나도 몰라.
그럼 뭐 어때.
왜냐면, 나는.
나는! 봄이다. 따뜻한 바람이 불어온다. 내리던 눈은 꽃비가 되고 볕의 길이가 길어지는 시기가 도래했다. 스쳐 지나간 어떤 이의 비누 향을 사랑했고, 품에 묻은 누군가와의 추억은 아리다. 울었던 날만큼 무뎌질 것이고 떠나간 만큼 받아들일 것이다. 어수선한 캠퍼스와 달아오른 사람들 사이에 서있는 나.
나는 청춘이다. 이나비
그렇게 다시 봄봄은 해가 느리게 죽는 계절. 나는 이 계절이 참 싫다. 이제 겨우내 앙상하던 가지에 꽃이 하나둘 피고 니트를 드라이한 후 잘 개어 옷장에 넣어둘 때. 다들 날씨가 좋다고 난리, 다들 꽃구경 간다고 난리, 다들 봄이 왔다며 난리. 살면서 봄 싫다는 사람 못 봤지만, 나는 봄이 싫다. 봄만 되면 펼쳐지는 이야기. 내 인생도 사실은 트루먼 쇼가 아닐까? 이 정도면 내가 절대자에게 찍힌 것이 아닐까?
내게 3월은 그렇다. 그 어느 3월도 빠짐없이 내 청춘의 3월은 최악이었다. 위선적인 사람들과 가식적인 사랑들. 유혹하듯 흘리는 노랫소리를 따라가 보면 그 끝에는 자기혐오만이 남았던 봄. 잊어야 한다면 잊혀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그해 3월. 어차피 지나가야 할 것은 빠르게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지난 3월.
아, 그래서 올해 3월은 그러지 않았으면 했는데, 이번 3월은 탈 없이 지나가나 싶었는데 결국에는 벌어지고야 만 이야기. 결국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 나는 볼 수 없는 이야기. 미워할 것 같으면 사랑하라면서?
차라리 3월에도 해가 빨리 죽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미워할 수 없었을 텐데. 해 지고 나야 비로소 내 상념의 수명이 짧아져 아쉬운 4월의 저녁이다. 성북구글싸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