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찰나지만, 봄에 담긴 사랑 이야기는 그 어느 계절보다 많으니까..


봄에 담긴 사랑 이야기 열대야 버티고 버티다가 오늘 결국 선풍기를 꺼냈어. 이제 정말 여름인가 봐. 대문을 나서면 따뜻한, 아니, 뜨끈한 공기 때문에 표정이 구겨지네.

무얼 쓰면 좋을까. 여름이 오면 아주 근사한 편지 하나 너한테 부치고 싶었는데.

너를 담자니 네가 나에게 없고, 우리를 담자니 우리가 꽤 예전에 멈춰 서 있으니. 이 편지에는 네가 놓쳤던 겨울의 나부터 담아볼게. 겨우 흐리게 남아 있는 기억이야. 아주 어릴 때, 펑펑 내려 쌓인 눈을 보고 미치도록 설레었던 기억이 있어. 내 집 뒤에는 꽤 경사진 동산이 있었거든. 그곳에 눈이 쌓여 있으면 새벽같이 일어나서 썰매를 타러 나갔어. 그땐 전화기도 없었는데 약속이라도 한 듯 친구들이 하나둘 모였지. 우린 박스나 비료 포대같이 대충 썰매가 될 법한 것들을 주워다가 종일 구르고 미끄러졌었어. 어찌나 신나던지. 헤진 패딩이랑 스키 장갑을 막 끼고 나가려고 하면 아빠가 너도 철이 들면 눈이 지겨울 거니까 지금은 실컷 나가서 놀라고 했던 것이 기억나. 아빠는 내가 아직까지도 철이 안 들 줄은 모르셨을 거야.


봄에 담긴 사랑 이야기 작년 겨울엔 처음으로 눈이 지겨워지기 시작했어.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려면 포장이 다 벗겨진 지하차도를 지나야 했는데, 눈이 내린 다음 날 땅이 얼면 그 길이 얼마나 미끄럽던지. 그곳에서 네 번 정도 넘어졌을 때, 눈은 참 지겨운 것이라고 생각했어. 눈 덕분에 놀거리가 생기는 것보다 눈 때문에 불편한 게 더 많다는 것을 알고 나서 말이야. 그리고 깨달았지. 나 이제 정말 철들어야 하는 나이구나. 하고 말이야.

어른이 된다는 건 뭘까?

나는 아직도 확신이나 신념으로 행동한다기보다 조급함과 긴박함에 떠밀려 살아가는 것 같아. 내가 지금 가진 것 중에 진심으로 원해서 선택하고 책임졌던 것은 얼마나 있을까?

그래서 이왕이면 너도 얼떨결에 떠밀려왔으면 싶기도 했었던 것 같아. 어렸기 때문에 두려웠고 그래서 끝내 택하지 못한 과거의 것들이 나를 맴돌아. 그리고 너는 내 마지막 어리광이었으면 해.


봄에 담긴 사랑 이야기 나는 선택이라는 것은 하나를 고르면 남은 하나를 포기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어. 작년 여름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었던 우리, 나머지 절반을 포기하기 두려워 망설였던 내가. 차라리 고르지 않는 것이 둘 다 선택하는 거라고 생각했던 짧은 생각이 사실은 둘 다 포기하는 일이라는 것을, 선택의 시체가 산처럼 쌓이고서야 알았어. 그땐 뭐가 그렇게나 무서웠을까?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주는 건 아닌가 봐. 대충 1년쯤 지나면 아무렇지 않겠거니 싶었거든. 올해 여름은 이 착각을 방패 삼아 내가 온전히 받아들여야 했던 것들을 시간에 떠넘겨 받는 벌일까. 아직도 너를 생각하면 뜨겁게 가라앉은 마음이 내 온몸을 쿡쿡 찌르는 느낌이야. 나는 1년이 이렇게나 짧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아프게 배웠어.


봄에 담긴 사랑 이야기 나는 아직도 열대야에 살고 있어. 찌는 듯한 낮이 훌쩍 지난 새벽, 같이 걸었던 그 공원을 기억해?

가끔 지나가는 사람들이 우리를 위한 배경으로 느껴졌던 만큼 우리가 우리였던, 여름인 걸 잊을 만큼 시원했던 그날의 공기는 참 신기했는데. 우리의 여름이 다 지났을 때쯤 걱정되더라. 함께였던 여름이 가고 완벽히 각자인 겨울이 오면 어떡하지. 네가 또 다른 여름을 만나면 난 어떡하지.

네가 내년 여름에 도착할 때까지도 난 올해의 열대야에 살 텐데. 그렇게 생기는 1년의 간극을 정말 어떡하면 좋을까. 막상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나선 쓸데없는 걱정이 되었지만 말이야. 그래서 이제 어떡할 거냐고?

글쎄. 적어도 더는 회피하는 삶은 살지 않으려 해. 회피는 완전한 도망이 아니라서, 어떻게든 다른 방식으로 견디게 하기 위해 나를 쫓는다는 것을 알았거든. 이번 여름이 지나면 난 철이 들 거야. 떠밀려오는 성공보다 선택하는 실패를 택할 거야. 그러니 너도 올해 여름을 잘 보냈으면 해.

더운 여름이기보다는, 뜨거운 여름으로! 김현수


봄에 담긴 사랑 이야기 좋아해보다 좋아해 안녕, 네 생각이 나서 이렇게 갑자기 편지를 쓰게 됐어.

오늘 봄을 사랑하고 왔거든. 그래서 네 생각이 났어.

너와 만났던 게 벌써 2년 전이라니 시간이 참 빨라. 세상의 중심이었던 거 같았던 우리가 점점 중심으로부터 멀어지는 거 같아서 신기하고 무서워.

있잖아, 너는 2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어?

나는 너와의 1년을 떠올리고 지냈어. 사람이 살아가는 인생에서는 고작 1년이지만, 그 시간이 나에게는 무척이나 소중하거든.


봄에 담긴 사랑 이야기 나는 우리가 멀어진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널 떠올리지 않은 적이 없어. 너는 내 세상 속에, 내가 걷는 길의 표지판에, 내가 가는 식당 골목에, 내가 좋아하는 따뜻한 봄옷자락에, 여름비에 막아주던 작은 우산 왼편에, 가을바람에 떨어진 낙엽들 밟는 소리에, 함께 보고 싶어 했던 겨울 함박눈 속에.

모든 순간에 네가 있더라고.

그 당시에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네가 없어지니 조금. 조금 더 알겠더라고. 나는 앞으로도 살아가는 매 순간순간에 너를 떠올리며 세상이 아름답게 보일 거 같아.

그런 생각이 들었어.

너는 나에게, 그런 힘을 주고 떠나간 게 아닐까. 내가 한숨 쉬는 걸 안 좋아했던 너는 나에게, 어디서든 널 떠올리고 슬퍼하지 않을 힘을 주고 간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 기특하고 고마웠어. 얼굴에 웃음이 번졌어.


봄에 담긴 사랑 이야기 내가 오늘 봄을 사랑하고 왔다고 했지?

오늘 길을 걷는데 벚꽃이 활짝 피어 있더라고.

박수 소리처럼 피어있는 벚꽃들이 얼마나 예뻤는지.

그걸 보니까 너랑 처음 벚꽃을 볼 때가 생각나는 거 있지.

너도 그때를 기억하고 있을까.

가슴속에 간직하고 한 번씩 열어보고 있을까. 마치 꽉 쥔 주먹처럼 벚꽃은 피어있지 않았지만 나랑 함께 봐서 예쁘다고 해줬던 걸 기억하고 있을까.


봄에 담긴 사랑 이야기 그렇게 한참을 벚꽃을 보다가 우리가 많이 주고받던 말이 떠올랐어. 내가 "좋아해"라고 말하면 네가 "좋아해보다 더 좋아해" 그렇게 유치한 말은 없다고 생각했어.

정말 유치한 표현에, 사랑한다는 말도 아니지만.

나에게는 그 말이, 그 어떤 '사랑해'보다도 크고 깊은 '사랑해'였어.

너의 곁은 아니지만 이 봄날에 나도 말해볼게. 모든 말을 이 말로 대신할게.

유치하게.

"좋아해보다 좋아해. 많이 보고 싶어." 히아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