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영원을 믿는 바보들만의 문화 잠에 들지 못하는 이유는 언제나 비슷하다. '이성의 브레이크'가 고장 난 채로 현실적인 생각과 몽상 사이를 오가는 자동차에 탑승했기 때문이다. 만약 그 차가 '지프 랭글러' 정도 되는 차였다면, 차체의 튼튼함을 믿고 덜 긴장했을지 모르겠다. 문제는 내가 탄 차는 이름 모를 회사에서 만든 이름 모를 자동차라는 것이다. 어쩌면 만들어질 때부터 브레이크 따위는 없었을 수도 있다. 어둑해진 밤에 내가 주로 오가는 길은 사랑이다. 그 길이 '좋아하는 이에게 어떻게 하면 잘 보일 수 있을까' 하는 직선적인 길이였다면, 차에 탄 채로도 편안히 잠이 들었을 테다. 하지만, 내가 달리는 이 길은 꼬불꼬불하여 멀미가 나는 정도가 아니라, 정말로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스러울 정도로 난잡한 길이라서. 그래. 내가 오가는 길은 사랑이고, 나는 사랑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사랑은 영원을 믿는 바보들만의 문화 마음 같아서는 세상의 모든 이들과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 얘기를 나눠보고 싶다. 나와 상대방만 있는 비밀스러운 공간에서, 시간에 구애받지 않으며, 피곤하지도 술기운에 몽롱하지도 않은 채로 말이다. 나를 위해 명확한 해답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러니까 '내가 사랑에 관하여 무어니 무어니 떠들어 대도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확고한' 저마다의 확실한 사랑을 품고 사는 사람 말이다.
사랑은 영원을 믿는 바보들만의 문화 나는 단 한 번도 사랑의 관념을 명확히 정의 내리지 못했다. 그런 사랑은 중심이 없어 형체를 걷잡을 수 없었고, 동시에 모순적이었다. 패턴은 유사했다. 우선 미지의 부분이 많은 상대를 멋대로 이상화(理想化)했고,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이상이 현실을 아님을 자각하는 과정을 통해 '멋대로 만든' 이상을 깨뜨려갔다. 이기적인 사랑이라 손가락질하겠지만 대부분의 사랑이 이런 맥락을 포함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랑은 영원을 믿는 바보들만의 문화 아래는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발췌한 글이다.
- 우리는 타락한 우리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이상적인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서 사랑을 한다. 그런데 그런 존재가 어느 날 마음을 바꾸어 나를 사랑한다면 어떻게 될까?
(중략) 그/그녀가 정말로 그렇게 멋진 사람이라면, 어떻게 나 같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 어쩌면 어떤 사랑은 아름답거나 고귀한 존재와 사랑의 동맹을 맺음으로써 우리 자신과 우리의 약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충동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사랑은 영원을 믿는 바보들만의 문화 "사랑은 영원을 믿는 바보들만의 문화" 내가 사랑에 관해 고민하다가 떠올린, 또 그 후로 늘 가슴 속에 품고 사는 말이다. 적어도 영원을 믿어야 사랑을 즐길 수 있다는 의미다.
언제 사라질지 몰라 가슴 졸이는 사랑은, 감당하기에 너무 버거운 마음이지 않은가. 나는 일찍이 결혼하고 싶다. 또 운명을 믿기로 했다. 영원을 믿는 바보가 되기 위해, 나를 알아가고 또 바꿔 가려, 노력하는 요즘이다. 잠에 들지 못하게 하는 야간 운행도 노력의 일부이다.
지금 이곳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늘 서로의 곁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