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사랑하지만 그래서 우리는 여기까지인 것 같다'는 말로 대충 이별을 얼버무리던 때가 있었다. 사실, 이별을 향해 달려가는 연인들은 서로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알고 있다.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도 대충 누구 하나가 먼저 말을 꺼내면 이 관계는 끝이라는 사실을 인지할 눈치 정도는 있을 테니까.
그럼에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는 이유는 이별을 마주할 자신이 아직 없기 때문이거나 이별을 입에 올릴 용기가 없어서겠지.
나도 그랬던 때가 있다. 상대방과 이별은 하고 싶은데, 그렇다고 직설적으로 '이제는 네가 질린다'라고 말하며 헤어지자니 나쁜 놈이 되는 것 같고, 내가 나쁜 놈 되기는 싫고, 그래서 그냥 대충 '사랑하지만 그만 만나자'는 말로 이별을 얼버무렸다. 못됐다는 것을 알지만, 직설적인 개새끼가 되는 것보다는 회피하는 개새끼가 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그랬다. 스물여섯일 적에 만났던 그 애는 나보다 네 살이 어렸다. 내가 먼저 다가가서 연애를 시작하게 됐다마는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참... 만나기 전과 후가 또 다른 법이니까. 이것도 어쩌면 핑계겠지. 아무리 예쁜 사람과 만나 연애하더라도 질리는 순간이 온다.
누구는 권태기라고 부르고 누구는 이별할 시기라고 부르는 그 시기가 온다. 권태기라고 하면 대화를 통해 잘 풀어나가야 하지만, 당시 내게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꼬인 매듭을 풀어나갈 생각은 않고 끊어내는 것이 정답이라 생각했다.
난 너를 너무 사랑하지만 그래서 우리는 그만 만나야 할 것 같아.
오빠, 사랑하는데 왜 헤어져야 해?
예상치도 못한 답변을 받았다. 여태 받아 본 적 없는 질문이라 당황스러웠다.
그 풋풋함과 치기 어린 당돌함에 웃음이 나왔다. 그러자 하는 말.
응?
사랑하는데 헤어진다는 게 어디 있어?
그러게.. 사랑하는데 왜 헤어져야 할까?
그날 나는 우리가 이별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려고 노력했지만, 이야기를 꺼내면 꺼낼수록 반박만 당할 뿐이었다. 그래, 그 애의 말마따나 나는 계속 이별의 이유를 찾으려고 들었고, 그녀는 해결책을 내놓았다. 손을 쓸 수가 없었다. 대화가 계속될수록 내가 미워질 뿐이었다. 나는 왜 이런 사람을 두고 이별을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나이를 스물여섯이나 먹어 놓고 스물한 살짜리 애인보다 책임감 없는 행동을 하는 내 모습에 대한 실망감, 질릴 때마다 이별한다면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며 미안함이 몰려왔다.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로 내 앞에서 조잘조잘 떠드는 애인을 꼭 안았다.
사랑해서 하는 이별은 없다. 사랑하기에 할 수밖에 없는 이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듣기 좋은 거짓말일 뿐. 이별은 하고 싶은데 명분이 없는 사람들이 줄곧 내뱉는 거짓말. 듣는 사람의 가슴에는 비수가 꽂히는 그 말. 해서는 안 되는 그 말. 너무 사랑하지만, 그래서 이별해야 할 것 같아.
그녀 덕분에 나는 회피하는 습관을 고쳤다. 이별에 이유를 찾지 않게 되었다. 질린다고 이별하는 나쁜 습관을 고쳤다. 있을 때 잘해야 하는데 인간은 늘 놓치고 후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