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 빠진 사랑 스물한 살 때, 첫 연애를 시작했을 때였다. 처음 스무 살이 되어 대학에 가고, 엠티를 가고. 그때까지만 해도 여자를 대하는 것이 두려웠다. 주변 친구들 보면 남중 남고 나오고도 대학 와서 연애 잘만 하던데, 나는 여자랑 카톡할 때도 손에 땀이 날 정도였다. 전화라도 할 일이 생기면 자리에 앉아 있지를 못했다.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빙글빙글 돌아다니며 전화를 했다. 이런 나를 도저히 못 봐주겠다며, 왜 얼굴도 멀쩡한 놈이 그렇게 사냐며 친구들은 나를 헌팅 포차에 데려가기도, 과팅에 데려가기도 했지만, 결국 나를 짓누르고 있는 내 안의 무언가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렇게 연애에는 미련을 버리고 살던 어느 날, 나와 함께 모태솔로 스택을 쌓고 있던 친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연애를 시작했다고 하는데, 심지어 친구가 마음에 드는 사람한테 번호를 물어봐서 만나게 됐다고 하는데, 정말이지 머리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친구끼리 이런 말을 하면 안 되는 거 알지만, 그때 들었던 감정은 딱 이거였다.
어떻게 쟤가 번호를 따서 연락을 하고 연애를 한 거지?
나도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나도 연애 좀 하고 싶었다. 친구들에게 여자랑 연락하는 법도 배우고, 어색한 분위기를 깨는 팁 같은 것도좀 배웠다. 듣고 보니 나도 다 알고 있는 것들이었지만, 나를 조여 매고 있던 두려움 때문에 다 된 밥에도 스스로 재를 뿌렸던 것이었다. 인제 와서 보면 그렇게까지 두려워할 것도 없었는데 말이다. 내가 그렇게 두려워하던 여자들도 사실 나와 동갑내기들이었고, 성별만 다르지 다 같은 사람인데 말이다.
그때부터 닥치는 대로 여자를 만났다. 연애를 하고, 섹스를 하고 이랬다는 게 아니라 일단은 두려움을 좀 없애기 위해서, 배운 것들을 써먹으며 경험치 좀 쌓기 위해서 여자를 많이 만났다. 아, 그래도 길거리에서 번호 물어보는 건 도저히 못 하겠더라. 나도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전까지 만났던 여자들은 모두 대학교 밖의 여자들인데, 연애는 같은 과 후배랑 하게 됐다. '이상형'에 정말 가까운 사람이었다. 팀플을 같이 하고, 밥을 먹고, 주말에도 만나고, 영화를 보고, 산책을 하고, 그렇게 한 달 정도 지내다 보니 이 정도면 연애하는 거 아니냐는 말을 상대방이 먼저 꺼냈다.
그러면 우리 제대로 만나 보겠냐는 말을 시작으로 우리는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다.
스킨십. 솔직히 하고 싶었지만 엄두가 안 났다. 키스를 어떻게 하는지도 몰랐고, 혓바닥으로 알파벳이나 그리면 되는 줄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기껏해야 손잡는 것까지밖에 못 했다. 상황은 그날 자취방에서 벌어졌다. 손잡고 영화를 보다가 우리는 처음으로 입을 맞추고, '키스'라는 것을 하게 되고, 영화 소리보다 큰 우리의 숨소리가 방 안을 뒤덮고, 슬쩍 옷을 벗기려는데 그녀가 하는 말.
오빠. 나 사실 혼전순결이야. 우리 딱 키스까지만 하자. 뭐,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랑하면 지켜 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살았기 때문에, 이 연애의 끝은 결혼일 것이라는 확신 때문에 나는 본능을 버리고 이성을 찾았다. 우리는 섹스 한번 하지 못하고 헤어졌다. 섹스 때문에 헤어진 건 아닌데, 그것이 이별과 아예 무관했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 한 말은 지켰어야지. 그녀가 카톡 프사에 남자친구와 수영복 차림으로 호텔 거울에서 찍은 사진을 업로드한 그날을 나는 잊지 못한다. 나는 그녀에게 딱 그 정도였나 보다. 키스까지만 괜찮은 사람 정도. kiu930
사랑 빠진 섹스 연애는 신경 쓸 게 많아서 귀찮고, 그렇지만 곁에 아무도 없으면 외롭다. 연애 좋은데 어차피 끝은 이별. 돈은 돈대로 나가고,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사랑도 결국에는 무거워져서 감정 낭비가 심해진다. 이별 후에 찾아오는 무력감과 후유증은 말할 수도 없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이제는 연애를 마냥 좋아한다는 감정만으로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연애가 무겁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게 연애를 쉰 지 2년이 넘었다. 사람이라면 성욕이 들기 마련인데 혼자 해결하는 건 질렸다. 그렇다고 돈 내고 섹스하는 건 이해가 안 됐다. 굳이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결혼하기 시작했다. 서른두 살이면 그리 많은 나이도 아닌데, 그렇다고 적은 나이도 아닌 참 애매한 나이. 나는 다니던 직장을 관두고 다른 곳으로 옮겼다. 그곳에서 전전전 여친이었나 전전전전 여친이었나, 아무튼 내가 스물세 살 때 만났던 너를 마주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너무 달라진 모습에 너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런데 익숙한 이름에 익숙한 목소리, 잊은 것 같았지만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에 소름이 쫙 돋았다. 아, 내 기억 속 네가 맞구나. 거의 10년 가까이 되는 시간이 흘렀으니 이별할 때의 악감정도 사라지기 마련. 우리가 무엇 때문에 싸웠고, 무엇 때문에 헤어졌는지도 솔직히 가물가물했다. 나만 반가웠던 것이라면 일도 아니었겠지만, 너도 나 못지않게 반가워하는 모습에 우리는 처음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남자와 여자 단둘이 마시는 술은 위험하다. 그 상대방이 전애인이라면 더욱. 그 상대방과 섹스까지 '했었던' 사이라면 더더욱. 시간이 흘렀지만 몸이 기억했다. 너는 늘 좋은데이만 마셨고, 딱 일곱 잔을 마시면 취했다. 너와 나는 늘 2차로 할맥을 갔다. 그리고 먹태에 맥주 500cc를 두 잔 시켜 마시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도 그랬다. 나도 취하고 너도 취했다. 서로 말은 안 했지만 갈 곳은 뻔했다. 사랑 없이 사랑을 나누고 침대에 누우니 우리의 과거가 떠올랐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그토록 싸웠는지, 우리가 무엇 때문에 사랑을 접게 되었는지. 차마 우리가 무슨 사이인지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섹스에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 사랑 없는 섹스는 오히려 혼자일 때보다 외롭다. 너와 내가 애매한 사이가 되어 누구 하나는 속으로 앓아야 하니까 말이다. 이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