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 처음 가 보는 모르는 장소에 너와 단둘이 던져지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우리는 버스를 타고 통영에 갔고 기차를 타고 여수에 갔다. 여수에서도 젊은이들이 많이 간다는 이순신광장이나 낭만포차 따위에는 가지 않고 돌산 어느 외진 곳에 가서 길을 잃을 뻔했다. 둘 다 처음인 공간에서 해가 졌고, 도회적인 분위기에 익숙한 우리는 전광판 불빛 아닌 1리에 한 개꼴로 있는 가로등 불빛에 의존한 채 오르막길을 걸었다. 해가 지기 전에 숙소로 들어가 몸을 녹이자는 계획은 엉켜버린 지 오래지만 웃음밖에 안 나왔다. 오르막 언저리에 위치해 있던 절을 보고는 향일암이 아니냐는 너의 농담에 우리는 한바탕 웃었다. 그렇게 웃을 일도 아니었는데 그곳은 마치 우리의 세상 같았다. 젊은 날을 담보로 대관한 세트장 같았다. 그러다 정류장에서 30분쯤 기다리다 탄 버스가 사실은 막차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클라이맥스였다.
정말 길을 잘못 들어 삼천포로 빠져 한 상에 3만 원인 볼락정식을 먹었을 때도, 소래포구 늙고 오염된 항구 앞에서 위험하게 멍하니 앉아 내리는 비를 맞을 때도. 저기 어디였더라. 청주와 조치원 사이를 가로지르는 어느 강변을 타고 늦은 밤 자전거를 탈 때에도. 우리의 계획은 늘 무용지물이 되었지만 그것대로 좋았다. 함께한다는 사실 자체가 좋았다. 그러다 어느 날 걱정 하나가 들긴 했다. 언젠가 누구 하나의 마음이 다른 하나의 마음보다 덜해진다면, 그때가 된다면 우리는 계획이 엉클어지는 것에 대해 지금처럼 웃으며 넘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 우리의 사랑도 계획과 다를 것 없었다. 꼬이고 헝클어지고. 우리가 여수에서 길을 잃었을 때처럼 무대를 뒤집는 클라이맥스가 나올 줄 알았지만 그런 기적은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그렇게 우리는. 그렇게 나는 너를 여수에 두고 왔다. 네가 나와 함께한 장소는, 내가 너와 함께한 장소는 이제 타인으로 덮여 간다. 건대멋쨍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