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팔십일 남짓 연애하며 손 편지를 일흔두 편이나 썼다. 몇 번이고 가서 지도를 보지 않고도 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한 동네인데 처음 가 본 척을 했다. 처음이 아닌데 처음인 척을 한 적이 있다. 처음인데 처음이 아닌 척을 한 적도 있다. 그게 나의 처음이었다. 신이문역에서 신촌까지 걸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때 흘린 눈물의 이유는 내 첫 애인의 전애인 때문이라는 사실은 나만 아는 비밀이다. 애인이 나를 만나기 전에 만났던 섹스 파트너로부터 연락받은 적이 있다.

그럼에도 사랑이라는 이유로 이별하지 못했다


전애인의 친구와 연애했다. 회기에서 만난 그 사람이 맞다. 좋아하는 사람의 호감을 사기 위해 서울역 계단에서 첫차를 기다리며 함께 노숙했다. 내 취향이 아닌 노래를 듣고는 '이런 류의 노래를 찾고 있었다'라고 말하며 좋은 척했다. 그렇게 계속 노래를 듣다 보니 진짜 좋아졌다. 버리지 말라던, 떠나지 말라던 애인의 잠꼬대 대상이 누구인지 잘 알지만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애인이 친구와 나누던 통화에서 새어나오던 그녀의 과거사는 또 내가 감수해야 할 과제였다. 애인이 연락도 없이 사라졌지만 나는 신고할 수가 없었다. 며칠 뒤 애인은 방황을 끝마치고 돌아왔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이별뿐이었다. 서울역 입구로 나와 오른쪽으로 꺾어 조금만 걸어 나오면 보이는 14번 출구. 그 옆 자그마한 주차장에서 애인에게 뺨을 맞았다. 무릎을 꿇은 상태로 뺨을 몇 번 더 맞았지만, 이별이 두려워 맞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애인의 능숙함에서 왜인지 모를 불쾌함을 느낀 적이 있다. 불쾌함의 원인을 알고 있지만 입 밖으로 내뱉은 적은 없다. 능숙한 애인과 능숙한 내가 만나 섹스할 때, 우리 둘 다 처음이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두 번째였나 세 번째 연애에서 사람마다 사랑의 크기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사랑이 애인의 사랑보다 작다는 생각이 든 어느 날 헤어지자고 했다. 애인의 눈물이 내 가슴을 아프게 만들지는 않았다. 나는 사랑하면서 위선과 자기연민 때문에 눈물 흘린 적이 더 많은 듯하다.


데이트할 비용이 없어서 지하철도 타지 않고 걸어 다니던 때가 있었다.

그럼에도 더치페이하자는 소리는 할 수가 없었다. 애인 앞에서만큼은 슈퍼맨이고 싶었다. 나보다 여덟 살 많은 여자와 만나 키스한 적이 있다. 현실은 청춘이지만 도저히 여자와의 미래가 그려지지 않아 연애하진 못했다. 반년 뒤 그 여자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돈이 필요해 숯불갈비집 막일에 지원했지만, 그곳에서도 사랑을 피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만난 애인(최) 때문에 내가 얼마나 망가졌던가. 연락이 오지 않으면 불안했지만 그럼에도 사랑이라는 이유로 며칠이고 기다렸다. 근사한 기념일을 위해 한 달 월급 절반을 하루 만에 다 쓴 적이 있다.

그럼에도 최가 관심 가지던 것은 내가 쓴 편지도 아니고, 내가 고른 꽃다발도 아닌, 명품 로고가 박혀 있던 자그마한 카드 지갑이었다. 망상에 빠지는 습관은 최 덕에 생겼으리라. 훗날 최가 술집에서 보인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나는 현실을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 기억 속 최는 영원히 청춘이기를 바랐다.


훈련소에서 이별을 통보받았을 때는 이 나라가 너무나도 미웠다. 이별했다는 사실보다는 다른 남자가 애인을 품고 있으리라는 상상 때문에 괴로웠다. 사랑 때문에 아플 때면 유은이 떠올랐다. 그 감정은 '사랑하고 싶다'가 아니라 '사랑받고 싶다'였던 것 같다. 유은의 쓴소리는 늘 예상 그대로였고, 그래서 썼지만 나는 들을 때마다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내 글이 좋다는 유은의 말에 글을 부지런히 썼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유은이 남긴 의미심장한 초성 메시지를 풀어내기 위하여 전재산의 절반 정도 되는 돈을 썼다.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고백하기 위해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꽃집에 꽃다발을 예약한 적이 있다. 고백하자마자 들은 소리가 '전남친은 이런 거 해 준 적 없는데'였지만 나는 화낼 수가 없었다. 나는 군대에서 연락 닿은 윤지*와 결혼까지 망상했다. 전애인이 그리워질 때도 자칫 '지난 사랑이 얼룩질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연락하지 못했다. 전애인과 다시 만난 경우는 유은이 처음이다. *유료 메일링 서비스 「군대 있을 때 만났 '던' 여자들...②」 참고


장거리 연애를 할 적이 생각난다. 금요일만 되면 이마트에서 파는 부직포 가방에 이틀 치 짐을 쑤셔 넣고 덜컹거리는 무궁화호에 몸을 실었다. 첫차를 타고 서울에 가면 일요일 저녁 막차를 타기 전까지 애인과 붙어 있었다. 막차를 타고 돌아올 때면 버스가 끊겨서, 집으로 돌아올 때는 늘 택시를 타야 했다. 그 택시비 오천 원이 없어서 친구에게 담뱃값 좀 빌려달라는 전화를 한 적이 있다. 사랑 때문에 우울했던 적이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 슬피 울었던 적이 있다. 그때 만났던 애인이 쓰던 비밀번호는 나와 만나기 전에 만나던 사람과의 기념일이었다. 나도 과거가 있으니 상대방의 과거쯤이야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마음처럼 안 된다. 나와 오롯이 똑같은 사람과 만나 연애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돈을 벌고 모으는 이유가 불란서에 가기 위함이었던 적이 있다. 유은은 불란서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유은은 연애 중이었고, 나는 이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고, 마지막으로 연락한 것이 4년 전이었나. 이별하면 남이니까 그게 당연했다. 그래도 유은이 좋았다. 남의 애인을 사모하는 데에서 드는 감정 때문이 아니었다. 그랬던 유은과 이렇게 다시 연락이 닿을 줄은 몰랐다. 나는 이중적인 잣대를 싫어하는 사람이지만, 내 사랑에 있어서는 엄격하지 못했다. 이런 나의 모순이 싫었다.

어떤 사랑은 내 나사를 풀리게 만든다. 나는 스스로 사랑하는 법을 모르는 것 같다고, 스스로 아끼는 법을 배우라는 전애인의 말을 이해할 수 없던 때가 있었다. 내가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풋내기 시절에는 애인과 결혼하자는 약속을 했지만, 이별이 반복되고 나이가 들수록 결혼하자는 말은 장난으로라도 내뱉는 일이 없었다. 어렵다. 사랑을 쭉 쓰고 나니 깨끗한 사랑이 하나도 없다. 기억나지 않는 사랑도 많다. 사랑이 난잡하다. 내 사랑의 모양은 이런데, 사랑은 원래 이렇게 요란한 걸까. 내 사랑이 특별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편애한 적도 없다. 문학과 같은 수단을 위해 사랑한 적은 더더욱 없으리라 장담할 수 있다. 쓰고 보니 서글픈 부분이 많다.

쓰고 나니 참 이런저런 사랑을 많이도 했구나. 지금 내게 남은 것은 하나 없지만.


원고 보내드려요 메일보단 문자가 편하실 것 같아서 감사해요 읽어 볼게요

사랑은 원래 이런 걸까요?

음...

그래서 쓰실 수 있는 거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