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라는 어감에서 왜인지 모르게 낡음이 느껴져서 영등포역에 가본 적 없었던 나는 그곳에 대해 떠올릴 때마다 '동서울버스터미널'이나 '부산서부터미널'의 역전이 연상되곤 했다. 영등포역에 본격적으로 가게 된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부터였다. 너와 나는 늘 영등포역에서 만났다.

평택에서 올라오는 너를 맞이하러 영등포로 가는 발걸음은 언제나 가벼웠다. 장거리라는 것이, 사실 서울과 평택의 장거리 연애는 마음만 먹으면 얼굴을 볼 수 있고, 거리가 먼 장거리 연인들에 비하여 그 힘듦의 정도가 심한 편은 아니지만, 이십 대 초입에 서서 바라보는 장거리 연애는 나이를 더 먹은 후에 보는 것과는 달랐으니까. 주에 한 번, 많으면 두 번. 못 볼 때는 보름에 한 번씩 우리는 얼굴을 봤고, 너는 나와 작별 인사를 하고 기차에 몸을 실을 때면 울었다. 마음 같아서는 더 자주 보고 싶고, 보고 싶을 때마다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었지만, 참 부끄럽게도, 돈이 없었다. 장거리 연애를 하며 일반적인 사람들처럼 연애한다는 것은 꿈에 불과했고, 너를 만나기 전마다 통장을 확인하는 내가 너무나도 싫었다. 함께 있으면 불안이 녹아내렸고, 나는 그때 단칸방에서 살림을 시작하여 자수성가한 어른들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혹시 그 이야기가 나에게도 해당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꿈꾸곤 했다.


우리는 돈이 없어도 잘 놀았다. 원래 이십 대의 연애는 그런 것이라며, 우리는 부족한 대로 잘 놀았다. 영등포는 우리의 놀이터였다. 영등포는 참 신기한 동네였다. 영등포역을 나오면 보이는 롯데 백화점과 타임스퀘어가, 거기서 좌측으로 빠지면 홍등가가, 우측으로 가면 지금은 오피스 빌딩 숲이 들어서 있지만, 당시만 해도 공사가 한창이었다. 아직까지 선명하다. 우리는 기념일이나 서로의 생일 때마다 영등포역 앞 싸구려 호텔에 갔다. 상호명에는 호텔이 들어가 있었지만 내부는 누가 봐도 모텔인 그곳에서 우리는 기념일을 기념하고, 또,신기하게도 너와 나는 생일이 같았기에 그곳에서 열두 시가 되면 빵집에서 산 조각 케이크에 초를 꽂아 불고, 네가 촛불을 불고 나면 그 초 위에 다시 불을 붙이고는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나도 초를 불었다. 소원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우스갯소리를 하면서 나의 소원을 입 밖으로 꺼낸 적이 없지만, 그건 정말 그따위의 미신을 내가 믿었기 때문이 아니라, 소원의 내용이 '돈 걱정 없이 데이트할 수 있으면 좋겠다'였기 때문이라서, 내가 입 밖으로 내뱉고 그 말을 네가 듣는다면 내가 너무 초라해지고 비참해질 것 같아서 입을 닫고 눈을 내리깔았다.


그러고는 케이크를 나누어 먹고 네가 항상 좋아하던 디즈니 영화를 보다가 우리는 잠들었다. 애들이나 보는 거 뭐가 그렇게 재밌냐는 나의 물음에 너는 디즈니 영화에는 그렇다 할 악당이 없어서 긴장하지 않고 볼 수 있어서 좋고, 어차피 해피 앤딩이니 아름답지 않냐고 했다. 그러게나 말이다. 우리가 봤던 만화영화의 결말과 우리 인생은 닮아 있었을는지도 모른다. 당시 나는 돈이 없는 것이 당연한 나이였고, 우리는 우리 나름의 최선을 다했으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참 많은 추억을 아름답게 꾸려나갔다. 돈 없고 배고팠던 연애가 그리워질 줄이야. 시간이 지나 미화된 것도 있겠지만, 참 아름다웠다.


네가 너무 소중했다. 네가 소중하지 않고 막 대해도 되는 사람이라서 너를 모텔에 데려가고, 퇴실하고 나서는 근처 백반집에서 아침 정식을 먹었던 것이 아니다. 나도 너를 근사한 호텔에 데려가고 싶었고, 한강이 보이는 고급 레스토랑에 데려가 음식을 대접하고 싶었다. 해 주고 싶지 않아서 해 주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며 닿지 못할 이야기를 흘려 본다.

아아, 영등포역에서 나와 신호등을 건너고, 조금 더 걸어간 뒤 우측 골목으로 들어가면 펼쳐지는 술집들. 거리에 풍기는 술 냄새, 구석구석에서 담배 연기가 새어 나오고, 술집에서는 늘 웃음소리가. 비틀거리는 취객과 골목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취객으로부터 너를 보호하느라 그 골목만 들어가면 나는 정신이 없었다. 그 골목의 세 번째 골목인지 네 번째 골목인지 그곳으로 들어가면 우리가 몇 번이고 갔던, 밤에는 술장사를 하고 낮에는 밥집으로 바뀌는 그 한 상 차림 백반집이, 그해 우리의 영등포가 그려진다. 인제 와 다시 만나면 아름다울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나의 미련이고 욕심이겠지. 나는 영등포를 가슴에 묻고 미련을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