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진 사람과 다시 만났는데..

'만나다'는 말은 '연애를 시작한다'는 의미와 '얼굴 한 번 본다'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필 너에 대한 글을 쓰던 몇 주 전, 너는 내게 뜬금없이 만나자며 문자를 했고, 처음에는 내가 잘못 본 건가 싶어서, 네가 잘못 보낸 건가 싶어서 몇 분 동안이나 네 연락에 답장하지 않았다. 아니, 답장하지 못했다. 보냈던 메시지를 취소할 수 있도록 최소한 2분 정도는 기다리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했다. 번호를 몇 번이나 확인하고, 문자 내용을 확인했지만 내가 본 것이 맞았다. 너는 내게 만나자고 했다. 운명의 장난도 아니고 그치?


헤어진 사람과 다시 만났는데... 헤어지면 너도나도 개새끼고, 헤어지면 남이 된다는 사실은 맞지만, 나는 유은과 헤어지고 난 뒤에 몇 번의 연애를 하면서도 머릿속에서 유은을 완전히 지우지 못했다는 부끄러운 사실을 인정한다. 그냥 유은이 좋았다. 나는 유은이 너무나도 좋았고, 타인에게는 엄격하게 들이미는 잣대를 유은에게는 적용하려 들지 않았다. 나의 규칙이라든가 철칙을 깨버린 사람이었다. 비록 연애할 때는 그러지 못했지만 말이다.

어디에도 말하지 않았던 나의 속마음을 이곳에 고백해 보건대 나는 유은이 다른 누군가와 연애할 때도 유은에 대한 망상을 멈추지 못했으며, 내가 다른 누군가와 연애할 때도 유은에 대한 망상을 멈추지 못했다. 누군가 보기에는 나 '성북구글싸개'라는 인간이 역겹고 이중적이고, 모순적이고, 망상만 가득한 인간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사실 그게 맞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제일 처음 이곳에 써서 낸 글*에서도 나의 이중성이 잘 드러났을 텐데 말이다. *「천박한 당신이 예술가인 척하는 게 역겨워서」 참고


헤어진 사람과 다시 만났는데.. 나뿐만 아니라 나와 진지하고 깊은 대화를 나누어 본 모든 인간들은 역겨웠고, 모순적이었고, 망상적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싫지만은 않았다. 본인이 모순적인 인간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잘 알고 있는 그 모습이 오히려 매력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유은은 그런 나의 모습을 싫어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나는 유은에게 내 바닥까지 보여 주었고, 내가 얼마나 결핍된 사람인지, 내가 사랑하는 방식이 무엇인지 보여 주었다. 그게 사랑인 줄 알았다.


헤어진 사람과 다시 만났는데... 유은을 만났다. 정말 오랜만에 만났다. 8년 만인가. 보고 싶었지만 만나면 안 될 것 같았는데, 만나면 안 되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그럼에도 만나고 싶었다. 하면 안 되는 일을 할 때가 더 재밌고, 누군가에게 질타받을 행동을 하고 나면 야릇한 희열이 들곤 하듯, 유은을 만나는데 그런 류의 감정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걱정이 되었다. 벌써 8년이 넘도록 지나서야 다시 보는 얼굴이니까.

어디서 만나는 게 좋겠느냐는 물음에 나는 '시청이나 광화문에서 보자'고 답했다. 시청이나 광화문. 8년 전, 광화문 어딘가에서 유은과의 극적인 만남이 있었기에 그랬던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언젠가 유은을 처음 알게 됐을 때부터 '시청이나 광화문과 어울리는 여자'라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그곳이 아니면안 될 것만 같다는 이상한 고집이 생겼다. 나는 나를 믿지 못한다. 말했듯 나는 모순적인 인간이라서, 본능적이지만 그 본능을 잘 억제하고 사는 '인간'이지만, 유은을 다시 본다면 돌아올 수 없을 강을 건널 수도 있겠다 싶었다. 간만에 다시 본 유은은 냉철하고 이성적이기만 했던 과거와는 달리 유순해진 면이 있었고, 오히려 그 모습이 더욱 인간미 넘쳐 보여 좋았다. '인간미가 좀 생긴 것 같다'는 내 말에 '원래도 난 인간이었는데 인간미가 생겼다는 말은 웃기지 않니?'라고 답하는 유은을 보고 여전하다고 느꼈다.


헤어진 사람과 다시 만났는데.. 나는 떠나보낸 과거가 너무 아쉬웠다. 속상하다 못해 스스로가 미워질 지경이었다. 나는 대체 왜 그렇게나 어리게 굴었던 것인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다 보니 아쉬운 감정은 앉아서 글을 쓸 때의 몇 배가 되어 다가왔다. 지금의 내가 당시의 유은을 만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지만, 그것은 그저 나의 망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마주 앉아 다시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그것은 비단 나의 망상에 불과한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탓에 표정 관리가 어려웠다. 나는 유은을 진심으로 갈망했다. 나와 이별하고 지금까지 유은이 살아온 길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유은을 가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내가 입을 열었다.


헤어진 사람과 다시 만났는데...

"타이밍 참 안 맞아 그치? 예전에도 그랬는데 말이야. 타이밍만 맞았더라면, 만약은 없다지만 그때 내가 조금 더 성숙했더라면 지금까지도 우리는 잘 만나고 있었을 테고, 이제는 결혼을 생각하고 있을 나이인데 말이야. ""있잖아. 나는 말야. 타이밍 때문에 무언가를 못 했다는 그 말이 너무 싫어. 그거 다 핑계잖아. 듣기 좋게 포장한 말이잖아. "너는 말이다. '타이밍이 맞지 않아서'라는 말을 싫어한다고 했다. 그건 전부 핑계일 뿐이라고 말하며, 우리 이별의 이유가 '타이밍'이라고 말하던 나를 질타했다. 그런데 어쩌나. 정말 타이밍만 잘 맞았더라면, 그랬다면, 과거까지 돌아가 과거의 나를 질타할 필요도 없이 이번 만남에서도 타이밍만 잘 맞았더라면, 그랬다면...


헤어진 사람과 다시 만났는데.. 유은은 그날 술을 마셨지만, 나는 마시지 않았다. 나는 모순적이고 본능적이지만 그 본능을 잘 억제하고 사는 '인간'이라서. 하고 싶은 말도, 하고 싶은 행동도 정말 많았지만 꾹 참았다. 목 끝까지 차오르는 말이 많았지만 말할 수 없었다. 그랬다가는 분위기가 싸해졌을 수도 있으니까. 사람 하나가 내 삶에 훅 들어왔다. 막 스물이 되었을 적에 처음 알게 되어 제대를 하고서야 우연한 기회로 연애하게 되었고, 그로부터 8년이 넘도록 지나서야 얼굴을 다시 보게 되었다. 뜬금없이 내 인생에 나타난 사람은 나의 20대 전부를 헤집어놓았다. 대체 무엇 때문에, 나는 이렇게나 놓지 못하는 것일까. 유은이 보고 싶다. 이러면 안 되는 것을 알고 있다.

스스로 내뱉은 말이 너무나도 많아서, 이것들이 나의 발목을 붙잡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지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만나지 말걸. 만나지 않았더라면 괜찮았을 텐데. 괜히 만났다.


네가 선택한 것처럼 나도 내가 선택했다 서로 미워하지 않았음 좋겠어 안 미워해 나 미워하려고 했어?

아니 난 널 못 미워해 네가 날 미워할까 봐 바보... 살면서 가장 많은 생각을 한 일주일인 것 같아 나도 그래 네가 보고 싶어서 서울로 향했다! 후회는 없어 솔직해졌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