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을 때. 정말 어렸을 때. 나이 스물넷 정도 먹은 사람들을 볼 때면,말 그대로 '어른'처럼 보였다. 그 정도 나이가 되면 자주적인 삶을 살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럴싸한 어른이 되어 있을 것만 같았다. 나만의 집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나의 직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금요일 밤이면 퇴근하고, 양복에 구두 신고 넥타이를 살짝 풀어 헤친 채로 직장 다니는 친구와 술에 거나하게 취한 채로 넋두리나 하고 있을 줄 알았다. 그런 상상을 할때의 나는 어려도 너무 어렸었다. 나이를 조금 더 먹고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조금 자랐다는 느낌을 받았다. 솔직히 확 실감이 나지는 않았지만, 먼저 대학 간 선배들을 볼 때면 멋진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는 '과제'라는 말이, '학점'이라는 말이, '전공'이라는 말이 왜 그렇게 멋있어 보였는지 모르겠다. 대학 가면 여자친구 생긴다는 말은 어른들이 하는 달콤한 거짓말이라며 연애는 일찍이 포기하는 게 좋다던 하던 선배는 예쁜 여자친구와 데이트하는 사진을 카톡 프로필에 걸어 놓았다. 공부 지지리도 안 하던 선배는 어찌저찌 4년제 대학에 들어갔는데, 그 선배도 본인의 '전공' 공부를 하는 사진을 찍어 인스타 스토리에 올리곤 했다. 그들을 볼 때면 스물과 대학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


첫 입시는 완전히 박살 났다. 나는 수능 바로 다음 날부터 독서실에 갔다. 재수 학원 오픈 날짜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그날 이후 1년 동안은 세상과 단절된 상태로 살았다. 수험생 커뮤니티에도 발길을 끊었고, 친구들과도 연락을 끊었다. 끊고 싶어서 끊은 건 아니고 집중할 것이 생기니 자연스레 불필요한 것들에는 관심이 줄어들었다. 그렇게 살다 보니 1년이 흘렀다. 신촌의 중심, 우리나라에서 알아주는 대학에 붙었다. 고통스러웠던 지난 1년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대학에 취해, 입시에서 성공했다는 기쁨에 취해 살았다. 누가 보면 행정고시라도 패스한 사람처럼 그렇게 살았다. 하지만 그 기쁨은 반년을 채 가지 못했다. 대학에 오면 걱정이 사라질 줄 알았는데, 또 다른 걱정의 시작이었다. 고등학생 때와는 차원이 다른 분량의 시험이 있었고, 전공도 내가 적성에 맞지 않았기에 더욱 어렵게 느껴졌다. 우리나라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분야를 전공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는 주변인들의 말로 스스로를 위안하며 눈 감고 살려고 했지만, 의지가 사라진 기분이었다.

음, 목표가 사라져서 붕 뜬 그런 기분이 들었다. 나는 대학만을 바라보고 살았는데, 결국 대학도 크게 다른 거 없다는 생각에 드는 회의감은 정말 컸다.


그래서 사랑을 시작했다. 이렇게 말하니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사랑을 시작한 것 같지만, 그건 아니었다. 사실 재수 학원에 다닐 때 마음에 들던 아이가 있었다. 알게 모르게 눈에 자꾸만 밟히는 그런 사람. 말 걸고서 밥이라도 한번 같이 먹었을 법도 한데, 그때는 '입시에서의 성공'이라는 목표에 미쳐 있어서 한눈팔 시간이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그 아이의 인스타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제 와서 느끼는 건데, 사랑을 시작할 때는 시답잖은 우연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우연을 운명이라 치부하며 빠져드는 것 같다.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그 아이도 입시에서 성공 했는지 신촌에서 지내고 있었다. 같은 학교는 아니었지만 우리는 꽤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다. 말했듯 우리는 우연에 의미를 부여했고, 우연을 운명이라 믿으며 사랑에 빠졌다. 둘 다 집 떠나 홀로 있는 서울에서 '안면 있는 사람'을 만났으니 얼마나 반가 웠을까. 이후에 벌어지는 일은 뻔했다. 우리는 매일같이 붙어 있었다. 불같이 뜨거운 사랑은 아니었지만, 함께 있으면 마냥 좋았다.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것을 해 보았다.


입대는 나도 피할 수 없었다. 입대에 있어서는 도피성이 짙었다. 일단 대학에 다니다 보니 답이 안 나와서, 미래가 너무 두려워서 군대로 도망쳤다. 남들 입대할 때 얼굴을 보면 죽어가던데 나는 솔직히 좋았다. 1년 6개월 동안 적어도 내 인생에서 한 발짝 멀어져 있을 수 있다는 점이 너무 행복했다. 처음에야 그럴 수 있었다. 낯선 공간, 피로감, 작은 사회. 하지만 점점 적응되고 하다 보니 또 잡생각이 들며 멍해졌다. 그러다 선임 하나가 내게 한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야, 너는 대학도 좋은 곳 다니고 똘똘한 놈이 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 1년 반 생각보다 빨리 간다. 멍하니 있으면 전역할 때 무서워질걸? 이제 사회 나가면 마냥 어린 나이도 아니고. 뭐라도 해 봐." 하지만 하고 싶은 게 없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나도 전역을 했다. 아, 만나던 애인과는 군대에서 헤어졌다. 슬프지 않았다. 전역 후 먹고사는 게 제일 큰 걱정이었으니까. 우선은 복학부터 하자는 생각에 복학을 했지만, 다를 게없었다. 학교는 졸업해야 하니 꾸역꾸역 졸업은 했고, 남들 다 따는 자격증도 몇 개 땄다. 하지만 여전히 하고 싶은 건 없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기는 싫다.


그렇게 입시에서 한 번, 사랑에서 한 번, 독립에서 한 번, 이상에서 한 번, 어쩌면 그 이상의 실패를 맛보고 나는 그 어릴 적 내가 동경하던 나이가 되었다.

아니 지금은 그보다 몇 살 더 먹은 채로 살아가고 있다. 이 나이가 되면 어른이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나는 왜 아직도 힘들 때면 엄마가 보고 싶고, 뭐 하나 자리 잡은 게 없는 걸까. 외로움은 여전히 견디기 어렵고, 나의 미래는 아직도 모르겠다. 교복 입고 놀던 친구들과는 가는 길이 너무도 달라졌으며, 이제는 목적 없는 관계를 찾기 힘들다. 그냥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인생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일찍이 자리 잡아 우리들을 키우신 어른들에게, 제도권에 편입해 이제는 제법 표독스러워지고 있는 선배들에게, 그리고 언젠가 무뎌져 내가 동경하는 '진짜 어른'이 되어 있을 내게 묻고 싶다.

아, 당신들의 청춘도 이렇게 고달팠습니까? 그대도 어른이 어려웠습니까? 서문앞백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