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해방촌에 왔다. 해방촌에 마지막으로 온 게 언제였더라.

한창 추울 때, 패딩 입고 온 게 마지막이었으니까 벌써 반년이 넘었구나.

개인적인 사정으로 최근 몇 개월 동안 나는 지방에서 살았다.

해방촌에 온 것이 6개월 만이듯, 서울에 온 것도 6개월 만이라는 이야기다. 나는 서울역에 내릴 때마다 서울임을 온몸으로 체감한다.

언제 와도 반갑고 새로운 곳. 이제 무뎌질 법도 한데 서울은 여전히 좋다. 서울역을 나와 세브란스 빌딩과 남대문 경찰서를 볼 때면 비로소 서울에 다시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 서울이다. 내가 다시 서울에 왔다. 일전에는 녹사평역 가는 열차를 공덕에서 갈아탔는데, 이번에는 신당에서 갈아탔다. 그러고 보니 신당은 가 본 적이 없다. 검색해 보니 사람들이 주로 환승하는 용도로 이용하는 역인 것 같다. 서울 지하철은 탈 때마다 복잡한 노선도에 시선을 빼앗긴다. 저걸 설계한 사람들은 머리 꽤나 아팠겠구나 뭐이런 생각을 할 때쯤 녹사평역에 도착했다.

아, 해방촌에 왔구나. 내려서 좀 걷긴 해야 하지만, 해방촌 전경을 보려면 오르막길을 올라야 하지만, 내가 다시 해방촌에 왔구나.


2. 나는 바뀌어도 장소는 그대로다. 몇 달 아니, 몇 년 만에 가는 장소도 예전 그대로인 경우가 많다.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언젠가 나는 문학이 좋은 이유에 대해서 '배신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해방촌도 내게 문학과 같은 존재다. 내가 관심을 더 줄 때도, 조금 덜 줄 때도 항상 그대로다. 나를 품어 줄 것이 그것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 때면, 왜인지 더 정이 간다. 근래 들어 글이 잘 써지지 않았다. 3만 명 훌쩍 넘는 대중들 앞에 서려고 하니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고, 어떤 소재로 무슨 글을 써야 할지 막막했던 것도 사실이다.

아마 내가 이 계정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는지 알 사람은 알 것이다. 영감이 떠오르지 않았다. 첫 문장 띄우는 게 어려웠다.

그때 서울이 떠올랐다. 그때 해방촌이 떠올랐다. 해방촌에 가야겠구나.


3. 해방촌은 크게 아랫동네와 윗동네로 나뉜다. 사실 정해진 건 없고, 나는 해방촌의 구역을 크게 두 개로 나눈다. 녹사평역 경리단길을 따라 와인바 Ori나 노 스트레스 버거까지의 해방촌 아랫동네와, 언덕을 넘어 올라가면 해방촌오거리와 신흥시장이 있는 윗동네.

누구는 이태원까지 해방촌으로 쳐야 한다던데, 그건 너무 억지가 아닌가 싶다. 사실 말이다.

이태원과 해방촌은 비슷해 보여도 그 영역과 색깔이 명확히 갈린다.

아무튼 나는 해방촌 첫 경험을 윗동네에서 했다. 어느 가을, 서울역에서 버스 하나 타고 해방촌오거리 언저리에서 내렸는데, 펼쳐지는 왁자지껄한 풍경이 뇌리에 박혔다. 그때의 나는 윗동네가 해방촌의 전부인 줄 알았다. 어느 카페를 가든 해방촌 전경이 보이는 비슷비슷한 경치를 제공해 줬고, 어딜 가나 루프탑 올라가는 계단은 위험했다. 신흥시장은 지금보다 활성화되지 않았었고, 그때 해방촌은 지금처럼 '모두가 아는 핫플'이 아니라 아는 사람만 가는 그런 '비밀스러운 아지트' 느낌이 강했다. 나는 존재하는지도 모르고 살았던 공간에서 다른 사람들은 산책을 하고, 미팅을 하고, 소개팅을 하고, 사랑을 하고, 누군가는 그곳에서 장사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그것이 내가 느낀 해방촌의 매력이다. 그날 이후, 해방촌에 대여섯 번이나 방문할 동안 아랫동네의 존재에 대해 알지도 못했다. 그러다 어느 날 용산02 버스를 타고 내려올 일이 생겼는데, 그때 해방촌의 아랫동네를 보게 된다. 와, 근사하잖아?


4. 작년 12월에 마지막으로 해방촌에 갔다고 했었나. 그때 방문한 해방촌은 너무 재미가 없었다. 사실 해방촌은 그대로인데 내가 너무 자주 갔던 탓에 질려버린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네가 그리워질 때쯤 다시 오겠다는 생각을 속으로 하며, 찝찝한 마음으로 일어섰던 지난 해방촌. 이번 해방촌은 참 좋았다. 해방촌이 질린다고 생각했던 지난날의 내가 어리석어 보일 만큼 좋았다. 이번에도 해방촌은 그대로였다. 내가 바뀌었던 것이지. 아, 해방촌도 신흥시장이 더 시끌시끌해졌다는 것 정도가 바뀌었나.

이제는 발 디딜 곳도 없더라. 저러다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지겠지. 경리단길이 그랬듯, 망원이 그랬듯, 연남이 그랬듯, 모든 것은 피고 지는 시기가 있으니까. 해방촌은 그렇다. 해방촌은 해방촌이 처음인 사람을 데려갈 때 가장 즐겁다.

당신은 이제 해방촌에 갈 때마다 내 생각을 하게 되겠지.


5. 해방촌에 갔다. 해방촌에 '다시' 갔다. 해방촌에 '또' 갔다. 이번에는 블라블라 매거진의 새로운 역사를 쓰러 갔다. 약 두 달 전, 나는 어느 디자이너분(이하 이시온)으로부터 연락을 받게 된다. 팔로워 3만 명을 기념하는 게시글에서 잠깐 언급했었던 내용이다. 진작 얼굴 마주하고 대화를 나눴어야 하는데, 그간 시간이 나질 않아 미팅 일자를 잡지 못했다.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나누던 각자의 생각과 가치관, 등을 드디어 만나서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해방촌에서 만나기로 했다. 이번에도 해방촌이었다. 예전부터 내가 키운 미약한 무언가가 시작하는 장소가 후암동이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곤 했는데, 이제는 그게 상상이 아닌 현실이 되었다. 시온 님도 나 못지않게 시간 약속에 철저한 사람이었다. 둘 다 약속 시간 30분도 더 전에 와서 각자 할 일을 하고 있다가 인사를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나는 말하고 싶었다. 말하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았다.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블라블라 매거진의 정수가 있었는데, 이때까지 그것을 말하고 싶어서 미치는 줄 알았다.

누구 하나는 내 열정과 노고를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혼자 이 정도로 운영하시다니 대단하신데요, 라는 말이라도 듣고 싶은 마음에, 입에 침이 마르도록 내 모든 것을 토해 냈다.

하고픈 말은 다 하고 온 것 같다. 궁금하던 것들도 거의 다 물어본 것 같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일을 하려면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아는가. 일에 대한 가치관보다 삶의 가치관이 제일 중요하다. 사람이라는 게 색안경을 끼고 사는 동물인지라 다 잘 맞아도 정치색 다르면 배척하고, 다 잘 맞아도 어딘가 하나 안 맞으면 적으로 간주하거든. 그런데 참 운이 좋게도 대화를 나누다

보니 삶에 대한 가치관 또한 닮은 것 같아 반가웠다. 눈치 빠른 분들은 이미 아셨겠지만, 최근 게시글부터 시온 님이 디자인을 담당해 주고 계신다. 글은 여전히 내가 쓰고. 내 머릿속을 간지럽히는 디자인적 영감을 구체화하는 역할을 시온 님이 해 주실 것 같다. 그뿐만 아니라 블라블라 매거진이 브랜드가 되는 초석을 마련하는 것도, 앞으로몇 번이고 부딪히며 결국 해낼 것도 나와 시온 님의 몫이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어서 오세요, 이시온입니다.

"이게 과연 될까?"로 보낸 메시지.

"아, 이게 정말 되네." 지금 곱씹어 보면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두 자릿수의 적지만 소중한 팔로워를 가진 내가, 그것도 야심한 시각에. 블라블라 매거진 상준 님에게 연락을 보냈다. 그날은 이상하게 그냥 꼭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저랑 함께 일해 보실 생각 있으신가요?"

두드렸다. 뭣도 없는데 뭐라도 해 보자는 생각에. 내밀 명함이라고는 블라블라의 글을 모두 정독하고 새 글이 올라오기만을 기다리는 독자라는 점과, 올라오는 글을 읽으며 '이렇게 디자인하면 좋을 텐데'를 생각해 왔던 그래픽 디자이너라는 점밖에 없는 내가.

현재 인스타 매거진 시장은 포화 상태이지만 내 눈앞에는 오로지 '블라블라 매거진'만 보였다.

여러 웹매거진이 있는데 제게만 연락을 주신 이유가 있으신지요?

달랐습니다. 그리고 당장은 제 자신이 쥐뿔도 없어도 제 시간과 열정, 젊음을 갈아 넣고 싶었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매거진'. 내가 독자 입장에서 글을 읽으며 느껴왔던 블라블라 매거진은 그렇다. 삶의 조각들을 담백하게 담아내는 매거진. 어느 이야기는 깨져서 쓸모가 없는 파편 따위로 전락해 버렸을지라도, 깨지는 순간마저 아름다웠다고 담담하게 얘기하는 그런 예술적인 친구랄까.

그게 위선이나 가식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튼 뭐 겉멋 잔뜩 부리면서 '그런 척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느꼈다. 나는 그 사람 사는 이야기들에 위로 받아왔던 것 같다. 나는 블라블라 매거진과 함께하고 싶었다. 내 판단이 옳았다는 건 상준 님과 가치관을 공유하면서 느꼈다. 인생은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게 아니라 개척해 나가는 거라고 생각하며 지금까지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런 삶의 방식을 가지고 살 생각인데, 상준 님도 그런 사람이었다. 우리는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요 며칠 동안 디자인을 몇 개 맡아보았다. 하지만 아직 변화를 꾀하지도 않았다는 점. 앞으로 변화할 블라블라가 무척이나 기대된다. 다른 매거진에서 보지 못하는 것들을 해보려고 한다. 조금씩 변화해 나갈 블라블라를 독자 여러분도 기대해 주시길.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보냈던 문자가 설레는 시작이 될 거라는 것을, 나와 닮은 사람을 동료로 만나게 될 사실을 과거의 나는 알았겠는가?

어느 성공 스토리의 드라마틱한 도입부와 딱 어울릴 만한 소재 아닌가.

아무쪼록 독자 여러분들, 이시온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