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썼냐면요 사실 나에 대한 이야기나 내 생애에 얽히고설킨 사랑에 대하여 술회하는 글을 쓰는 것도 좋지만, 사실 그보다 우선되고 근본적인 것들에 대하여, 내가 언제부터 대체 무엇 때문에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에 대한 설명 비슷한 추억 되새김질이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읽는 사람은 적은데 쓰는 사람은 더 적다. 내가 처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다. 지금으로부터 14년 내지는 15년 가까이 된 아주 옛날의 이야기인데, 사실 그때라고 해서 특별히 쓰는 사람이 많다거나 하는 그런 일은 없었다.
언제부터 썼냐면요 글쓰기란 결핍과 아픔을 승화하기 위한 행위인 듯 보이지만, 사실 문학이란 내 몸에 외면적인 상처를 입히지는 않을 뿐, 정신적인 자해를 하는 것과도 같다는 것이 문학과 글쓰기에 대한 나의 생각이다. 다만, 문학을 단순히 '향유자' 입장에서 즐기는 것과, 내면 속 상처나 트라우마, 진솔한 감정 따위를 꺼내 직접 쓰는 '서술자' 입장에서 대하는 것은 명백하게 다르다. 백견이 불여일행이라는 말이 있듯, 글도 써 본 놈이 더 잘 쓰고, 제일 무서운 놈은 쓰는 놈 중에 경험까지 많은 놈이다. 그 경험을 통해 얻은 것을 써서 다른 이들의 공감까지 끌어낸다면, 말할 것도 없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보고 듣고 느낀 내 생각을 다른 누군가가 쓴 문학에서 발견했을 때, 그때 드는 희열감 비슷한 쾌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이니 말이다.
언제부터 썼냐면요 말이 너무 새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왜 문학을,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문학은 '적극적인 글쓰기'를 의미하는데, 나는 대체 무엇 때문에 글쓰기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아, 어렴풋이 떠오르는 지난날의 감상에 젖어 본다. 잡념이 많고 망상이 잦은 지금의 나는 어린 시절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가끔은 교실 창가 자리에 앉아 내려다보는 운동장에 동네 사람들이 알몸으로 모여 있는 상상을 하기도, 수업에 들어오는 선생들은 우리를 경멸하고 있을 것이라는 그런 상상을 했다. 택도 없이 그런 망상에 빠졌던 것이라면 머리가 굵어졌을 때 '정신분열증'을 의심해 봤겠지만, 나의 망상과 상상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었다. 때로는 근거 없는 망상도 하곤 했지만, 나는 망상과 현실을 철저하게 구분할 줄 알았고, 내 망상이 사실이라고 믿는 법은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재밌는 망상과 상상도 사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해 보는 그런 상상에 불과했다.
언제부터 썼냐면요 그러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런 상상을 쓰기 시작했다. 요상한 꿈을 꾸고 일어나 메모하는 것이 귀찮아서 '조금 이따 해야지' 하며 미루다가 시간이 조금 지나면 그 기억이 휘발되고 마는 것이 나는 너무나 싫었다. 상상이든 사실이든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은 모두 쓰고 싶었다. 언젠가는 부끄럽게 여길, 후회하고 반성할 나의 망상들까지 기록하면 무언가 달라질까 싶어서 기록하기 시작했다. 내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고 살았는가 하면, 어림잡아 300쪽 정도 되는 노트를 한 달 하고도 보름 만에 다 써버렸다. 쓰다 보니 내 상상은 일전에 한 번 썼던 것들과 겹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까지 나의 세상은 아무리 커 봐야 살던 동네가 전부였으니, 그곳에서 내가 만들어낼 수 있는 상상에는 당연히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평생토록 쓴 글자를 10만 자도 채우지 못한 당시의 나는 절필을 선언한다. 비슷한 시기에 맞물려 닥치던 입시에 대한 압박감도 절필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지만, 내 세상을 더욱 넓힌 뒤에 다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더 컸기 때문에, 나는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그러다 성인이 되었고, 나는 문학이 아니면 의지할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던 그날 다시 글을 쓰기로 다짐했다. 오히려 정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불안할 때 더욱 집중하여 글을 쓸 수 있었다. 문학에 더 깊게 빠져들 수 있었다.
언제부터 썼냐면요 나에게 문학은 아름답고 거창하고 숭고한 무언가가 아니라 도피를 위한 값싼 티켓에 불과하다. 어차피 다시 현실로 돌아가야 할 때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 문학을 하기 위하여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을 잃어왔는가. 이것이 뭐라고, 나는 그렇게나 들춰가며 계속해야 했던가. 이까짓 글이 뭐라고, 그래, 참. 이까짓 글이 뭐길래 나는 아직도 슬픈 눈을 가지고 처연하게 글을 쓰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