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정말 오랜만에 펜을 들어서 너에게 편지를 써. 이 편지를 전해 줄일도, 전해질 일도 없겠지만 말야. 작년 이맘때에는 나의 매일매일이 너로 물들었던 것 같은데 이렇게나 멀어져 버렸구나. 요 근래 나는 아주 잘 지내고 있어. 작년과 다를 것 없이 일기를 쓰고, 책을 사서 읽고, 글도 꽤 자주 쓰면서 말이야. 여전히 딸기 케이크를 좋아해. 우리집 앞 카페, 그러니까 우리가 헤어지기 아쉬워 굳이 들르던 그 베이커리의 소금빵도 품절되지 않은 날이면 꼭 혼자 사 먹곤 해. 눈물이 많은 건 고쳐지지도 않아서 아직도 서운함을 눈물로 쏟아내곤 해.

이제야 우리가 기다렸던 여름의 절정이야. 우리가 상상했던 여름 말이야. 이 계절은 너를 참 많이 닮았다고 생각해. 여름은, 떠올리려 하지 않아도 떠오르는 걸 보니 너는 여전히 다정한, 그러나 어느 계절이 그렇듯 잡아둘 수만은 없는 여름이구나. 사실 1년은 생각보다 짧아서 생각보다 많은 게 그대로라 생각보다 바뀐 건 없네.


얼마 전에는 능소화가 만개한 골목을 지났어. 언젠가 너와 걷다가 발견했던 능소화만큼 황홀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꽤나 예쁘고 좋더라. 더 이상 그 골목에는 손잡고 걷는 우리가 없는데, 그럼에도 그럭저럭 예쁘다는 건 우리의 이별 또한 그럭저럭 익숙해지고 있다는 뜻이겠지. 나는 너희 집 근처 어린이 공원이나, 자주 가던 서점, 자주 가던 연어초밥집 근처를 지날 때면 네가 떠오르곤 해. 너도 그런 순간들이 있을까. 너도 내가 가끔은 궁금해질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가 이내 금방 사라져 버리지. 있잖아. 너도 계절이 바뀌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이나 너와 나의 취향이 가득 담겨 섞여버린 것들을 볼 때. 우리의 추억이 담긴 공간을 지나칠 때 나를 떠올리니?


왜인지 모르겠지만 헤어지는 순간까지도 나는 이 말을 꺼내기가 무서웠어. 그래서 바보같이 이제야 전할 수 있네. 나는 너를 사랑한 기억을 먹으면서 살아갈 수 있을 만큼 최선을 다해 사랑했어. 나의 모든 것을 주고 싶었어.

그게 설령 나의 행복이더라도 말이야. 사랑하는 방식이 조금 잘못됐던 것 같아. 서투른 사람이 무턱대고 커지면 너무나 큰 불안감이 생기거든. 하지만 그것까지 내가 감수하고 너를 사랑했기에 그만큼 많이 아프고 지쳤던 것 같네. 헤어지던 순간에 말이야. 나는 우리 사랑의 어긋남은 곧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충분히 날 사랑해 주지 않은 너에게 있다고 말했어. 하지만 사실 나는 그때도 우리가 이별하는 원인은 나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나는 사랑을 준 만큼 똑같이 받아야 안정감을 느끼는 욕심쟁인데, 또 그 마음을 인정하고 너와 대화해 볼 용기는 없는 겁쟁이라서. 그래서 지쳤던 거야. 나는 그것이 최선이었어. 처음으로 몰려오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최대한 몰입하여 충실했던 어린 날의 나였지만, 이제는 모든 걸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너에게 했던 원망은 이제 안녕. 이제는 더 이상 피하지 않으려고. 너도 그런 사랑이 최선이었겠지. 그것이 너만의 사랑 방식이었겠지.


이제는 말하고 싶어. 우리가 이별한 건 너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나를 울린 것도 사실은 네가 아니라 나야. 그러니 아직 네가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지우고 반짝였던 사랑의 흔적만을 간직해 줄래?

우리가 함께 어른이 되어갔던, 선연한 분홍빛 여름 노을 아래의 우리만을 기억해 주면 좋겠어. 지금 네가 다른 누구를 사랑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제 나는 너의 새로운 사랑을 진심으로 응원해 줄 수 있을 것 같아. 불쑥 튀어 오르는 너의 흔적을 봐도 눈물 흘리지 않고, 동요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고, 덤덤하게 그 어느 때보다 온전하게 사랑을 곱씹을 수 있는 지금이야말로 비로소 내가 완벽한 이별을 해낸 것이 아닐까! 새로 다가올 사랑에서는 너를 조금 더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면 좋겠어. 상처받는 건 언제나 두려운 일이지만, 사랑 앞에서는 더 용감하게 굴 필요가 있거든. 너의 삶이 어떻게 흘러가든 내가 응원할게. 진심으로 말이야. 너도 언젠가는 나의 사랑과 행복을 빌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 욕심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말이야. 이 편지를 끝으로 1년간 써왔던 나의 수백 장의 연애편지가 막을 내렸어.

마지막 인사를 할게. 잘 지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