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야 하는데, 써야 할 글이 많은데 나는 유은에 대한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며칠 동안이나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 주말 오후, 나는 다시 펜을 들었다. 쓰기 위해서는 떠올려야 하지만, 떠올림의 대상은 줄곧 유은이었다. 내 생각의 시작부터 끝까지 그 모든 순간에 유은이 있었다. 하지만 유은에 대한 글을 이제는 쓸 수 없다. 써서는 안 된다. 한참을 고민하다 내 머릿속에 떠오른 하나의 사랑 이야기도 결국에는 그 시발점이 '유은과의 이별' 때문이라는 사실에 다소 허무한 감정이 들었지만, 그만큼 나의 지난 20대는 유은으로 가득했기에 피해 갈 수 없는 숙명이 아닐까 싶다. 한 사람의 젊음에 이토록 큰 영향력을 끼쳤다는 사실을 너는 알고 있을까.

나 또한 누군가에게는 그런 사람일까. 생각이 많다.


그래, 나는 유은과의 연애를 청산하고 다시는 연애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했건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마음처럼 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으니 말이다. 사랑하기 위해 사랑을 찾기보다 나는 연애하지 않을 때 드는 정서적인 공허함과 육체적인 외로움을 해소하고 싶다는 생각에 '나를 품어 줄 운명의 상대'를 찾아 헤맸다. 상대방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나의 응석과 외로움을 받아 줄 사람을 찾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어렵게 생각하면 한없이 어려워지지만, 적당히 힘 빼고 생각하면 사랑만큼 쉬운 게 또 없으니까. 사랑은 모두가 할 수 있는 것인 만큼 그 난이도 또한 쉬운 행위니까. 다만 우리가 '사랑은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자꾸만 사랑의 모양을 본인 입맛과 취향에 맞게 맞추려고 하기 때문이 아닐까. 서로 다른 모양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해야 하지만, 나이를 먹어도 그게 안 되는 사람들이 많다.


회기에서 만나 연애했던 그 사람의 말*을 빌리면...

"사랑이라는 게 말이에요. 연애라는 게 뭐 거창한 게 아니에요. 그냥 우리 삶의 일부인 거지. 사랑이 뭐냐고 묻는 사람들 많잖아요. 그런데 사랑에는 정답도, 오답도 없는 것 같아요. 웃기죠. 연애도 그래요. 모르는 사람들끼리 만나 서로 한번 알아가 보는 거죠. 생각이 많겠죠. 고작 얼굴 두 번 본 사람이랑 술 마시다 노숙을 하고, 동해에 오고, 같은 방에서 잠들고, 준비된 건 하나 없는 거 같고. 머리 아프죠? 그래도 뭐 문제 될 게 있나요? 그냥 현재를 만끽해요. 우리는 지금 동해예요." 그래, 사랑에는 정답도 오답도 없는 것이었다. 우리가 행하는 행위에는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경우도 많지만, 나는 그것을 인정하지 못했다. 반드시 눈앞에 결과가 보여야 직성이 풀렸으니 말이다.

* 「동해에 갔다. 삼척 앞바다에서 사랑이 뜰 것만 같아서」


솔직히 말하자면 유은과 이별 후 시작했던 연애는 너무 성급했다. 무언가에 쫓기는 듯 시작했다. 나는 그것을 사랑으로 인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손을 잡고 입을 맞추고 사랑을 나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싫었다. 그래서 '사랑과 연애라는 건 삶의 일부인 것이지 거창한 게 아니다'라는 말로 자위했다. 그것이 사랑이라고 믿었다. 유은에게 느꼈던 감정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는 상대방을 사랑하고 있다, 유은과는 이런저런 에피소드가 많았기 때문에 당연히 정을 더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 만나는 애인과도 계속 만나다 보면 정이 생기고 인연이 질겨질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어느 날 가엾은 나의 애인이 내게 질문했다.

오빠, 오빠는 내가 왜 좋아?


나는 네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아니다. 아마 '착하니까'라고 답했었나. '오빠는 내가 왜 좋아?'라는 질문에 떠오르는 마땅한 대답이 없었다. 그 질문에 '너는 내가 전애인과 헤어지고 느끼는 공허함을 채워 줘서 좋아'라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가끔은 솔직하지 못할 필요도 있다. 그것이 건강한 연애는 아니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건강하지 못한 연애는 대개 오래가지 못한다.

그해 가을 했던 연애가 채 100일을 가지 못한 꼴을 보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