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나 혼전순결이야 (1) 성(性)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과 개개인의 개방 정도가 꽤나 자유로워진 요즘, 이제는 파트너의 순결 유무보다는 성향 유무가 더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는 듯하다. 여자를 만나다 보면, 그러니까 요즘 시대에서도 여자를 만나다 보면 간혹 가다가 '혼전순결'을 주장하는 이들을 종종 볼 수가 있는데, 나도 그런 여자를 피할 수 없었다. 그 여름, 나를 적잖이 당황케 했던 한 여자와의 이야기를 열며, 영광스러운 메일링 서비스에 나의 첫걸음을 내디뎌 본다.


오빠, 나 혼전순결이야 (1) 첫 성경험 나이가 갈수록 낮아지고들 하지만, 내가 책가방 매고 학교 다닐 때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할 놈들은 알아서 잘하고 다니고, 못하는 놈들은 안 하는 것이라 자위하며 살았다. 나는 전자에 속하는 편이었다. 스무 살만 되어도 순결을 지키고 있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었던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미 진작 할 거 다 하고 성인이 되는 친구들도 많아서, 그럴 거면 '성인'이라는 호칭이 주는 의미가 무엇이냐고 묻고 싶기도 하지만, 그 질문이 곧 나를 향한 물음으로 다가와서 관두려고 한다. 내가 스무 살 때, 그 여름에 있었던 일이다. 종강 후 개강까지의 텀이 길었던 터라 집에 틀어박혀 눈칫밥을 먹다 보니 괜히 불편해지기 시작하여 방학 동안만이라도 용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성인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미성년자의 티가 채 빠지지 않았고, 군대 경험은 물론이며 사회 경험마저 일절 없는 내가 구할 수 있는 일자리는 거의 없었다. 주변 동갑내기 여자들을 보면 저마다 알바 자리를 구해 용돈을 벌며 사는데, 아니, 일을 하겠다는데도 시켜 주지 않는 현실이 미웠다. 알바 모집 공고가 올라온 동네 가게란 가게는 다 돌았던 것 같다. 열댓 곳을 돌고 결과를 기다리는데 연락이 온 곳은 딱 두 곳. 한 군데는 배스킨라빈스였고, 다른 한 군데는 동네 장사하는 호프집이었는데, 호프집은 보수가 더 높은 대신에 근무 시간이 길었고, 격주로 주말까지 출근해야 했기에 나는 배스킨라빈스를 택했다.


오빠, 나 혼전순결이야 (1) 가게 규모도 작고 동네 장사를 하는 곳이라 나는 매장에서 혼자 근무했다. 사실 뭐, 일이 힘들다거나 몸이 힘든 경우는 가끔 주문이 많이 들어온 날에 손목이 당겼던 것을 제외하면 없었다고 봐도 무방한데, 대여섯 시간 정도 되는 시간 동안에 가게에 혼자 있어야 한다는 점이 내게는 고역이었다. 그 무료함을 노래로 달래곤 했다. 점장님의 배려로 원하는 노래를 매장에 다 틀 수 있었기에 그곳은 나의 작은 클럽이었다. 그렇다고 클럽 노래를 틀었던 것은 아니고, 한창 재즈에 빠져 있던 때라 재즈를 무한 반복하여 들었다. 내가 만든 플레이리스트를 두 번 끝까지 돌리고 나면 퇴근할 시간이 되어 있었다.


오빠, 나 혼전순결이야 (1) 항상 비슷한 시간대에 와서 '더블'을, 그러니까 '이상한 나라의 솜사탕'과 '엄마는 외계인'을 주문하던 여자가 있었다. 처음 며칠이야 새로운 일에 적응하느라 그 여자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지만, 매일 세 시 반에 와서는 비슷한 메뉴를 주문하니 기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늘 세 시부터 그녀를 기다렸다. 하루도 빠지는 날이 없었다. 나는 그 여자에게 말을 걸고 싶었는데, 정말 말을 걸어 보고 싶었는데, 말을 걸 만한 명분이 없었고, 자칫 손님에게 추근대는 불성실한 알바생처럼 비춰질까 봐 쉽사리 말을 걸지 못했다.


오빠, 나 혼전순결이야 (1) 어느 날이었다. Sonny Clark의 <Cool Struttin'>에서 Kenny Burrell의 <Midnight Blue>로 넘어가려던 그 순간이었나. 상상 속에서나 있었던 일이,그 여자가 내게 말을 거는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혹시 방금 전 노래 제목이 뭐예요?" 그녀가 내게 '주문 외의 잡담'을 건 것은 정말 예상 밖의 일이었기에 당황스러운 나머지 말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는데, 사실 여자를 대하는 데에는 어느 하나 긴장되거나 문제되는 것이 없었지만, 나와 엮일 일이 없을 것만 같던 여자가 내게 말을 거니 나도 모르게 말문이 막혔던 것이었다. 이성과 대화를 처음 나누어 보는 쑥맥처럼 한참을 더듬거리다가 내뱉은 말에는 어느 정도 의도가 다분했다고 느껴졌을는지.

"아, 노래 제목 기억이 잘 안 나네요. 번호 하나만 남겨 주세요. 제가 이따 찾아서 연락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