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외로움을 많이 타?
외로움과 함께 살아온 인생이었던 것 같다. 중학교 때 홈스쿨링을 했던 시간부터 재수, 삼수를 독학으로 보낸 시간을 생각하면 난 항상 외로웠던 것 같다. 외동인 데다가 고집 센 성격 탓에 자의적으로, 타의적으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청소년기의 철없던 시기를 지나 인간관계를 배우고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부쩍 늘었음에도 외로움은 쉽게 해소되지 않는 감정이었다. 외로움을 못 참았던 과거의 나는 어떻게든 누구를 찾으려고 노력했고, 조금이나마 성숙해진 나는 스스로의 삶에 집중하며 외로움을 느낄 틈을 없앴다. 그리고 지금은 외로움이라는 감정 자체를 탐구하고 즐기고 있다. 다들 하는 고민.
왜 나는 여자친구가 없을까부터 왜 여자친구가 있어도 외롭지?
의 질문까지 현대인들은 외로움을 해소하지 못한 채 살고 있는 것 같다. 오랜 시간 외로움에 대한 글을 적고 성찰을 해온 입장에서 짧게나마 이에 대한 에세이를 적어보려 한다. 누군가가 이 글을 읽고 위로받을 수 있다면, 다시 혼자 설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된다면, 나는 기쁠 것 같다.
나는 외로움을 크게 3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첫 번째는 육체적 외로움, 두번째는 정신적 외로움, 그리고 마지막은 실존적 외로움-적고 보니 키르케고르의 철학과 유사하다-이다. 우리가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이 세 가지 중 하나만을 느끼는 것이 아닌, 복합적인 외로움이 뒤엉켜 지금의 마음을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1. 육체적 외로움 자취하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하루 동안 온갖 압박을 버티며 상처받은 스스로의 몸을 이끌고 자취방에 들어갔을 때의 적막함을.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면 울컥할 때가 있다. 그토록 치열하게 살았는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는데, 내 능력 이상으로 노력을 했었는데. 내 옆에 누군가가 없다는 사실이 주는 괴로움이 있다. 싱글 베드에도 남는 공간이 있다. 그 공간을 채울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자취할 때 자주 하게 된다. 단순히 섹스할 누군가가 없어서 느껴지는 외로움이 아니다. 안아줄 누군가, 내 몸을 어루만질 누군가, 그리고 내가 만져줄 누군가가 부재하다. 우리는 육체를 혹사하며 삶을 살아간다. 체온을 느끼고, 심장이 뛰는 것을 깨달을 시간조차 없이 하루를 보낸다. 그런 내 몸을 누군가가 만져준다면, 내가 살아있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면 행복할 텐데.
우리는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어 한다. 그 느낌은 육체로 가장 먼저 다가온다. 물론 그것이 언제나 쾌락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쾌락으로도, 고통으로도 우리가 무언가를 느낄 수 있다고 깨달을 때 사람은 비로소 스스로가 살아 있다고 느낀다.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줄 누군가가 없다는 것은 참으로 비극이다.
2. 정신적 외로움 여자친구, 남자친구가 있어도 누군가는 외롭다고 말한다. 학교에서나, 술집 에서나, 일하는 현장에서나 술이 좀 들어간 상태에서는 하나 같이 외롭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한다. 여자친구도 있는 양반이, 부모님과 함께 사는 친구가, 하루가 멀다하고 일만 하는 일중독자도 모두 외로워한다.
왜 우리는 항상 외로울까. 합정역 근처 오뎅바에서 친구랑 대화하며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었다. 섹스는 원하는 만큼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세상. 데이팅 어플이나 커뮤니티의 수많은 사람들이 대화를 원하고 있지만, 우리는 계속 고립됨을 느낀다는 것이다. 많은 남자친구를 사귀어본 그녀는 자기가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꼬치에 껴있는 어묵들처럼 다닥다닥 붙어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살아가지만 한 번만 밀어내면 다 흩어지는 것처럼, 온전한 하나 된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봤다.
내가 좋아하는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에는 이와 같은 가사가 있다.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마음을 울리는 가사다. 우리는 결코 상대가 될 수 없다. 내 트라우마와 상처, 자부심, 열정은 오로지 나만 알고 나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가 나의 세계에 들어와 멀리서 둘러볼 수야 있겠지만, 그 혹은 그녀는 절대 내 삶을 온전히 경험할 수 없다.
그러니 우리는 각자만의 문제들을 고질병처럼 평생 앓고 살아간다. 외롭다고 징징거리는 사람의 진짜 내면을 볼 수 있는 타인은 없다. 그러니 우리는 벙어리처럼 소리 없는 외침을 매일 하고 있다. 그렇게 고립되어 가고, 정신적 외로움에 잠식되어 간다.
3. 실존적 외로움 1번과 2번을 느끼고 나면 결국 3번에 귀결하게 된다. 인간은 무엇을 해도 외롭구나. 친구를 사귀어도, 연인을 만나도, 결혼하고도, 결국엔 혼자 남게 되는 것을 처절하게 깨닫게 된다.
왜 현대 사회에서 외로움을 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하는지에 대해 깊게 생각을 해봤다. 과거에는 우리 삶의 주인이 외부에 있었다. 국가가 우리의 주인이었고, 신이 우리의 지배자였으며, 민족이 우리의 왕이었다. 그때의 사람들은 개인을 집단에 종속되어 기능적으로 작동하는 주체성 없는 부품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나의 삶의 진정한 주인은 '나'라고 많은 미디어와 사람들이 떠들어대고 있다. 안타까운 점이 무어냐. 주인을 할 줄 모르는 자가 주인이 되었다는 말이다.
나의 세계는 너무 넓고 광활한데, 이 모든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가꿔갈지 우리는 끝 없는 걱정과 고민에 쌓이게 된다. 그렇게 이 세계에 남는 것은 나 혼자이다. 아무리 많은 세계와 충돌하고 화합하려 해도 나의 세계는 그리 호락호락하게 다른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어떤 이들은 그 세계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으로 주인이 되기를 포기하기도 한다. 또 누군가는 그 세계를 타인에게 양도하여 외부의 것을 삶의 주인으로 떠받들기도 한다. 그러지 못하는, 어정쩡한 주체성과 책임감을 가진 우리는 이 외로운 왕국에서 홀로 살아간다.
수많은 이성과 잠자리를 해도, 내 말을 공감해 주는 친구들이 있어도 우리는 외롭다. 이제부터는 나의 노하우를 통해 어떻게 외로움을 극복했는지 팁을 주려 한다. 모든 이들에게 통하지는 않을 것이겠지만 위 3개의 외로움 중 하나라도 줄일 수 있게 된다면 그걸로 행복하지 않겠는가. 김희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