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우울하고 싶은 때가 있다. 그때마다 이유는 달라도 나는 한 번씩 아주 깊고 짙은 우울함에 빠지고 싶어진다. 참 이상한 취향이지. 우울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아파하는 나 자신을 제삼자의 눈으로 불쌍하게 지켜보고 싶은 때가 꼭 있다. 그리고 나는 그러고 싶을 때마다 우울해지려고 노력하는 편이며, 괜스레 나오지도 않는 눈물을 억지로 쥐어짜 내 보기도 하고, 머릿속을 우울함으로 가득 채운 채로 담배 연기를 푹푹 밀어내기도 한다.
우울함인지 외로움인지는 제대로 알 수 없으나, 그게 그거 아니냐는 생각이 내 우울의 구덩이를 깊게 파 내려간다. 어느새 일상에도 내 우울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때는 더 이상 나만의 우울이 아니게 된다. 그렇게 여럿에게 민폐를 끼치고 신세를 진 뒤에 며칠이 지나면, 나는 그 우울의 구덩이에서 스스로 올라와 언제 그랬냐는 듯, 그 구덩이를 못 본 체하고 다시 걸어 나간다. 그 구덩이에 여러 사람들을 빠트려 둔 채로, 그 사람들의 고함은 듣지 않으려 두 손으로 귀를 막은 채로, 구덩이 위로 손이 올라와도 내 발로 그 손들을 까 내리며, 나는 그렇게 이기적이게도 새로운 우울의 구덩이를 찾아 걸어 나간다.
그래서 이번에는 왜 우울한 걸까. 이번에 찾아온 내 우울의 근원은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사실. 그 사람을 처음 본 순간부터 정말 좋아하게 되었다. 나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 또 무엇에 행복해하고 우울해하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몰라도 좋다. 너무 좋아하게 되었으니까. 다만 이 상황이 짝사랑이라는 것에 큰 문제가 있을 뿐이다. 나는 티 내는 것을 어려워한다. 감정을 감추는 것에 익숙하다는 표현이 더적절한 듯싶다. 용기가 있는 사람 또한 아니다. 그렇다고 자존감이 높은가?
전혀. 지금 그 사람을 너무 좋아하고 있음에도, 그러니까 내가 지금 당장이라도 그녀 곁에 있어 주고 싶다는 생각을 온종일 하고 있음에도, 나보다 더 좋은, 더 멋있는, 정신적으로 더 건강한 이상적인 남자가 그 사람을 더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고 몇 번이고 생각한다. 내가 그러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의지는 없다.
그럴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이제 깊숙한 우울과 고독을 느끼고 건강하지도, 성숙하지도 못한 애새끼로 남아 데이먼스 이어의 'pink pill'이나 들으며 담배 연기를 푹푹 내뱉고 구덩이를 파 내려가기 시작한다. 그것을 막 파기 시작했다는 건, 내가 또 얼마나 더 망가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 동시에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게 될지 감히 상상할 수 없다는 것. 결론이 뭘까. 나는 짝사랑으로 아주 심각하게 아프고 싶어 하며-어쩌면 짝사랑으로 인해 아픈 사람이 되고 싶은 것-, 내 주변 사람들은 나의 아주 사적인 일로 인하여 상처받고, 위선적인 나의 모습에 역겨움을 보이고, 그 사람은 나보다 더 건강하고 우월한 사람을 만나 내가 본인을 좋아했다는 사실조차도 모른 채, 행복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지 않을까. 때로는 우울해지고 싶기도 하다, 그리고 내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이 이번에 내가 우울한, 아니 '우울해지고자 하는' 이유다. 서휘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