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아서 첫사랑이라고 한다. 나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은 늘 갈망의 대상이다. 사랑하고 싶다는 감정보다는 '자고 싶다'라는 감정이 컸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첫사랑이니까. 손만 잡아도 설렘과 가슴 떨림을 느끼던 시절, 입맞춤 그 이상의 것은 상상할 수도 없던 시절에야 가슴 뛰는 그 감정을 해소하는 법을 몰랐다. 손잡기와 입맞춤밖에 할 수 없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시간이 흐르고 그 이상의 것들을 경험하였을 때, 다시 이루어지지 못한 첫사랑이 떠올랐다. 가지지 못한 것에 남은 미련이었는지, 정욕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우연한 기회로 첫사랑을 만났다. 사실 '우연'과는 거리가 좀 있는 만남이긴 했지만, 그녀에게는 우연과도 같은 일이었을 테니. 어쩌다 동창들과 연락이 닿았고, 나는 동창들이 어떻게 지내는가보다 그토록 찾고 싶던 네 연락처를 가장 먼저 물어봤고, '나한테는 없는데 아마 수소문하면 알 수 있을 거야'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심장이 간질간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과 네가 내 상상 속과는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 네가 나를 기억하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 그래, 나는 당시에도 나는 네게 호감을 표했다. 나는 네가 좋다고 했다. 너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좋아한다는 감정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공부할 시기이니 연애는 나중에 하자' 따위의 말도 아니고, '좋아한다는 감정이 뭔지 잘 모르겠어'라는 말은 너무 어려웠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서 알겠다고 답했다.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우리의 마지막 대화다.
어렵게 구한 너의 연락처로 문자를 보냈다. 내 번호도 밝히지 않고 카톡을 보내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우리가 함께 나온 학교를 밝히고, 내 이름을 밝히고, 연락처를 얻게 된 과정을 밝히고, 무슨 이유로 연락을 보냈는지 밝히고,잘 지냈느냐 밝히고, 나를 기억하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기다렸다. 그리고 온 답장.
"당연히 기억하지~ 잘 지냈어?
요즘 어디서 지내니?"
처음 본 사람과 마주 앉아 대화하는 것보다 첫사랑을 다시 마주하는 것이 더 어렵다. 아예 새로운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보다, 과거의 내 이미지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지금의 매력을 더하여 보여 주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는 말이다. 그녀 기억에 남아 있는 내 '이미지'와 지금의 내 '이미지' 사이의 괴리가 없어야 한다. 괴리가 있다고 한들, 그 괴리는 긍정적인 것이어야 한다.
자칫하다 과거의 좋았던 기억마저 더럽혀질 수 있으니 행동에 주의해야 한다. 우리가 가깝게 지내던 과거의 기억을 나는 이만큼 기억하고 있는데, 상대방은 요만큼만 기억하고 있을 수도 있다. 이래서 만남의 공백이 긴 사람과 만나는 건 두렵다. 나를 긴장되게 만든다.
강남역 어느 카페에서 대낮에 만난 그녀는, 15년도 더 지난 상태로 만난 그녀의 얼굴에는 옛 모습이 담겨 있었다. 내가 한눈에 반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 특유의 표정과 은은한 미소. 이루어지지 못한 '첫사랑' 이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연애와 만남의 과정이 있었는데, 첫사랑을 마주하는 것만큼의 설렘은 아니었다.
대충 안부를 묻고, 무얼 하며 지내느냐 인사를 주고받고, 나는 입을 열었다.
"네가 내 첫사랑이야. 좋아한다는 감정을 처음 느낀 상대가 너야. 그때 내가 네게 고백했을 때, 너는 '좋아한다는 감정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라고 했잖아. 기억할는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만약 연애한다면 내 첫사랑은 네가 아니게 되는 걸까? 네 생각은 어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