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가장 서울 같은 공간(구)을 꼽아 보라고 하면 아마 종로구가 아닐까. 한국인보다 외국인 찾기가 더 쉬운 경복궁부터 시작해서 광화문, 대학가 느낌이 물씬 나는 혜화. 다른 곳에서는 외국어로 된 간판이 모두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는 인사동까지. 언급한 동네 외에도 참 많은 콘텐츠가 모두 종로에 있다.
종로는 그렇다. 다양한 세대와 다양한 인종이 공존하고 있는 공간이다. 저기 종로3가만 가도 이쪽 포차 거리에서는 젊은이들이 길거리 포차에서 닭발에 소주를 마시고 있지만, 송해길과 탑골공원 인근으로만 가도 연령층이 확 높아진다.
어떤 골목에는 남녀 짝지은 커플만 보이지만, 어떤 골목에는 동성애자 클럽도 있더라. 어느 가을에 길을 걷다 안으로 들어오라는 말에 정중히 거절하고 그 클럽에 대해 검색해 보니 동성애자 클럽이라고.
아무튼 종로3가만 해도 이렇게나 다양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다.
반짝 뜨고 반짝 사라지는 동네가 많아졌다. 뜨거웠던 경리단길도 이제는 다 죽고, 사람들은 해방촌에 모인다. 해방촌의 인기도 몇 년 뒤면 지금보다 식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도 해방촌은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스테디가 되어 남겠지만. 연트럴파크를 중심으로 활발하던 연남동이나 망원, 연희도 사정은 마찬가지.
요즘 가장 뜨거운 곳은 일주일에도 수십 개의 팝업이 열렸다 닫히는 성수가 아닐까 싶은데, 성수도 오래 가진 못할 것이다. 이렇게 요즘 뜨는 '핫플'의 특징은 동네 자체에서 즐길 것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비슷한 분위기의 비슷한 식당과 카페, 똑같은 음식과 술을 내어서 파는 와인바, 여기서 잘 되어 대박 났다고 하면 저기서 그대로 베끼는 그러한 특징 때문에 이 동네를 가도 저 동네가 생각나고, 저 동네가 이 동네 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종로는 다르다. 그러니까 종로는 종로 자체만으로도 콘텐츠가 넘쳐난다. 날씨 좋은 날이면 경복궁에서부터 익선동까지 산책만 해도 하루를 알차게 보낼 수 있고, 더운 날에는 청계천에 앉아 놀다가 을지로에서 뻔한 마늘 치킨에 맥주 한잔 마시면 최고의 하루가 된다. 좀 시끌시끌한 곳에 가고 싶다면 안국에, 좀 조용한 곳에 가고 싶다면 창신동에 가면 된다. 눈 내린 겨울,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홀로 갔던 창신동의 풍경은 그 수고가 싹 씻겨 내려갈 정도로 아름다웠고, 돈 없고 춥던 겨울에 들어갔던 부암동의 레스토랑은 가격이 만만치 않았지만, 음식 맛은 정말 좋아서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종종 생각난다.
예스러운 느낌이 물씬 느껴지는 종로구에서도 동네가 나뉜다. 아예 대과거로 돌아간 듯한 구역과, 그냥 과거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구역으로. 전자의 경우라면 위에서 언급한 경복궁이나 광화문 정도가, 후자의 경우라면 을지로나 종로5가 부근이 되겠다. 종로5가에는 특히 인스타 핫플에서나 나올 법한 카페가 없지만, 바가지로 유명한 광장시장에 가서 가끔 음식을 사 먹으면 그것만의 매력이 또 있다.
아, 사실 나는 마포보다 종로를 더 좋아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 글이 막힘없이 써진다. 최근에 안국과 종로3가를 다녀온 탓에 그 느낌이 아직 생생해서일까. 좋아하는 동네를 하나쯤 두고 사는 건 나쁘지 않다. 살아가는 게 버겁고 힘들 때 홀로 방문하여 생각을 정리하고 여유를 만끽할 그런 동네가 필요하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아직 그런 동네가 없는 사람들에게 전한다. 혹시 종로는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