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로부터 우리가 무슨 사이냐는 질문을 들었더라면 이 정도로 당황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무슨 사이인지 물었더라면 '우리는 그냥 가볍게 만나는 사이인 거 알면서 왜 물어?'라는 답변을 해주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우리 언제까지 이런 사이로 지내?'냐는 너의 그 질문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아니, 우리가 어떤 사이인지 알고 만나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어떤 관계로 남을 것인지 이미 알고 있는 상태에서, 그러니까 '선'을 넘지 않기로 한 일종의 합의가 진행된 상태에서 만난 사이 아닌가. 그런 너는 대체 무슨 의도로 내게 이 질문을 던진 것인지. 그것보다, 대체 왜 쓸데없는 질문을 던져서 우리 사이를 애매하게 만드는 것인지.


확실한 것이 좋다. 애매하게 썸 타면서 꽁냥꽁냥거리는 것보다, 사귈 사람과는 확실하게 사귀고 깊은 관계를 오래도록 유지하는 것이 좋고, 아닌 사람과는 확실하게 선을 긋고 만난 다음 그 선을 넘지 않고 지내는 것이 좋다. 나는 너를 사랑할 일이 없다. 우리가 사랑을 속삭일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랑을 위해 만난 사이가 아니라 쾌락을 위해 만난 사이니까. 그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선을 먼저 그은 것은 네 쪽이 아닌가. 처음 만난 그날, 연애할 생각이 있느냐는 나의 질문에 너는 사랑할 여유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고, 이후로도 몇 번을 더 만나면서 우리는 서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과정을 거쳤다. 너와 내가 바랐던 것은 책임 없는 쾌락이었고, 자랑은 아니지만 확실한 선을 긋기 위해 콘돔을 빼도 괜찮다는 날에도 철저하게 착용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언제까지 이런 사이로 지내냐는 질문은, 그 질문을 내뱉은 네가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지 않을까 싶다.

왜, 처음에는 그저 그런 욕구 해소 상대로만 생각하다가 몸을 몇 번 섞고 나니 없던 정도 갑자기 생기면서 '사랑'이라는 감정이 피어오른 건가?

그것이 아니라면 망가질 대로 망가진 너를 품어 줄 사람이 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문득 든 두려움에 꺼낸 말인가.


다시 말하지만 나는 확실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이랬다저랬다 하는 건 질색이다. 한 번 틀어진 사람과 다시 화해하여 관계를 재정비하는 것도 내 정서와 맞지 않는 행위니까. 며칠 뒤, 생각이 바뀌어서 네가 어떤 말을 할지라도, 우리 다시 가볍게 만나는 사이로 지내자는 말을 꺼내도, 나는 다시 너를 만나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을 쓴 지도 벌써 반년이 지났고, 나는 이 글을 쓴 시점으로부터 너라는 사람을 잊고 지냈다. 너를 품어 줄 순진한 남자를 만나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