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과 연애할 적에 있었던 일이다. 한여름이 생일이었던 유은을 위해, 우리는 여름휴가를 떠날 겸, 생일을 축하할 겸, 겸사겸사하는 마음에 어디 며칠 동안 여행이나 다녀오자는 생각으로 짐을 쌌다. 여행을 떠나는 것은 단순히 몸만 가면 되는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골치가 아프다. 여름이기도 하니 물이 있는 계곡이나 바다 근처로 떠나는 것이 마땅하나, 또, 목적지가 계곡이 될지 바다가 될지부터 시작해서 만약 바다로 간다면 동해로 갈지 서해로 갈지, 여행을 떠나서는 숙소에서 먹고 놀며 '요양'하는 식의 일정을 보낼 것인지, 근처 관광지를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관광'에 가까운 일정을 보낼 것인지.


어디 이뿐인가. 숙소는 어디로 잡을지, 텐트에서 잠을 잘지, 펜션에서 잠을 잘지, 음식은 가서 살지, 사서 갈지. 이 모든 것이 '피서'라는 한 단어로 설명이 가능하지만, 그 과정 속 가족이나 연인들의 노고는 헤아릴 수가 없다. 어릴 적 가족을 이끌고 휴가를 떠나던 우리네 부모님들이 새삼 영웅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여행 계획을 짜는 데에 있어서 크게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다. 성향 다른 두 사람이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것이라면 의견을 조율하는 데 있어서 어려움을 겪겠지만, 나는 유은과 성격과 성향이 거의 비슷했고, 어쩌면 내가 유은을 더 좋아했기에, 하기 싫은 일이나 일정도 소화할 수 있다고 말하며 최대한 맞췄기에.

우리 여행은 순탄한 듯했다.


나는 그 여행이 관광이 아닌 휴양이라고 생각했기에, 휴양은 말 그대로 쉬러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나와 달리 유은은 그 여행이 관광에 가깝다고 생각했나 보다. 기왕 놀러 왔으면 명소는 다 훑어보고 가야 하지 않겠냐는 유은과 함께 유적지 이곳저곳을 구경하며, 탐탁지는 않은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유은과 내가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숙소에 관한 것이었다. 명색이 휴양인 만큼 숙소만큼은 조금 자연 친화적인 곳이 어떻겠냐는 나의 제안에 유은도 흔쾌히 동의했었던 터라, 어느 산자락에 있는, 절경이 끝내 주는 민박집 펜션으로 숙소를 잡았다.


여행 과정을 일일이 술회하는 것은 기행문과 같은 성격을 띠며 지루해질 것 같기도 하고, 여행하는 동안에는 인상 깊었던 무언가도, 깨달은 무언가도 없었기 때문에 그 여름 휴양의 하이라이트였던, 둘째 날 저녁 숙소 발코니에서 맥주를 한잔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던 순간을 써 볼까 한다. 아직까지도 떠올리며 얼굴을 붉히곤 하니 어지간히 인상이 깊었던가 보다. 분명 피서철이라 그 펜션에 예약된 전체 손님의 수는 많았을 터인데, 손님과 손님 사이의 거리가 꽤나 떨어져 있어서 우리는 한적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여름맞이 헌팅이라든가 휴양지에서의 인연 따위를 떠올리고 온 무리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운 공간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든 짝을 구할 것이고, 연인과 머물며 쉬러 온 이들에게는 만족스러운 공간이었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는데 말이야. 그러니까 자기를 실제로 만나기 전부터 물어보고 싶었던 게 있었는데. 자기는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거야? 그냥이라는 대답 말고. 열정의 동기가 궁금해" "글쎄? 가슴이 뛰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그러니까 언어를 공부할 때 나는 너무 두근거려." "그런 일은 어떻게 찾은 거야? 하다 보니 좋아진 건가?" "글쎄... 나는 이 공부를 할 때만 그런 감정이 들더라구."


그 대답에서 느낀 벽. 나는 유은을 좋아하지만, 아, 이 사랑도 결국 사랑만으로 사랑할 수는 없는 사랑이구나 느꼈던 순간. 그날 우리는 침대를 두고 바닥에서 잤고, 자는 동안 모기에 물려 발목이 퉁퉁 부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나는 생각보다 아직 어리구나, 하는 생각에.

스스로에 대한 경멸과 괴리감 때문에, 그해 나의 여름 휴양은 얼룩지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