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내려가는 것이 좋다. 나에게 섹스는 육체적 쾌락,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에 내가 내려가는 것이 좋다. 첫 섹스 때 누군가가 나의 성기를 물고 빨아준다는 행위에 만족감을 느꼈지만, 사실 혼자서 밤마다 하는 자위에 비교하면 그저 그랬으니까. 나는 상대가 만족하는 것을 보는 것이 좋았다. 항상 무언가를 증명하고 내 능력을 과시하는 삶을 살아왔기에 그런 것일까?
나의 쾌락은 표피를 자극하는 피스톤질보다, 그녀의 떨리는 다리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첫경험 때 깨닫게 되었다.
나는 상대의 반응에 더 큰 희열감을 느낀다.
누구나처럼 밑을 입으로 해 주는 거 아닌가 생각하는 여자들은 어느새 다리를 오므리려 애를 쓰고, 시트에 주름을 만든다. 내 얼굴을 꽉 조여오는 양 허벅지 사이에서 그녀를 올려다볼 때, 비로소 나는 절정에 도달한다.
내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파트너는 나보다 6살 많은 연상 누나였다. 추운 겨울날 카페에 앉아서 나누던 이야기는 진부했고, 우리의 목적은 어느새 쾌락으로 변해 버렸다. 나보다 경험도 많고, 이미 느껴버린 것이 많았을 그녀는 나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겠구나,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때부터 난 생각을 달리 먹기 시작했다. 이 여자를 만족시키는 것이 진짜 나의 목적이라는 것을. 단순히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모텔 조명보다는 낫고, 이케아에 파는 것보다는 조금 후진 무드등 하나를 키고는 좁은 침대에 함께 누웠다. 즐겁게 이야기하던 둘의 입은 어느새 침묵에 익숙해졌고 얼어붙었던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손은 목에서 어깨로, 어깨에서 허리로 점점 움직여졌으며, 내 고개는 더 아래를 향해갔다. 그녀는 내 머리를 잡고 자신을 보게 하였다.
"아 안 돼 거긴 더러워..." 아무 말 없이 미소를 보내고 내 손을 따라 고개는 더 아래로 내려갔다. 혹자는 그곳에 냄새가 나서, 또는 입이 청결하지 않아서 등등의 이유로 남자가 해주는 구강성교에 대한 불안과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샤워는 물론 양치도 길게, 손 또한 깔끔하게 씻어야지. 내 입이 상쾌하고 무언가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싶을 때 시작하게 된다.
대중 앞에 서며, 늘 남들보다 더 뛰어나려고 했던 내가 그녀 밑에 파묻혀 오롯이 그녀의 쾌락만을 위해 움직인다는 것은 나에게 스릴감을 준다. 내 안에 다른 자아를 찾는 느낌이랄까. 방 안은 정적으로 시작하여 그녀의 신음으로 채워지기까지만 기다린다. 삽입을 하는 것에 집중하지 않는다. 오로지 그 분위기와 그녀의 흥분만을 천천히 관조한다. 떨리는 두 다리 사이로 시트는 이미 젖은 지 오래이다. 숨을 거칠게 헐떡이던 그녀는 나를 잠시 내려보며 말했다.
"너 어린데 왜 이렇게 잘해?" "모르겠어."
멋쩍게 웃고는 다시 고개를 두 허벅지 사이에 끼웠다. 이 상황이 나에게 '진짜 흥분'을 선사한다. 축축해진 입, 주름진 이불. 싸구려 스프링 매트리스에서 스프링 소리가 다 울리도록 몸을 흔들면서 몸부림치는 그 모습.
아무것도 못 할 것 같다는 듯 쓰러진 그녀의 옆에 나는 눕는다. 숨소리는 거칠고, 다리는 계속 떨린다. 천천히 안아주고는 자연스럽게 휴지로 내 입술을 닦았다. 마치 하나의 루틴처럼. 그녀는 한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누워 숨을 쉬다가 보상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나의 밑으로 내려갔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난 이미 절정을 갔는데, 왜 또 밑으로 내려가는 것일까.
한동안 이러한 나의 섹스 방식에 대한 성찰을 했다. 나는 왜 이 행위 자체에 쾌락을 느끼는 것일까. 아직도 답을 못 찾았다. 그 답을 찾기 위해 몇 번의 섹스를 했음에도 명확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나는 성욕이 왕성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다. 어쩌면 난 성욕보다 스스로 인정받고 능력 있음을 보이는 것에 더 집착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렴 어떤가, 상대가 만족했으면 됐지. 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