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의 성 정체성에 대하여 깨달았던 시기는 열두 살 때였나. 당시 내 주변 친구들이 모두 이성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할 시기였지만, 나는 그러한 감정이 전혀 들지 않았다. 여자를 바라봐도 감정이 들지 않았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무성애자라는 개념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다. '아, 내가 그런 사람이었구나.' 한순간에 직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남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당시에는 성소수자들이 지금처럼 당당히 고개 들고 다닐 수 있는 그런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해가 몇 번 바뀌었다. 흔히들 말하는 역변. 나도 그걸 겪었다. 키도 꽤 커졌고, 젖살도 꽤 빠졌던 시기. 살이 좀 찌고, 타인에게 예전과 같은 호의를 베풀지 않는 지금과는 아예 달랐던 나. 당시 나는 여자 애들에게 꽤나 인기가 있었다.

보통 그 나이대 남자애들이 다 그렇듯, 나는 그 성장과 동시에 사춘기를 맞이했다. 흔히들 말하는 '중이병'을 겪는 시기. 주변에 연애를 하는 친구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그 친구들을 보며 나도 연애를 하고 싶단 생각을 가졌었다. 물론 그때도 여자에게 이성적 호감을 느끼진 않았었던 것 같다. 난 그저 남들 다 하는 연애를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앞에서 언급했듯, 당시 나는 긍정적인 의미에서 역변을 겪었던 시기였기에, 서너 달에 한 번쯤은 고백을 받았다. 거절하기를 반복하다 나는 한 아이와 자연스럽게 연애를 하게 되었다. 사실 우리는 서로에게 꽤나 나쁘지 않은 상대였다. 하지만 끔찍했다. 나는 나에게 애인이 있다는 사실을 과시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웠고, 그 여자애는 자신의 어장에 또 하나의 물고기가 잡혀 들어왔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웠을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서로에게 '애인'이라는 존재로 작용하기보다는, '쌍무적 계약 관계'라는 호칭이 더 어울리는 관계였다.


연애 초반의 나의 기분은 나름 나쁘지 않았다. 물론 매일 연락할 상대가 생긴다는 점에서도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내 자신을 과시할 수 있었던 것이 그때의 나에게는 더 큰 메리트로 작용했다. 하지만 몇 주 후, 나의 그런 생각은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벌써 어장을 친다는 평가를 들었으니까. 당연히 적이 많았겠지. 그녀의 애인이었던 내 앞에서도 주저없이 그녀를 욕하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그녀의 평판은 끔찍했다. 그녀를 가장 심하게 욕했던 사람은 공교롭게도 그녀가 가장 친한 친구였다. 그녀를 향한 화살의 일부는 내가 그녀의 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나에게도 돌아왔다.


그리고 또다시 몇 주가 지났다. 나는 슬슬 이 관계에 대해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어쩌면 드디어 내가 정신을 차린 것이었을까. 나는 과시만을 위한 관계가 과연 옳은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나와 그녀가 처음 만나기로 한 그날은 그녀가 전 애인에게 이별을 고했던 날이었으며, 나와 연애를 하던 그 당시에도 그녀는 다른 남자와 썸을 타고 있었다는 것을 전해 들은 나는 이별을 결심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한 달간의 연애 생활을 마무리 지었다.


해가 또 몇 번 바뀌었다. 이제 지금의 나. 나는 그녀를 탓하지 않는다. 그녀도 단순한 과시욕 때문에 나를 만나고 그렇게 살았던 것 아닐까?

내가 그랬던 것처럼 끔찍한 경험이었지만, 그 경험으로 인하여 나는 인간관계에서의 실수를 줄이게 되었고, 걸러야 할 사람을 더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얻었다. 또한 나는 성적인 무언가에 대해서도 호기심을 갖지 않게 되었다. 연애도, 키스도, 섹스도, 혹은 그 이외의 무언가도. 참 이상한 일이다. 나에겐 끔찍했던 한 달간의 경험이, 어쩌면 교훈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최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