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제목을 보고 뭐라고 생각했을지 나는 다 안다. 아쉽지만 내용은 그것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에 대한 이야기면 좋겠다. 그 크기 하나는 자신이 있으니까. 아무튼 나는 말이다. 키가 작은 남자다. 160cm를 간신히 넘기는 작은 키를 가진 나. 대한민국 남성 중에서도 정말 최하위 쪽에 속하지 않을까. 이런 작은 키 때문에 나는 이성을 대하기 두려웠고, 누군가를 좋아하기 망설여졌다. 나를 바라보는 이성에게 있어서 나는 그저 '귀여운 친구' 정도였다. 사랑을 품은 호의는 기대할 수조차 없었다.
작은 키는 단순히 이성에 대한 문제뿐만 아니라 너무나도 큰 정신적 문제를 가져오곤 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스트레스를 모두 쌓아놓고, 혼자서 모든 고통을 짊어지며 상처를 입는 사람이었다. 이런 성격과 작은 키의 환상적인 콜라보 때문에 발병된 자기혐오를 시작으로, 우울증, 무기력증까지. 무한한 자기혐오와 미래에 대한 우울감은 나에게 너무나도 무거운 짐이었다. 당장 하루하루 살아갈 목적도, 의미도 없었다.
그런 나에게 처음으로 따스함을 느끼게 해준 그녀를 난 잊을 수 없다. 중학교 3학년 때였나. 당시 그녀는 정말로 조용한 아이였다. 같은 반이었는데도 몇 달 동안 얘기는커녕, 이름조차 터놓지 못했으니까. 그러다가 아주 사소한 계기로 친해지게 됐는데, 우스꽝스럽게도 나는 그녀에게 첫눈에 반해버렸다. 그녀는 내 이야기를 많이 들어줬다. 경청하는 상대에게서 드는 편안함 때문일까. 나는 그녀에게 의지하게 되었다. 나의 아픈 부분을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것 자체로도 치유받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전에 만났던 애인에게는 '호감'을 느꼈지만, 그 이상은 느끼지 못했었다. 하지만 그녀를 바라볼 때 내게 드는 감정은 '좋아함' 그 이상 이었고, 나는 그 감정이 '사랑'임을 알 수 있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당시 나와 비슷하게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그녀가 너무나도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느꼈고, 그녀도 나처럼 조금은 구원받기를 바랐다. 하지만 당시 그녀는 나를 남자로 보지 않았나 보다. 나의 마음을 고백했을 때, 그녀는 그 고백을 거절했다.
그럼에도 나를 따뜻하게 감싸줬었던 그 '고백 거절 문자'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렇게 내 열렬했던 첫사랑은 끝이 났다.
첫 번째 짝사랑을 끝낸 뒤, 한동안은 너무나도 힘들었다. 자기혐오와 우울증이 더욱 심해졌다. 작은 키를 이유로 '나' 자신을 혐오하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그렇게 반년 정도 지났나. 고등학교에 들어간 후 한 친구를 만나며 나는 두 번째로 구원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보니 쉽게 사랑에 빠지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녀는 별 같은 친구였다. 겉으로 봤을 때는 정말 밝아 보였고, 친구도 많았다. 하지만 속내는 그러지 못했다. 나와 조금은 비슷했다. 환해 보이던 그녀 마음의 그늘은 커져갔다. 슬금슬금 드러나는 그녀의 고민을 하나하나 들어주며 우리는 가까워졌다.
삶의 목적과 의미를 찾지 못했던 그녀는 그저 가족에게 미안해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더욱 그녀에게 행복함을 선물해 주고 싶었다.
그러면서 점차 사랑이 싹텄나 보다. 그녀는 내게 '사랑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내 감정을 더욱 확신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참 순진했다. 당시에는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끼리만 사랑한다고 이야기하는 줄 알았다. 친구로서 사랑한다는 의도를 몰랐던 나는 그 친구가 나를 '이성적으로'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참 우습다.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서로 몇 달간 위로해 주고 보듬어주다 보니 그 친구는 우울증에서 벗어났단다. 나는 여전히 그대로였는데 말이다. 그녀와 내가 마치 다른 세상의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와 이야기하기 무서워졌고, 나와 있으면 안 좋은 영향을 받을 것만 같이 느꼈다. 그래서 멀리했고, 무뚝뚝하게 대했다. 계속 그러다 감정이 격해진 나머지 나는 그녀에게 화를 내고야 말았다. 싸우면서 고백한 나의 추한 두 번째 짝사랑은 결국 그렇게 끝이 났다.
내가 사랑했던 두 친구와는 지금도 잘 연락하며 지내고 있다. 하지만 그들을 볼 때마다 가끔씩은 씁쓸함을 느끼기도, 미안함을 느끼기도 한다. 어쩌면 나는 아직도 둘을 사랑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작은 키로 힘들었던 나를 보듬어 줬기에. 내가 조금은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만들어줬기에 그들을 잊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그 둘도 사랑하는 사람을 찾겠지.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제는 슬프지 않다. 어렸을 때와 달리 그들을 정말로 '사랑'하기에 그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들 곁에 있는 사람이 내가 아니더라도, 그래도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키큰난쟁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