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편지 왔네요. 여기. 강릉에서 왔네. 강릉에 누가 사나 봐?" 늘 환하게 웃어 주시는 자취방 주인아주머니는 주에 세 번씩은 마당 청소를 하러 오셨다. 댁이 근처도 아닌데 참 부지런하셨다. 복날이 되면 학생들에게 손수 만드신 삼계탕을 나눠 주곤 했다. 차려 먹기 귀찮아 끼니 거르는 날이 대부분인데, 아주머니의 친절함 덕에 여름을 싫어하는 내가 복날은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다.
그건 그거고.
무슨 편지일까. 나한테 올 편지가 없는데. 게다가 강릉이면 더욱. 강릉에 친척도 없고, 친구도 없어서 더 당황스러웠다. 기대 반 의문 반. 기대를 증폭시키기 위해 보낸 이를 보지 않고 편지만 챙겨 방으로 들어왔다. 궁금증을 꾹 참고 샤워까지 했다. 정말 궁금했다. 혹시 나도 모르는 이벤트에 당첨된 걸까?
요즘도 편지를 보내는 곳이 있구나. 이런 생각을 하며 샤워를 하고 나와서 편지 봉투 겉면에 쓰인 정보를 봤다. 보낸 사람: 강문해변 어느 느린 우체통에서 받는 사람: 나의 전부에게
전애인과 강릉에 놀러 갔을 때 쓴 편지였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고 우체통에 넣으면, 썼다는 사실을 잊을 무렵 보내 준다던 그 느린 우체통. 얼마나 오래 걸린 거지. 내가 그 사람을 잊는 데에 얼마나 오래 걸렸는데. 다 잊은 줄만 알았는데 막상 편지를 보니 우리 만났던 과거가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서로의 전부라고 할 만큼 뜨겁게 사랑했던 우리가 이제는 안부조차 물을 수 없는 사이가 되었으니까. 기분이 이상했다. 우울한 건 아닌데 무엇인가 먹먹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어쩌다 멀어지게 된 걸까. 그 처절한 사랑을 끝내고 바닥까지 떨어지기도 해 보고, 다시는 남자 안 만난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그 말을 하고 해가 벌써 두 번이나 바뀌었고, 내 마음의 문은 생각보다 굳게 닫혀서. 곁에 사람을 둘 여유가 없어서. 나는 여전히 혼자다. 나는 아직도 가끔 그의 카톡 프로필을 본다. 지난겨울, 그의 프로필 사진에 올라간 여자는 봄이 되자 사라졌고, 그 봄에 또 다른 여자가 그의 프로필 사진에 올라갔다. 그 곁에 있는 여자가 바뀔 때마다 바꿀 수 없는 현실에 가슴이 저렸고, 그 저린 마음을 해결할 방법은 시간밖에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지만, 그 인고의 시간을 감히 견뎌낼 자신이 없었기에.
견뎌야지견뎌야지견뎌야지잊어야지잊어야지잊어야지 편지는 뜯지 않기로 했다. 시간이 꽤 지난 일이라 편지 속 내용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뜯으면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아서. 누군가 그랬다. 모두 아린 추억 하나 살고 사는 거라고. 사연 없는 사람 없고, 아픈 사랑 안 해 본 사람 없는 거니까. 내가 풀어야 할 숙제. 날이 습해서 편지가 잘 탈지 모르겠다. 2023년 8월 19일 신이현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