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보다 성에 눈을 일찍 떴다. 유치원 때부터 여자를 좋아했다. 헐벗은 여자를 보고 싶었던 나는 당시 내 부족하다 부족한 어휘 실력으로 야후 검색창에 '여자 알몸', '여자 고추' 따위나 검색했었다. 웬 먹는 고추 사진이 나와서 실망하곤 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나. 성인 인증만 하면 네이버에도 야동 사이트가 뜨던 그런 시대였다. 영어 단어는 좆도 안 외우던 내가 한 번 들은 아버지의 주민등록번호를 달달 외워 성인 사이트에 접속했다. 신세계였다. 대부분의 영상이 유료로 제공되는 그런 사이트였지만, 배너에는 맛보기 움짤이 몇 개 있었다. 남자 두 명이 여자 가슴을 마구 주무르고, 여자를 밧줄로 묶고, 집게 달린 줄 같은 것을 가슴에 붙여 괴롭히는 그 영상을 보고 기분이 이상했다.


뭔가 그 가슴이 존나 뛰었다. 그 감정을 해소해야 할 것 같았지만, 해소할 방법은 없었다. 당시 나는 자위라는 것이 있는 줄도 몰랐고, 아기는 남자와 여자가 손잡고 자면 생기는 줄 알았으니까. 영상 속 남녀가 옷 벗고 한 행위(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SM 플레이였던 것)는 '놀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고 자위를 처음 해 봤다. 이것 또한 신세계였다.

어떻게 하는지도 잘 몰라서 내 그곳을 잡고 앞뒤로 흔드는 것이 아니라, 위아래로 흔들었다. 그렇게 한 10분 흔들다 보니까 무엇인가 나왔다. 그게 정액이라는 사실은 한참 뒤에야 알았다. 살면서 느껴 본 느낌 중에서 제일 짜릿했던 기억. 자위가 무엇인지 알게 되면서 섹스가 무엇인지도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존나 해 보고 싶었다.


첫경험이 빨랐다. 중학교 3학년 때 사귀지도 않는 고1짜리 누나와 섹스했다. 원래는 그냥 영화관 가서 영화 보고 두끼 가서 떡볶이나 먹기로 했는데, 영화도 보고 떡볶이도 먹을 수 있는 곳이 있다면서 나를 룸카페로 데려갔다. 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룸카페. 영화 소리에 묻혀 작게 새어 나오는 신음. 다큐에 나올 법한 쪽방 고시원을 보는 기분이었다. 다들 처음 하면 구멍 찾기를 어려워한다던데, 나는 쉬웠다. 야동과 현실은 많이 다르다던데, 그리 다르지 않았다. 내가 소프트한 야동만 봐서 그랬던 걸까. 첫 섹스는 기대 이하였다. 갑작스러운 섹스에 콘돔을 챙겼을 리도 없고, 러브젤을 준비할 생각도 못 할 나이였으니까. '만약 우리 사이에 아이가 생기면 어떡하지?'라는 생각, '너무 아파 살살'이라는 대사. '그래도 나 아다는 뗐네'라는 승리감. 정신이 없었다. 집중할 수 없었다. 그게 내 첫 섹스였다.


처음이 어렵고 그다음은 쉽다고 했던가. 섹스가 너무 쉬웠다. 그리고 좋았다. 재밌었다. 그래서 진지한 섹스도, 가벼운 섹스도 많이 했다. 스물이 되기 전 이미 나와 잔 여자는 열 손가락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어려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사랑이라는 감정보다 성욕이 앞섰다. 그 사람이 좋아서 연애한다기보다 섹스하고 싶어서 연애하는, 그런 아이러니한 그림이 연출되었다. 그리고 그게 당연한 건 줄 알았다. 성인이 되고도 나는 그렇게 살았다. 성인이 되니 더 자유로웠다. 이제 룸카페에서 숨죽이고 섹스하지 않아도 됐고, 사 보고 싶었던 평거돔이나 우머나이저 따위의 섹스 도구도 사서 파트너와 즐겼다. Tinder, 인스타, 학교 동아리, 가릴 것 없이 가입하여 여자들과 엮였다. 쉬웠다. 대신 연애하는 법을 잊어버린 것 같았다. 내 친구들은 '여사친'이 있었지만, 나는 여자를 '나랑 잘 사람'과 '자지 않을 사람'으로 나눴으니까. 이성을 대하는 알고리즘 체계가 고장 나 버린것 같았다. 사랑보다 섹스가 좋았다.


아, 진짜 이상형을 만났다.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배우를 닮았고, 이름까지 그 배우와 똑같았던 그녀를. 첫눈에 반한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그 큰 눈망울과 오뚝한 코, 차분한 목소리. 그녀를 처음 보고 든 생각은 '와 섹스하고 싶다'가 아니라 '시발 존나 예쁘네....'였다. 늘 그랬듯 먼저 다가갔다. 먼저 다가가긴 했는데 어떻게 대해야 할지 막막했다. 내 데이트 코스는 늘 밥-술-모텔이었으니까. 연애 안 한 지는 4년이 넘었으니까. 그래도 여자를 대하는 것에는 거부감이 없었던지라 영화 보고 맥주도 한잔한 그날 우리는 많이 가까워졌다. '빨리 섹스하고 싶다'는 마음은 들지 않았고, 솔직하게 말하면 키스 정도는 하고 싶었다. 연애는 글쎄다.


당연히 서로 처음이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우리는 사귀는 사이가 아니었으니까. 내가 처음이 아니라서 그랬던 건지, 이때까지 나를 만난 여자들이 너무 쉬웠던 탓에 그런 생각을 했던 건지. 그녀도 다른 여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행동했던 탓인지. 처음이냐 아니냐에 대해 별 감흥이 없었다. 어차피 가볍게 파트너로 남을 사이일 줄 알았으니까. 언젠가 우리가 함께 자는 날이 왔고, 싸구려 모텔에 그녀를 데려가기 싫어서 큰마음 먹고 호캉스나 가자는 명분으로 5성급 호텔을 예약했다. 미쳤었나 보다. 애인 아닌 사람과 호텔도 가고. 내게는 소주 마시고 하는 섹스가 일상이었지만, 그녀와는 발음하기도 어려운 와인을 마셨다. 좋았다. 섹스하지 않고도 가슴 간질거리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도 좋았고, 또, 오늘 섹스를 분명히 할 것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서 좋았다. 연애하고 있지는 않지만 연애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 앞에 놓인 스파클링 와인보다 그 유사 연애 감정에 취해 흐느적댔다. 괜히 기대고. 괜히 안기고. 괜히 만지고.


그녀가 씻으러 갔을 때 내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는 '섹스할 때 듣는 플레이리스트'를 재생 대기시켜 두었고, 콘돔은 베개 밑에 숨겨 두었다. 분위기가 대강 잡혔을 때 그녀는 할 말이 있다고 했다. 할 말이 뭐지. 생리인가?

엉덩이에 점이 있나?

겨드랑이 왁싱을 안했나?

다리 제모를 안 했나?

속옷 색깔을 맞추지 못했나?

빨아 주는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하려고 그러나?

그게 아니라면 대체 뭐지?

찰나의 순간 동안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그녀 입에서 나온 말은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오빠... 나 처음이라 그런데 괜찮겠지? "


음. 그래, 괜찮았다. 나는 괜찮았는데 알 수 없는 죄책감과 복잡한 감정이 몰려왔다. 처음인 여자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건 싸구려 섹스 플레이리스트와 능숙해 보이기 위해 베개 밑에 콘돔 두 개를 쑤셔 처박아 넣은 그따위 모습밖에 없는 것 같아서. 그런 그녀를 가볍게만 생각하고 있는 내 모습이 너무 병신 같아서. 와중에도 '파트너한테 감정 생기면 좆된다던데. 아 아니다. 아직 섹스도 안 했잖아?

아직 파트너가 아니니까 괜찮나?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사귀어야 하나?

하....'라는 생각을 하는 내가 혐오스러웠다.


나의 원나잇이 너의 첫경험이 될 줄이야. 나의 섹스 일대기에 있어 본능보다 이성이 앞선 유일한 순간인 것 같았다. 침대에 앉아 그녀를 일으켜 앉힌 뒤 꼭 안아 주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 뺨을 손으로 감싼 채 아무 소리나 지껄였던 것 같다.

그럼 오늘은 키스만 하고 섹스는 다음에 하자고 그랬었나.

아쉽겠지만 그날 나는 그녀와 자지 않았다.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밤새 시달렸고 결국 사랑하고야 말았다. 그렇지 않으면 죄책감에 평생 괴로울 것 같아서. 내가 죄인이 될 것만 같았다. 섹스는 천천히 해도 되는 거니까. 섹스에 사랑이 추가된다고 나쁠 건 없으니까. 그녀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고 싶었지만 그건 너무 큰 욕심이었나 보다. 건대멋쨍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