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자기 인생에 대해서 이래 깊이 이래 생각하게 돼 있거든. 인생은 바람이야 바람.
어디로 가는지 어디서 오는지 알 수도 없고." 영화 「바람」(2009)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는 남자라면 한 번씩은 봤을 법한 영화. 우스갯소리로 토렌트 천만 영화라고 불리는 영화 '바람'. 아직 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영화를 먼저 보고 이 글을 읽는 것을 추천한다. 나온 지 10년이 넘은 영화라서 영화를 보지 않고도 줄거리를 대충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명작은 다시 봐도 질리지 않는다. 그리고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몰입해서 봐야지 비로소 봤다고 할 수 있다. 숏 폼 콘텐츠나 요약 영상으로 향유하면... 몰입이 떨어진다.
나는 살면서 '바람'을 대략 열 번 정도는 본 것 같다. 처음 '바람'을 본 건 열다섯 살 때. 학교 체육 선생님이 틀어 주셨던 것 같다. HDMI 선이 위태롭게 연결된 조악한 티브이 화면으로 흘러나오는 깨진 화질의 영화와 사운드. 그 탓에 배우들의 얼굴과 대사가 온전히 전달되지는 않았지만, 대충 어떤 영화인지는 알 것 같았다. 이거 가슴 뛰게 만드는 영화인데?
멋있었다. 존나 멋있었다. '진짜' 부산 사투리와 가오로 범벅되어 있는 장면을 보며 든 생각은 '저렇게 되고 싶다'였던 것 같다. 영화 속 철없는 주인공 짱구가 멋져 보였다. 그렇게 되고 싶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영화를 끝까지 못 봤다. 길거리에서 어묵 먹다가 다른 학교 학생들이랑 시비 붙어서 싸우러 가는, 바람의 명장면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 장면까지만 봤기 때문에 영화의 결말을 알지 못했다.
한두 살 정도 더 먹고 다시 본 '바람'은 조금 달랐다. 여전히 멋있었다. 여전히 등장인물들이 멋있어 보였고 본받고 싶었다. 하지만 처음 알게 된 영화의 결말은 꽤 슬펐다. 아버지가 암에 걸려 돌아가시고, 정신을 차리는 주인공 김정국. 사실 알고 보니 영화 바람은 배우 정우(본명 김정국)의 어린 시절을 그린 것이라고. 그 사실을 알고 나니 기분이 좀 이상했다.
그러다 나이를 더 먹고 본 '바람'. 극 중 등장인물들의 나이는 열일곱 살이다. 열일곱 살을 실제로 보면 귀엽다고 느껴질 나이가 되어 본 '바람'은 내게 많은 생각을 안겨 주었다. 사실 우리는, 아니, 남자들이라면 모두 폼 나는 학창 시절을 보내고 싶어 한다. 잘 노는 친구들이 부럽기도 하고, 또 그런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감정을 가진다. 괜히 뭉치면 건들건들거리기도 한다. 몇 년 기다리면 피울 수 있는 담배를 괜히 물고, 교복 통을 줄여 입고, 야자나 수업 째고 놀러 가고. 지나고 나면 정말 철없는 생각과 행동이지만 당시에는 부러워하고 동경했던 것들. 극 중 '짱구'도 그런 인물이다. 사춘기 남자가 남자 무리에서 살아남는 방법. 강해 보이고 싶고, 때로는 시비가 붙어 싸우기도 하지만, 사실 짱구도 열일곱 살 아이에 불과하다. 철없고 가끔은 어리숙한. 강해 보이고 싶지만 아직은 겁도 많고 누군가로부터 보호받아야 할나이. 그 감정선을 정말 잘 표현했다.
짱구의 학교 선배들이 하나둘씩 졸업할 무렵. 짱구는 아버지를 떠나보낸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한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 짱구는 아버지 퇴근하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통닭 한 마리 같이 사서 돌아오는 장면을 회상한다. 그때 흘리는 눈물.
그때 짱구는 형을 아버지로 착각하고 말한다.
"아빠? 내는 잘 있다. 아빠 내 아빠한테 진짜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아빠... 내... 아빠 사랑한다.” 그리고 짱구의 형이 해 주는 말 한마디. "우리 짱구 이제 다 컸네."
영화 속 짱구의 형은 군인이다. 개구리 군복 시절. 군 생활을 하다가,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듣고 군복을 입은 채 장례식장에 온 것이다. 짱구의 형도 20대 초반, 아직 다 큰 어른이라고는 하기 어려운 그런 나이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버렸다. 이날 나는 느꼈다. 아, '바람'은 그저 학원물 누아르 영화가 아니구나. 진짜 가슴 찡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는 영화구나. '바람'은 담고 있는 메시지가 강한 영화다. 하지만 중고등학생 때 이 영화를 본다면, 작가가 주는 '메시지'보다 영화 속 주인공들의 '가오'만 따라 배울 가능성이 크다. 학창 시절부터 나이를 먹을 때마다, 1~2년에 한 번씩 보면 좋은 영화인 것 같다. 볼 때마다 느낌이 다르니까. 그래도 나이 허투루 먹지는 않았구나, 생각하게 만드니까.
처음 볼 때는 선배들의 겉멋이, 다음으로는 짱구의 행동이, 다음으로는 짱구의 내면이, 마지막으로는 성장하는 짱구가. 영화 '바람'을 보고 '그래. 학생 때 겉멋은 당시에나 멋져 보이는 거지. 학생은 공부할 때가 제일 보기 좋대도.'라는 말이 나온 당신.
철 좀 들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상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