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처음 울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물론 태어날 때 울었겠죠. 그거 말구요. 저는 장난감 사 달라고 울면서 떼 써 본 적도 없어요. 철이 일찍 들었나 봐요. 첫울음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 보자면 여덟 살 때쯤이었던 것 같아요.


언젠가 죽음이 두려워진 날이었어요.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그날. 장례식장에서 우는 사람은 저밖에 없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래서 장례식은 원래 분위기가 그런 줄 알았어요. 키우던 햄스터가 죽었을 때도 슬퍼하는 사람은 저밖에 없었거든요. 아무튼 문득 집에서 엄마가 차려 준 밥을 먹다가 '엄마가 죽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 뉴스에서는 한창 최진실 자살에 대해 다루고 있었고, 엄마는 엄마를 하늘나라에 보낸 상태였으니 저는 불안했어요. 샤워기에 붕대 감아 자살했다는 그 배우의 사인이 뉴스에 나올 때마다 티브이를 부숴 버리고 싶었어요. 엄마가 그 뉴스를 보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엄마가 화장실에 들어가 오래 나오지 않을 때면 불안해서 혼자 눈물을 뚝뚝 흘렸어요. 엄마한테 말했어요. 엄마 평생 죽지 말고 나랑 같이 살자. 응?

엄마는 극 T였나 봅니다. 사람이 영원히 살 수는 없다네요. 그래도 제가 성인이 될 때까지는 곁을 지켜 준다고 했어요. 저 눈치는 빠르거든요. 그 말을 듣고 울음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참았어요. 그리고 그날 밤 이불에 처박혀 숨죽여 울었어요. 어찌나 울었던지 베개가 다 젖었더라고요.


저도 나이를 먹었어요. 스물을 앞둔 겨울. 만나던 애인이 죽었어요. 갑자기 죽었대요. 사인은 교통사고. 술 마시고 운전한 어떤 개새끼가 사람을 죽였어요. 사람을요. 제 애인을요. 그 이야기를 듣고 저도 쓰러졌대요. 일어나 보니 응급실이더라고요. 수액을 맞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죽지 못해 산다는 게 무슨 느낌인지 알겠더라구요.

눈물을 쉬지 않고 흘리니까 눈알도 아팠어요. 그래도 죽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제가 여덟 살 때 느꼈던 불안감을 엄마도 느끼고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딱 사흘만 힘들어했어요. 홀로 약속한 사흘이 지나고 저는 일부러 웃는 척했어요. 그래야 다른 사람들이 걱정하지 않으니까요.


저도 성인이 되었어요. 죽음이 무섭지 않아졌어요. 저는 엄마를 너무 사랑하지만 이제 엄마가 만약 죽더라도 어찌저찌 혼자 밥 굶지 않고 살 정도는 되었어요. 신이 제 생각이라도 읽는 걸까요. 그래도 엄마가 약속을 지켰다는 점에 고마워해야 할까요. 올해 여름 엄마가 죽었어요. 눈물이 나와야 하는데 눈물이 안 나왔어요. 부정하고 싶었거든요. 그러다 어느 날 휴대폰에서 양희은 선생님의 '엄마가 딸에게'가 흘러나왔어요. 애플 뮤직 자동 재생을 틀어 놨더니 이 노래를 띄웠나 봐요. 눈에서 그렇게 많은 양의 눈물이 흐를 수가 있더라고요.


저 이제 울음을 뗀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구요. 전 아직도 엄마가 필요하고 울고 싶을 때가 있는 그런 사람이었어요. 저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요. 제가 사랑하는 존재들은 다 일찍 죽고 말아요. 저는 저를 사랑하지 않으려고요. 오래 살며 돈 많이 벌고 노잣돈 두둑하게 챙겨서 가려고요.

엄마, 준석아 잘 지내지?

보고 싶어도 꾹 참고 기다려.

그럼 안녕.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