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웠다. 우리는 일면식도 없었지만 꽤나 많은 얘기를 나눴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과 그렇게까지 서로의 깊은 속마음 얘기를 했던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고 자부한다. 그 사람은 마치 자신이 드라마나 영화 따위의 주인공이라 착각하고 사는 듯했다. 자신 주변에 생기는 모든 이야기의 발단이 그녀 자신이라고 생각했고, 모든 사건과 사고가 자신으로부터 유발된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러면서도 요즘 젊은이들이 쉽게 생각하고 여기는 우울증의 증상도 동반하고 있었다. 우울증 약을 복용하며 쉼 없이 자살을 기도하고, 그러면서도 인스타그램 피드에는 온갖 즐거운 시절의 기억을 공유해 둔 그녀.
우리 연락이 닿은 곳은 인스타그램이었다. 휴가 나가 방문할 카페 태그를 검색해 보다 발견했었나. 예뻤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연락을 보냈다. 그의 연락은 예상보다 더 불규칙적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최선이라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참 이상했다. 틈만 나면 죽음을 거론했고, 틈만 나면 과거를 붙잡고 괴로워했다. 연락을 주고받던 십이월은 너무 추우니 봄이 오는 오월에 함께 죽자는, 소설에나 나올 법한 대사를 능청스럽게 치곤 했다.
스스로 괴로워하는 모습을 주변 사람들에게 노출시키며, 남들이 해주는 걱정과 위로 따위를 즐기는 것으로 보였다. 그때는 그랬다. 나는 철저하게 그 사람의 본질이 궁금해졌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망가뜨렸는지. 동시에 그가 품고 사는 생각이 스스로를 괴물로 만들고 있다고 생각했다. 마치 그녀는 스스로를 어느 무명 감독의 독립 영화 속 비련의 여주인공을 자처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당시 나는 군인이었다. 나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 편이기에 그녀가 하는 이야기를 줄곧 잘 들어 주곤 했다. 그러니 그는 점점 내게 집착하기 시작했다. 내가 다른 여성과 연락이라도 하면 그는 죽음을 거론하며, 자신의 목숨을 담보 삼아 나를 위협했다. 나는 사실 별생각이 없었지만, 궁금한 마음에 때로는 말리기도, 때로는 무관심으로 반응했다. 그는 모든 것에 있어서 철저한 비밀을 지켰다. 베일에 쌓인 사람이었다.
우리는 인스타에서 맞팔로잉한 사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녀 인스타를 구경하다 보면 그를 추종하는 세력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내게 어떠한 연락처도 공개하지 않았고, 그저 본인이 관심이 필요할 때만 연락이 오곤 했다. 나 역시 그에 대한 관심이 사라져갔고, 결국 '그' 일이 생기고 말았다.
그맘때 나는 휴가를 나왔다. 그는 내가 휴가를 나오면 꼭 보자고 말했고, 나는 그 사실을 당연히 믿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만든 수많은 거짓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나를 만난다면 그 허물에서 나와야 하므로. 소위 말해 나를 실제로 대면할 깡이 없다고 생각했다. 역시나. 그는 약속 하루 전날 친척이 아프다는 이유로 약속을 취소했고, 나는 예상했었기에 무관심한 대응으로 응했다. 미리 다른 약속을 잡아뒀기 때문에 별문제는 없었다만... 그것이 문제였다. 내가 다른 사람들과 놀았다는 사실을 안 그는 돌연 자취를 감췄다. 정말 기적적으로 그는 자신이 만든 세상에서 사라졌다. 나 역시 그의 소식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나는 확신했다. 이 사람은 분명 나의 관심을 좀먹기 위해 다시 나타날 것을. 나의 오랜 친구가 Tinder에서 그녀와 닮은 사람을 본 것 같다고 했지만, 나는 어떠한 감정조차 남지 않았기에.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사월이었다. 연락이 끊긴 지 두 달가량 지난 시점에서 DM 하나가 도착했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연락이었다. 그동안 고마웠어. 이제는 너를 용서할게. 잘 지내. 나는 오월에 죽으려고. 이번에는 진짜로. 안녕.
내 답은 무응답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DM이 왔다. 그 애가 마포대교에서 죽었다고. 생전 그와 친했다는 친구라는 말과 함께. 나는 장례식장 위치를 알려 달라고 했지만 끝내 답을 들을 수 없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는 가면극을 하는 사람 같았다. 수많은 가면을 만들어 두고 연기를 하는 것 같았다. 죽음마저도 가면으로 만들어 두고 사는 듯한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저 호기심으로 시작한 대화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 역시 피폐해졌다.
무엇에 미쳐가는 것 같아서. 나는 그의 죽음 이후로 그를 차단해 버렸다. 과연 그는 죽었을까 아니면 여전히 어딘가에서 또다른 누군가로 살아가고 있을까. 나는 여전히 모르겠다. 우리네 삶에 정해진 답은 없지만, 적어도 자신이 아닌 모습을 흉내 내며 연명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 또한 누군가가 살아가는 방식이려나. 나는 모르겠다. 최신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