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고했다.
언제나 나는 가식 없는 내 모습을 기록해 왔고 섹스는 내 삶의 일부였으니까. 매거진에 올라오는 다른 사람들의 섹스 에세이는 내 관심 밖이었다. 자극적이지 않았다. 재미가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남의 섹스 썰을 듣는 것보다 내 섹스 썰을 푸는 게 늘 더 재밌었으니까. 글쓰기에는 자신이 있었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오랜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내가 원나잇한 이야기를 실컷 풀었다. 평범하게 회사 다니며 불금에 치맥하는 것이 삶의 낙인 한 친구는 내 섹스 이야기를 책으로 내면 기가 막히게 팔리겠다고 했으니까. 나의 섹스에는 재미도 있었다는 거겠지. 그렇게 글을 썼다.
투고했다.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웹매거진 계정을 둘러봤다. 많았다. 많은데 눈에 띄는 계정은 하나였다. 블라블라 매거진. 계정 이름부터 끌렸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도 그곳에 올라가겠지. 규모가 그리 크지도 않고, 그렇다고 또 엄청 작지는 않은. 마이너 인디 밴드 발굴하는 느낌으로 운 좋게 발견한 계정. 블라블라 매거진에는 이미 다른 이들의 섹스 썰이 몇 개 올라와 있었기에 부담도 없었다.
나는 누군가와 하룻밤 자고 자취방으로 돌아올 때면, 인센스 스틱을 하나 피우고 침대에 홀로 누워 지난 섹스를 한참 동안 복기한다. 늘 그래 왔다. 알파고에게 2연패를 당한 후 밤샘 복기를 한 이세돌처럼. 나도 내 섹스가 끝나면 늘 복기한다. 나도 패배와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이 이야기는 나중에 글로 풀어 보기로 하고)이 있어서일까.
아무튼 말이다. 내 섹스는 그래서 선명하다. 생생하다. 사실적이다. 자극적이다. 몸을 섞으며 나눈 대사 하나하나 다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더 적나라한 거겠지.
그렇게 투고한 「나의 원나잇이 당신의 첫경험일 줄이야」는 반응이 뜨거웠다. 예상했던 대로라 그저 그랬다. 다음으로 투고한 「서울 애인, 부산 애인」. 반응이 뜨거웠다. 다른 의미로. 하지만 그것 또한 내가 충분히 예상했던 부분이었다.
누구는 내 얼굴이 궁금하다고 했고, 누구는 내 글이 역겹다고 했다. 내 글이 곧 '나'니까 나를 역겹게 여기는 거겠지.
누구는 나와 친해지고 싶다고 했고, 누구는 뭐가 자랑이냐고 했다.
누구는 내 글이 좋다고 했으며, 누구는 내 글을 검열하라고 했다.
사람들은 웃기다. 남의 섹스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나름의 기준이 있나 보다. 원나잇 스탠드나 섹스 파트너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로워하면서, 바람에 대해서는 예민하다. 이유가 무엇인가 하니 바람은'상대에 대한 기만'이라고... 이런 일관성 없는 사람들. 원나잇 스탠드와 파트너 관계까지 상대방에 대한 기만이라고 포함했다면 모를까. '바람'에만 뚜껑 열려서 반응하는 모습들을 보니 그대들의 이중적인 태도에 웃음이 난다. 어차피 나야 연애 안 한 지 오래고, 결혼도 안 할 것이기에 상관이 없다만, 가벼운 섹스를 즐긴 사람이 그렇지 않은 상대방을 만나 사랑하면, 그건 기만이 아닌 건가?
과거의 원나잇 섹스는 그저 뜨거웠던 청춘의 한 페이지로 남길 수 있는 건가?
사람들아. 일관성 있는 태도를 보여라. 결국 바람이나 원나잇이나 파트너나 다 똑같은 기만이니까. 그리고 언젠가 내게 든 생각. '떳떳한 사람이 되었을 때 결혼을 하고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야겠다.'는 포기한 지 오래다. 나는 떳떳하고 깨끗한 사람이 아니니까. 나는 나를 너무 잘 안다. 그래서일까. 적어도 앞뒤 다른 말은 안 한다.
지난주 금요일에는 집 앞 술집에서 눈 맞은 여자와 주말까지 함께 했고, 어제는 계륵 같은 여자와 찐득한 잠자리를 가졌다. 그대들이 뭐라고 하든 나는 오늘도 섹스를 한다.
바람이고 기만이고 역겹고 천박하고 추악하고... 어쩌고 저쩌고...
블라블라... 주저리주저리... 다 알겠으니까 다들 즐섹하시길. 건대멋쨍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