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린 겨울 공기가 코를 찌르고 옛 생각에 젖어 든다. 나는 의미 부여를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 늘 사소한 것에 의미 부여를 했다. 나름 엄격한 기준을 세우고 살았지만, 내가 세운 철칙들도 상대방 눈빛이면 하염없이 무너지곤 했다. 술 좋아하는 사람 만나지 말아야지. 타투 있는 사람 만나지 말아야지. 인스타 좋아하는 사람 만나지 말아야지. 하지 말아야지 하지 말아야지 했지만, 전애인과는 술을 마시고 같이 잔 뒤 연애를 시작했고, 지난 유월 영등포 어느 모텔에서 하룻밤을 보낸 그녀는 골반에 타투가 있었다. 첫 연애는 어플에서 시작했으니까. 언젠가 나도 내가 어려웠다.
조금만 가까워져도 정신을 차려 보면 다시 헤어 나올 수 없을 정도로 빠져 있었으니까. 매몰 비용이 아까워서인지, 그냥 원래 내가 그런 사람인 건지, 나는 그렇게 살아왔다. 한 사람이 내 기준에 완벽하게 충족돼서 연애한다기보다는, 의미를 부여하고 난 뒤에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결정을 미루는 경우가 많았다. 그냥 그랬다.
나는 늘 사랑을 망쳤다. 그 여름도 그랬다. 자책하며 하루하루 연명 하던 순간 한 여자가 내 인생에 등장했다. 어느 날 서점에서 마주친 그녀. 우리는 한 권 남은 책을 동시에 집었다. 뭔가 운명 같은 그 상황이 내게 또 의미를 부여했다. 이 사람은 무조건이다 싶었다. 그날 책은 그녀에게 양보했고, 그녀는 내게 시간을 양보했다. 우리는 커피를 마시러 나가 이야기를 잔뜩 나눴다. 처음 본 것이었지만 마치 몇 년 만에 친구를 만난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긴 생머리에 종종 포니테일 머리를 했고, 뽀얀 피부에 큰 눈망울이 매력적이었다. 처음 봤을 때는 상황에 묻혀 그리 예쁘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지만, 사람이라는 게 계속 보다 보면 익숙해지기도 하고 못 보던 매력도 보이는 거니까. 그렇게 빠져들었다.
분명히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그녀는 술만 마시면 담배를 피웠다. 프렌치 요고는 다행히 1mg이었지만. 침대에서 종이컵에 물 적신 휴지 깔아 두고 담배 피우는 그녀 몸을 더듬고, 자연스레 섹스하는 그 과정이 좋았다. 퇴폐적인 그 분위기가 나쁘지는 않았다. 담배를 싫어하는 내가 감수한 부분 하나. 그녀는 전애인들과 친구처럼 지냈다. 완전한 소유를 바라는 내가 감수한 부분 둘. 그녀는 글을 썼다.
글 쓰는 사람은 아픔을 품고 산다고 생각하는 내가 감수한 부분 셋.
사랑에 감수가 들어가면 그건 사랑이 아니다. 감수라는 단어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나 고통 따위를 달게 받아들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니까.
누구는 사랑하기 위해서 상대방의 치부마저 감수해야 한다고 했지만, 나도 이때까지 그렇게 살아왔지만. 이제는 아프고 싶지 않았다.
우리 정말 안 맞다. 그만 만나자. 내가 참 싫어했던 그 말을 내가 했다. 내가 듣고 가장 아팠던 그 말을 내가 내뱉고야 말았다. 그녀도 저 말을 듣고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까. 언젠가 내가 전애인에게 저 말을 듣고, 쿨하게 인정하고 뒤에서 울었던 것처럼, 그녀도 그랬을까. 아니면 그냥 덤덤했을까.
매달 초가 되면 지난달 일상을 모아 블로그에 업로드했던 그녀 습관 탓에 나는 이별을 하고도 매달 1일이 기다려졌다. 언젠가 내 이야기가 올라올까, 하다못해 내 흔적이라도 남아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스크롤을 내렸지만, 있을 리가. 그녀에게 친구로 남지 못한 전애인은 내가 처음이다. 나에게 있어서 감수하지 못한 사랑은 그녀가 처음이었다. 나도 그녀도 처음으로 예외 경우를 만든 셈이다. 이제 감수하지 말아야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또다시 감수하게 되는 것이 사랑인 걸까.
너무아픈사랑도사랑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