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기 전 글감이 떠올랐다. 끝내 주는 첫 문장을 생각해 냈었는데, 메모하기 귀찮아서 그냥 자고 일어나 보니 그 문장은 사라져 버렸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내가 먼저 붙잡지 않으면 무엇이든 늘 도망가 버리니까. 어느 노래 제목처럼 사랑은 늘 도망간다. 사랑도, 사람도, 하다못해 글을 여는 첫 문장마저도. 첫 문장은 못 쓰게 되었지만 내용까지 함께 사라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해야지.
네 평 정도 되는 방 안에 홀로 누워 있으면 하는 일이라곤 포르노 보고 자위하기. 포르노?
괜히 고급스러워 보이는 포르노라는 단어보다 야동이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린다. 야동이라고 하자. 여튼 일어나면 늘 야동을 틀어 의무적으로 자위를 했다. 싸기 직전이 되면 발가락 끝에 힘을 주며 저열한 말을 내뱉었다. 야 이 씨발 걸레 같은 년아. 안에 쌀게, 더 벌려 봐 씨발년아 맛있냐?, 등과 같은 그런.
싸고 나면 현타가 오긴 왔다. 오긴 온 정도가 아니라 졸라 심하게 왔다. 조준을 잘못해 정액이 이불에 튀기라도 하는 날이면, 내가 뭐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차피 방에는 나밖에 없다는 생각에 금세 괜찮아지곤 했다. 그러다 '혹시 내 인생도 트루먼 쇼처럼 누가 관찰하고 있으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들면, 괜히 또 씨발, 씨발거리면서 정액 닦은 휴지를 뭉쳐서 변기에 버리고 물을 내렸다. 싸고 나서 오줌을 싸 줘야 건강에 좋다는 말 때문에 강박증이 생겼다.
언제부턴가 나오지도 않는 오줌을 쥐어짜 내는 것까지가 나의 루틴이었다.
알고 있었다. 내 자위는 너무 극단적이고 거칠었다. 첫 섹스를 하게 되면 혹시 못 싸지는 않을지, 혹시 내가 만족하지 못하진 않을지 늘 걱정이 많았다. 그러던 첫 섹스.
누구는 첫 섹스가 3초 만에 끝났다고 했고, 누구는 첫 섹스에 세우지 못해 자위만 하다 끝났다고 했다.
누구는 콘돔을 거꾸로 낄 뻔해서 머쓱했다고 했고, 누구는 뻑뻑해서 아팠다고 했다. 첫 섹스는 섹스 전 여기저기서 들었던 말과 머릿속에 든 걱정이 하나도 부질없을 정도로 단조로웠다. 그냥 말 그대로 평범한 섹스 그 자체였다.
내 성적 판타지를 꺼낼 이유도, 꺼낼 타이밍도 잡지 못했지만 괜찮았다. 단조로웠지만 무미건조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재밌었다. 재밌다기보다 사랑을 온몸으로 만끽하는 것 같아서 짜릿했다. 흥미로웠다는 표현이 적절할까.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더 격하게 박았고, 괜히 억지 신음을 귀에 내뱉어 주었다. 온몸으로 '너는 내 거야'라는 사실을 전달하고 싶었다.
우린 오래 그리고 많이 했다. 함께 자는 날이면 여섯 번은 했다. 세 번 정도 하면 섹스만으로 사정하기 어려워진다. 네 번째부터는 그냥 나란히 누워 풀린 눈을 보며 자위하기. 주고받는 말은 존나 자극적이었다. 동시에 오르가슴을 느끼기도 했다. 타이밍을 맞춰서 한 명은 상대방을 기다려 주면서 말이지. 이불이 땀으로 젖고 열심히 흔들어 대는 왼손이 저려올 때쯤 그녀는 늘 괴성을 지르며 절정에 다다랐다. 늘 그녀 배 위에 사정했다. 자위할 때 버릇 남 못 준다고 나도 온갖 천박하고 외설적인 말을 내뱉으면서
이상하게 현타가 안 왔다. 지치긴 했지만 절정을 느낀 우리가 서로 쑥스러운 듯 웃으며 서로의 품에 숨는 그 순간이 좋았다. 맨살을 맞대며 안고 있을 때면 그대로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가장 행복했으니까. 이제는 남이 되었지만, 안부조차 물을 수 없는 그런 사이가 되었지만. 나는 그녀를 보내고 다른 이들과 한 섹스에서 그만큼의 자극을 받지 못했다. 술김에 연락이라도 보내 봐?
싶었던 적도 많았지만 그냥 괜한 흑역사 하나 쓸 바에야 안 하는 게 나으니까. 그때 받은 사랑이 그리운 건지 그때 나눈 사랑이 그리운 건지. 그런 생각이 들 때면 그냥 자위를 하고 잤다. 한 번 싸고 나면 그래도 생각이 정리됐다. 싸기 직전에는 그녀 얼굴을 떠올렸지만.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나랑 한 섹스를 이렇게까지 그리워하는 사람은 있을까. 만약 있다면 참 영광일 텐데.
광안리 놀러 가서 만난 어느 인플루언서는 두 번 하고 지쳐서 잠들었고, 건대 앞 헌포에서 만난 스무 살짜리 여자애는 물이 안 나와서 아파했다. 애인이 있다던 여자와 잠자리를 가질 때는, 울려대는 벨소리에 도무지 몰입할 수가 없었고, 전애인보다 몸매 좋고 필라테스 한다던 그녀는 키가 작아서 원래 내 섹스 패턴에 맞지 않았다. 그렇다고 혼자인 방에서 자위나 하자 싶어서 사정하면, 아무리 저급한 말을 내뱉어도 풀리지 않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이별하고 가장 좆같은 경우가 뭔지 알아?
함께했던 다른 순간보다 섹스가 더 기억에 남는 거. 그게 참 좆같다. 최주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