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말이에요. 정말이지 참 아련한 무언가인 듯해요. 추상적인 것에 대하여 설명한답시고 추상적인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웃기기도 하지만, 어떡하나요. 사랑은 아련한 무언가인 것 같은데 말이에요. 사랑이 아프다고들 하는데 글쎄요. 사실 사랑하면서 마음이 시큰거리고 아릴 때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잖아요?

그저 사랑의 수많은 과정 중의 하나일 뿐이에요. 사랑은 언제 떠올려도, 당장의 사랑에 대해 떠올려도, 다 지나간 사랑에 대해 떠올려도 아련해지고 뭉클해지는 무언가가 있어요.

무슨 말인지 공감이 가시나요?


사랑하는 사람과 한순간에 남이 되는 그 순간의 감정을 온전히 잊을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저는요, 나이 스물여섯이 된 지금에도 첫사랑과 이별하는 순간을 잊지 못하고 있어요. 구어체를 써가며 지난 연인을 추억하는 것도 웃긴데, 가장 익숙한 말투로 이야기해야 가장 내면의 것까지 꺼내올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말이 샜네요. 아무튼 말이에요. 저는 첫사랑을 조금 늦게 마주했어요. 스물이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생긴 첫사랑과의 첫 연애. 이전에는 왜 연애를 하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굳이 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 안 하는 거라고 답하곤 했지요. 연애하는 것보다 친구들과 노는 것이 더 좋았고, 끌리지 않는 남자들과 놀 바에야 엄마랑 놀러 나가는 게 훨씬 더 재밌었거든요.


그러다 언제나 '엄마의 소중한 딸'로 남아 있을 것만 같던 제가 대학을 가기 위해 서울로 올라오고, 몇 개월 적응하다 보니 또 익숙해져서 고향을 벗어났다는 데에서 해방감을 느낀 것인지, 서울로 올라오니 괜찮아 보이는 남자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어요. 자랑하는 건 절대 아니지만요, 아마 모든 여성분들이 겪어 보셨겠지만, 저 좋다고 관심 보이는 남자들이 저한테도 몇 있었어요. 하지만 저는 나 좋다는 사람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더 끌리는 편이라서 쉽게 연애하지 못했어요.


그래요. 그런 저도 연애라는 것을 하게 되었어요. 그 친구는 참 다정하고 담백했어요. 밍밍한 사람을 평양냉면에 비유하곤 하잖아요. 그 친구가 딱 평양냉면과 어울리는 사람이었답니다. 감정의 높낮이에 차이가 없었고, 과하게 꾸미지도 않았어요. 허세도 없었고요, 그 애를 바라볼 때면 마치 오래 알고 지내던 사이인 듯한 편안함이 느껴지며, 마치 어릴 적부터 같은 동네에 살았을 것만 같다는 착각까지 들었다니까요. 고향을 떠나 서울에 살며 알게 모르게 엄마와 고향의 것들이 그리웠던 스무 살의 저는 그 애에게 마음을 빼앗겨버리고 말아요. 스무 살, 뭐든 할 수 있는 젊은 나이죠. 막 성인이 된 기쁨을 만끽하느라, 자유와 방종을 즐기느라 조금 방탕하게 사는 이들도 많은데 우리는 하루도 그렇게 보낸 적이 없어요. 반년을 만나도록 기껏 한 것이 볼에 입술 맞추기 정도이고, 그마저도 그 애의 생일을 맞이하여 제가 벌인 독단적인 행동이었으니까요. 그 애는 때 묻지 않은 사람이었어요. 저도 맑고 참 순수했어요. 그래서 우리의 사랑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것이 아닐까요?


그 애는 저의 전부였는데, 저도 그 애의 전부였는데, 우리는 결국 헤어지고 이제는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덤덤하게 말할 수 있는 지경이 되었네요.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잘 지내던 사람과 아무것도 아닌 사이가 된다는 것이, 친구 그 이상의 정서적 유대를 맺고 있던 사람과 남이 된다는 것은 정말이지, 정말이지, 할 짓이 못 되는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는 이 감정은 적응이 안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