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까스?
돈가스?
사실 돈까스는 돈가스의 잘못된 표기가 맞다. 이제는 짜장면이 자장면과 같은 표준어 취급을 받고 있지만, 돈까스는 여전히 비표준어라고. 나는 돈까스가 잘못된 표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사용한다. '돈가스'는 뭔가 부친 지 한참 된 눅눅한 녹두전 같은 느낌이 들어서 식욕을 감퇴시킨다. 뜨겁고 바삭바삭해서 입천장이 다 까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들게 하는 단어는 아무래도 '돈까스'다.
경양식?
일식?
둘 중 하나를 꼽으라면 나는 잠시도 고민하지 않고 경양식을 택하겠다. 다섯 살 무렵 집 앞 돈까스집에 가서 처음 먹은 돈까스도 경양식. 내 인생에서 가장 맛있었던, 도서관 지하 푸드코트 돈까스도 경양식. 어느 대학로 앞 김밥천국 같은 분식집에서 먹은 최고의 돈까스도 경양식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일식 돈까스가 맛없다는 건 아니다. 일식 돈까스는 돈까스 소스에 찍어 먹어도 맛있지만, 와사비나 소금에 찍어 먹으면 그 풍미가 살아난다.
왜 '그' 맛을 내는 곳은 사라진 걸까 경양식 돈까스. 경양식 돈까스를 좋아하지만, 요즘 접하는 경양식 돈까스는 하나같이 내게 실망감을 안겨 준다. 전부 공장제 시판 돈까스 소스를 쓰는 것 같기도 하고, 소스에 물을 탔나 싶을 정도로 풍미가 안 느껴지기도 한다. 몇 달 전 저녁. 경양식 돈까스를 먹고 싶었다. 지도를 검색 하니 1.4km 떨어진 곳에 돈까스 가게가 하나 있었다. 사진을 통해 보이는 소스의 색은 합격이었다. 내가 알던 그 깊고 진한 맛과 향이 화면 너머로 넘어왔다. 1.4km가 140m인 것처럼 느껴졌다. 가게로 들어간 나는 돈까스를 주문했고, 늘 그렇듯 밥과 돈까스만 내어달라고 부탁드렸다. 15분 정도 기다렸고, 나온 돈까스는 내가 본 사진과 똑같았다. 기대에 가득 찬 나는 돈까스 한 조각을 잘라 입에 넣었다.
아, 이게 아닌데...
내가 알던 경양식 돈까스는 이렇지 않았다. 소스가 돈까스와 하나도 어울리지 않았다. 따로 노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튀김이 너무 느끼했다. 오래된 기름을 사용해서일 수도 있지만, 나는 원래 프라이드 치킨도 느끼하다고 느끼는 사람이니까. 원래 경양식 돈까스는 소스의 진하고 깊은 맛이 튀김을 전부 감싸 느끼한 맛이 안 느껴져야 하는데, 내가 먹은 돈까스는 그게 아니었다. 돈까스를 먹고 다시 돌아오는 1.4km는 14km처럼 느껴졌다.
기억과 달리 맛은 미화되지 않는다 나는 음식 맛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편이다. 그래서 나는 추억의 돈까스 맛을 더욱 격렬하게 찾고 싶어 하나 보다. 효목 도서관 지하에 위치한 푸드코트에서 어릴 적 맛본 그 경양식 돈까스의 맛은 잊을 수 없다. 스윙스가 극찬했다던 일식 돈까스도, 줄 서서 먹는다던 어느 경양식 돈까스도, 한장에 2만 원이 넘는 돈까스도 다 먹어 봤지만, 도서관 지하에서 먹은 경양식 돈까스의 맛에 한참 못 미친다. 물론 내 입맛이 좀 싼마이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그때 먹은 그 돈까스는 정말 맛이 좋았다. 달콤했지만, 과일로 낸 단맛은 아니었다. 깊은 향이 있었지만, 시판 돈까스 소스와는 아예 다른 맛이었다. 공장제 돈까스 소스는 '오렌지 시럽이 들어간 오렌지 주스'라면 그때 먹은 돈까스의 소스는 '과즙 100% 생과일 오렌지 주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양식 돈까스를 주문할 때마다 나는 실망할 것을 안다. 어차피 그때 그 돈까스와 같은 맛을 내는 돈까스를 찾기는 이제 어렵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혹시나 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 때문에 휴게소에 갈 때면 '옛날 돈까스'를 주문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 때문에 허름한 분식 식당에 가게 되면 '왕돈까스'를 주문한다. 승률 0% 추억의 돈까스 찾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그때 그 맛을 찾을 수 있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