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블라 매거진의 세 번째 인터뷰. 반가웠다. 4년 만에 연락이 닿았다.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대로라 신기했다. 시간 참 빠르다. 그의 서울살이도 어느덧 4년째라고. 혼자 서울에 올라와 누구보다 치열한 청춘을 보내고 있는 김민희(가명). 신비주의 컨셉을 고수하는 걸까. 이름과 나이를 다 비공개하고 싶다고.

그대들에게 예술은 무엇인가?

예술을 보는 입장에 놓인 내가 예술을 하는 입장에 놓인 그에게 던지고 싶었던 질문을 던졌다.

나도 예술가를 선망했으니 말이다.

어쩌면 나도 예술가일까.

서론은 여기서 줄이고 바로 들어가 보자.


반가워요. 소개 간단히 부탁드려요.

저는 (나이를 말하고) 미대생입니다.

(침묵) 이게 끝인지?

네. 혹시 나이는 비공개로 올라가나요?

원하신다면. 그렇게 부탁드릴게요.

요즘 뭘 하고 지내시는지.

서울살이도 벌써 4년째네요. 일은 서울 올라와서부터 계속하고 있고. 졸업 학년이라 졸업 준비도 하고, 창업 준비도하고 있어요.


예술가의 길. 어떠세요?

음. (고민) 미술을 전공했지만 스스로 예술가라고 하기는 부끄럽고 또 어렵네요. 그런데 또 저는 예술가를 하고 싶지는 않아요. 훗날 예술가들을 서포트해 주는 의미 있는 역할자가 되고 싶어요. 이 꿈은 제가 예고에 다닐 때부터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회화과에 진학한 이유는?

어쨌든 간에 제가 원하는 그런 일을 하려면 예술가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거든요. 그런 제가 잘하는 게 그림이었어요. 회화과에 들어가서 예술가들과 함께 일하고 작업하다 보면 얻는 게 분명히 있을 것이다 생각했죠. 그래서 진학하게 된 것 같아요.

그럼, 민희 씨가 내리는 예술가의 정의는?

매일 일탈을 꿈꾸는 매력적인 사람인 것 같아요.

이유는?

새로운 걸 창조하기 위해 끊임없이 성장하잖아요. 저는 그림을 그리지만, 글이나 음악, 비디오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또 그들만의 생산적인 일을 하죠. 그래서 예술가는 매력적인 것 같아요. 같은 붓을 잡더라도 각자 다른 이야기를 쓰잖아요. 그래서 저는 다양한 목소리들이 잘 어울리게끔 하는 그런 전시를 기획하고 싶어요. 또, 기회가 되면 개인전도 열고 싶네요.


예술인으로서 누군가의 뮤즈로 남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리스 신화에서 언급되는 개념으로 알고 있는데. 음. (고민) 누군가에게 뮤즈로 남는다는 거. 그거 되게 영광스러운 일 아닐까요.

그 뮤즈로 남는다는 기간이 오랫동안일 수도, 짧을 수도 있지만요. 오래 남아 그들에게 파동을 일으킨다면. 제가 삶을 살아가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요?

민희 씨에게 연애란?

연애. 연애는. 음. (고민) 어렵네요. (웃음) 질문이 다 추상적이네요. 사랑의 대표적인 형태 아닐까요. (고민) 일단 사람은 연애를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연애는 영감의 원천이기도 하니까요.

어렵네요. 질문 속 단어가 연애가 아니라 사랑이라고 하면 쉬울 텐데 말이죠. 사람이 사랑은 하고 살아야 하니까요. 그렇다고 제가 연애에 대해 비관적인 사람은 아니에요. 그런데 저는 그래요. 열심히 살다 보면 제게 찾아오는 인연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들로부터 배울 점이 있었죠. 약간 삶의 윤활제 느낌이라고 할까요.


서울이란?

음. 서울. 이제는 산 지 4년이 되었어요. 고향인 부산에 가도 이방인 같고 서울에 와도 이방인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서울 처음 올라왔을 때는 눈에 보이는 모든 풍경이 반짝반짝. 멋진 세상 같았어요. 부산 촌년이었으니까요. (웃음) 근데 또 살다 보니 사람 사는 동네더라고요.

근데 꿈을 실현하기 가장 좋은 공간은 서울인 거 같아요. 다 서울에 집중되어 있으니까요. 액기스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근데 또 그냥 지낼 때는 사람 사는 동네 같은데, 2호선 타고 당산에서 합정 넘어갈 때 펼쳐지는 뻥 뚫린 한강 풍경을 보면, 내가 서울 사는구나 싶죠.


지금 계절에 듣는 노래?

저는 계절을 안 타요. 그냥 좋아하는 노래는 DPR 노래?

DPR 노래를 제가 좋아해요. 가사 자체가 야하고 직설적이거든요. 그런데 또 그런 가사를 예술적으로 잘 녹여 놨어요.

앨범부터 노래까지. 아마 들어 보면 다들 아실 거예요. DPR LIVE


함께 낭만을 걸어보고 싶은 사람이었다. 별 것도 아닌 것에 특별해지고, 사소한 것도 그에게만은 사랑스러운 사람이고 싶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언제까지고 낭만 속에서만 살 순 없었던 것이다. 이제는 나를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사람. 잘 가요. 나의 낭만.

언젠가 그의 카카오톡 배경화면이었다. 마음에 들었던 터라 나도 휴대폰의 배경화면으로 지정해 놓고 쓰던 때가 있었다. 연락이 닿는다면 저 글의 출처를 묻고 싶었지만 이번에도 결국 묻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