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연애도 하기 전. 이미 나는 경험이 많았다. 남자들이 정말 바라고 바란다는, 내가 사랑하는 여자의 처음. 순결. 애석하게도 나는 내가 처음이라던 애인에게 내 처음을 주지 못했다. 모르는 눈치였다.

당연히 몰랐겠지. 처음처럼 행동했으니까. 늘 처음엔 처음이니까. 나도 정말 처음이었던 적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내 머릿속에는 나의 첫경험이 당황스러울 정도로 선명하게 저장되어 있었다. 마치 언젠가 나와 잠자리를 가졌던 사람이 늘 목에 걸고 다녔던 캐논 미러리스 카메라로 선명한 장면을 담은 것처럼.


처음처럼 행동하기. 모텔에 들어가기 전 괜히 무서워하는 척도 해주고, 방에 들어가기 전 문을 어떻게 여는지 모르는 척도 해 줬다. 문제는 그 애는 정말 처음이었던 것이다. 불 끄는 법을 몰라서 우리는 섹스하기 전까지 불을 다 켠 채로 있었다. 답답하긴 했지만 귀여웠다. 편안했다. 뒤로 할 때 엉덩이를 조금 더 들었지만 때려 주지 않았고, 쌀 것 같다고 할 때 혀를 내밀었지만, 입에 싸 주지 않았다. 뭐야. 매너적이잖아?

원래 섹스는 이런 거였나. 섹스가 끝나고 금연룸인데 왜 담배 냄새가 나는 거냐며 투덜대는 애인 어깨에 기대 생각에 잠겼다.


처음으로 돌아가 볼까. 내 첫 섹스는 엉망이었다. 스무 살 여름. 좋아하던 오빠와 잤다.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내 처음을 주면 나를 사랑해 줄 것 같아서 기대를 걸어 봤다.

아팠다. 축축했다. 끈적거렸다. 불편했고 찝찝했다. 빨리 집 가서 편하게 자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자고 나니 연락이 끊겼다. 소위 말하는 먹버를 내가 당한 건가?

원래 어른의 연애는 이런 거야?


다음 섹스는 어플이었다. 연애보다 일탈을 원했다. 처음 보는 사람과 몸을 섞는다는 게 꽤 자극적이었다. 그렇게 어플에서 만난 남자는 내 처음을 가져간 남자보다 훨씬 다정했다. 입에 묻은 음식을 닦아 주기도, 목도리를 다시 고쳐 매주기도 했다. 길을 걸을 때면 늘 나를 도로 안쪽으로 걷게 했고, 손을 꼭 잡으며 걷곤 했다. 이게 사랑인가?

어쩌면 시작은 어플이지만 우리 꽤 좋은 사이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든 어느 날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진지하게 만나 보는 게 어떻겠냐고. 그때 그가 하던 말.

"왜 이래. 감정 섞이면 힘들어진다니까. 우리 그런 사이 아니잖아?" 하하. 결국 똑같구나. 위선 섞인 다정함이었던 거야.

그럼 우리는 무슨 사이였지. 결국 목적은 섹스. 그걸 깨달은 그날. 그 사람과 연락을 끊었다.


다음 섹스도 다를 건 없었다. 하지만 이제 가식과 위선은 뺀. 어차피 뜯어서 버릴 예쁜 포장지에 선물을 감싸 주는 것을 어릴 때부터 싫어해서.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것이 좋아서. 결국 목적이 섹스라면 그냥 섹스만 하면 되잖아?

파트너를 몇 명 두고 섹스를 했다. 사실 그 정도로 결핍된 사람도 아니었는데, 성욕이 센 편도 아니었는데. 그냥 텅 빈 마음에 자꾸만 무언가를 채워 넣으려고 발악했다. 채운다고 채워지지는 않았고 공허함만 남았다. 그런 생각이 들던 그날도 섹스는 했고, 내가 위로 올라가 흔들어 댈 기분이 아니라서 그냥 가만히 누워 있기만 했다. 그때 잔 남자의 이름도 기억이 안 나지만, 나와 나이가 같았었는지 많았는지 모르겠지만, 그가 한 말. "이제 너도 좋은 사람 만나야지. 우리 이런 관계 그만두자."


그러다 사랑을 했다. 처음 받는 사랑은 내게 과분할 정도였다. 나의 첫 연애 상대이자 전애인이었던 사람은 나의 과거까지 감당했다. 그는 내 과거를 우연한 계기로 알게 되고, 그는 내 앞에서 하염없이 울었다. 흐느꼈다. 울부짖었다. 이별의 이유가 나의 부끄러운 과거는 아니었지만, 언젠가 이별하는 날 그는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가벼운 섹스는 이제 관두라고. 그거 정말 너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 가슴에 못 박는 거라고. 만약 또 그렇게 산다면 우리가 남이 되고도 마음이 아플 것 같다며, 소중했던 사람이 그렇게 사는 꼴을 보면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고 했다.


돌아와서 현실. 이것이 나의 과거. 처음인 애인 앞에서 처음인 척하기. 어색한 척하는 것이 어색하지만 어색한 척하기. 숨길 수 있으니까. 영원한 비밀 유지는 나의 재량이니까. 오늘도 나는 부끄러운 척 불을 끈다. 신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