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을 만큼 먹고도 애인과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낸 경험이 없었다. 소개팅 비슷한 것을 크리스마스에 해 본 적은 있다마는 잘 된 적은 한 번도 없었고, 만나는 애인이 있더라도 무슨 징크스에 걸린 것처럼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기만 하면 약속이라도 한 듯 이별했다. 그 탓에 내 인생에 있어서 항상 크리스마스 전후로는 애인이 없었지만, 그해 크리스마스는 달랐다. 십일월의 초입에 서서 함께 사랑을 열었던 나의 애인. 그녀를 만나기 전에도 내게는 몇 번의 사랑이 있었지만, 크리스마스 언저리에 만나 기념일을 함께 보내게 된 그녀가 나에게 주는 의미는 애인 그 이상의 무언가였으리라. 나는 그녀가 마침내 나의 크리스마스를 빛내 줄 여인, 천사와도 같아 보였다. 나는 그렇게 믿었다.
서울의 겨울은 춥다. 그 살벌한 추위는 크리스마스에 최고조를 찍고야 만다. 평소에는 그것보다 덜한 날씨에도 설산을 정복하러 떠나는 산악인처럼 꽁꽁 싸매고 다니는 사람들의 옷차림도 크리스마스만 되면 약속이라도 한 듯 얇아진다. 어느 크리스마스에는 할로윈 저녁에 입어도 추울, 가릴 부분만 겨우 가리는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도 본 적도 있었으니 다들 크리스마스라는 기념일 하루에 얼마나 진심인지, 참. 아, 매년 크리스마스만 되면 알 수 없고 불필요한 서글픔에 잠겨 울적해지곤 했다. 애인이 없다고 한들 골방에 틀어박혀 있을 수만은 없는 법이라 적적함을 달랠 겸 친구들이나 만나려고 연락이라도 하면, 또, 대단하신 나의 친구들께서는 하나같이 기념일을 오붓하게 함께 보낼 애인 하나씩은 두고 계셔서 나는 늘 환영받지 못했고, 어렵게 잡은 친구들과의 약속 자리에서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낼 나의 여인을 찾아 나서더라도 퇴짜를 맞기 일쑤였다.
아아, 나의 처량했던 지난 크리스마스여. 애인과 함께하는 그해 크리스마스 밤에는 눈이 내리지 않아도 좋을 것만 같았다. 크리스마스라는 개념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더라도 나는 웃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모든 것을 함께할 애인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것이 용서되었다. 애인과 함께하는 첫 크리스마스였으니까.
서울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은 지 몇 번이나 되었지만, 막연한 건 마찬가지였다. 크리스마스에 정석적인 데이트 한 번 안 해 본 터라, 전날 밤까지만 해도 익숙했던 서울이 크리스마스이브가 되니 나를 이방인으로 만들었다. 애인과 처음 만난 날부터 '크리스마스 때 어디에 가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했고, 그러다 떠올린 동네가 명동. 명동으로 가야 할 것 같았다. 그래, 나는 명동을 잊고 있었다. '포차' 하면 종로, '한강' 하면 여의도를 떠올리는 것이 하나의 관념처럼 잡혀 있듯, '크리스마스' 하면 명동인데, 나는 여태 그것을 떠올리지 못했던 것이었다. 사실 떠올릴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커다란 트리 아래에서 사랑과 영원을 기약하는 수많은 연인들 사이에서 나 홀로 어울리지 못하고 그제서야 사랑을 함께할 사람을 찾는다는 것은 여간 우스꽝스러운 일처럼 보일 수밖에 없으니까. 나는 크리스마스 명동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지만, 다시 강조하지만, 그해 크리스마스에는 애인이 있었으니까. 나는 그들 사이에 서서 아름답고 소중한 내 애인의 눈망울을 보면서. 그 세상에 빠져들면서, 나는 크리스마스를 그릴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이 생긴 것과도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명동. 그 겨울 크리스마스 명동은 나의 예상을 아주 빗겨나갔다. 영하 10도 훨씬 아래에서 맴돌던 그 추위는 내 살을 아릴 정도로 파고들었고, 명동이라는 상징적인 장소에 모인 사람의 수는 마치 일개 사단 병사들을 한데 모아둔 것에 몇 배는 되어 보였다. 그 탓에 평소라면 오 분도 안 되어서 도착할 거리를 '죄송합니다. 지나가겠습니다' 따위를 남발하며 가야 했기에 이동 시간은 배로 걸렸고, 수많은 인파 속에서 혹시 모를 치한이 튀어나와 나의 애인을 추행하거나 내 주머니 안에 있는 지갑을 가지고 갈까 봐 마음을 졸여야 했고, 나는 긴장을 풀 수가 없었다. 작고 귀여웠던 나의 애인은 내게 잘 보이고 싶었던 것인지 크리스마스라는 감상에 한껏 젖기 위해서였는지 초겨울에 입어도 추울 법한 얇은 니트 원피스를 달랑 하나 입고 나왔고, 그 덕에 평소보다 배로 아름다워 보이기는 했다마는 내복에 니트를 껴입고 코트까지 입은 나도 추웠는데 그 애는 오죽했을까. 연신 몸을 파들파들 떨며 날씨가 꽤 춥다는 말을 반복하는 애인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손을 잡고 팔짱을 끼고 내 주머니 안에 그녀 손을 끄집어 넣는 것밖에.
"우리 오늘 케이크를 만들자! 딸기가 잔뜩 올라간 케이크 말야." 나는 당황스러웠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으니까. 크리스마스니까 물론 하고 싶은 것이 몇 가지 있으리라는 사실은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기껏해야 산타 모자 쓰기라든가 캐롤을 틀고 트리를 꾸미는 것 정도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딸기 케이크 만들기'란 아예 예상 밖의 일이었다. 케이크. 일반적인 케이크도 아닌 딸기 케이크. 우리는 딸기가 잔뜩 올라간 케이크를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시간이 없었다. 정확한 시간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만, 애인이 그 말을 꺼낸 시간은 저녁 아홉 시에서 열 시쯤이었으니, 수만 명의 사람이 길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는 명동 시내 한복판에서 가장 가까운 마트까지 걸어서 족히 십오 분은 걸릴 터. 하지만 나는 안 될 것 같다는 말로 애인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애인에게만큼은 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었다.
"딸기 케이크 근사하다. 그래, 우리 함께 만들어서 먹는 거야. 내가 구해 볼게."
큰소리를 쳤다마는 사실 애인과 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으리. 그날 하루에만 해도 수천 쌍의 연인 중 딸기 케이크 만들기를 계획한 연인들이 수백 쌍은 될 터인데, 백화점은 진작 문을 닫았고, 동네 슈퍼와 별반 다를 것 없어 보이는 명동거리 마트에서 생딸기 찾기란 불가능했다. 불가능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일대 마트뿐만 아니라 을지로와 명동의 경계 언저리에 위치한 마트까지 일일이 다 들렀음에도 없었기에. 아, 정말 방법이 없어 보였다.
"이제 그만 돌아가자, 딸기 케이크 만들지 않아도 돼. 정말이야." 애인은 풀이 죽은 티를 애써 내지 않으려고 일부러 과장되게 말을 했다. 정말로 딸기 케이크를 먹지 않아도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겠지만, 나는 나의 첫 크리스마스를 완벽하게 장식하고 싶었다. 애인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서 그랬던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어쩌면 나의 애인에게 딸기 케이크가 주는 의미는 나에게 있어 크리스마스와 비슷한 의미를 지니는 무언가인 것 같아서, 나는 그 어떠한 실망이나 과오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
명동 시내에서 가장 가깝다고 하여 애인과 만난 첫날부터 예약해 둔 그 고급 호텔에 애인을 먼저 들여보냈다. 나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했다. 귀는 얼어붙어 감각이 없었고, 손가락은 구부러지지도 않았으며, 구두 신은 발끝은 아려왔지만, 나는 딸기를 만들어야 했다. 딸기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나의 크리스마스는 그것으로, 그렇게 다시 절망스러운 이야기로 끝날 것이다-는 생각으로 나는 딸기를 찾아 나섰다. 마트를 몇 군데나 돌아다녀도 딸기를 찾을 수가 없었다. 불로초를 구해다 오라는 명을 받은 신하의 기분이 이러했을까. 딸기를 구하지 못해도 문제가 될 일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애인의 시무룩한 표정을 보기 싫었다. 일찍이 준비하지 못한 애인이 스스로를 탓할까 봐, 그 아름다운 눈에서 행여 슬픔이 묻어나오는 꼴은 죽어도 보기 싫었다. 딸기는 사랑을 위해서, 애인의 동심과 희망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딸기를 구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어떻게 딸기를 구한다고 한들, 케이크 시트와 생크림을 구하지 못한다면 크리스마스는 아예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마는 것이었으니까. 나는 크리스마스를 지켜야 했다. 그러다 떠오른 생각에 인근 빵집에 들렀다. 평소라면 진작 문을 닫았을 법한 가게들도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손님 하나라도 더 받아 보려는 모양인지 늦은 시간까지 문을 열고 있었다. 나의 목표는 '딸기'에서 '딸기 케이크'로 바뀌었다. 프랜차이즈 빵집부터 무슨 무슨 베이커리까지 돌며 딸기 케이크를 찾았지만, 사실 지금 생각해도 미친 짓이 아니었나 싶다. 빠르면 한두 달 전부터 케이크를 예약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당일이 되어서야, 그것도 가장 인기 있다는 딸기 케이크를 찾고 있었으니 말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들 하던가. 이제는 통증조차 느껴지지 않는 손과 귀를 감싸고, 패잔병처럼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아, 이번 크리스마스도 여느 때와 다르지 않구나, 하며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빵집을 하나 발견했다. 아아, 그토록 찾던 딸기 케이크가 그곳에 있었다.
"혹시 이 케이크 살 수 있을까요?" "아, 사실 예약된 케이크인데, 예약 시간이 여섯 시간이나 지났는데도 예약자분이 오시지 않아서요. 저희도 이제 마감을 해야 해서... 구매하시겠어요?" 나는 그 이름 모를 연인들에게 고마운 나머지 눈물까지 날 지경이었다. 타인의 불행을 나의 처지와 비교하여 행복을 느끼면 안 되는 일이지만, 만약 그들이 행복했더라면 케이크가 없어서 내가 불행했을 것이고, 그들이 기념일에 좋지 못한 일을 겪은 나머지 내가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이니까. 어찌 보면 행복과 고통의 총량에는 변함이 없으니 달라진 것이 없다는 생각에 잠기고- "초도 필요하세요?" "초는 한 개만 부탁드릴게요. 아, 그리고 혹시 작은 플라스틱 통이 있다면 그것도 하나 부탁드릴게요." 고맙고 친절했던 그 빵집 주인은 재료를 보관하는 통이 하나 남았다며 건네고, 나는 전달받은 케이크를 개봉하여 케이크 위에 올라간 딸기를 몽땅 그 통 안에 담았다.
패잔병과도 같아 보였던 나의 힘 없는 걸음걸이는 불과 십 분도 채 되지 않아서 승전국의 장수와 비슷해졌다. 내 손으로 크리스마스를 지켜낸 듯한 기분이었다. 정신이 없어서 휴대폰을 확인도 못 했는데, 애인으로부터 부재중 전화가 대여섯 통 정도 와 있었다. 나는 전화를 거는 대신 크리스마스를 들고 애인에게 갔다. 내 손에는 크리스마스와 애인의 기대가 걸려 있었으니까. 호텔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열며 무슨 일이 있었길래 전화가 안 되는 거냐며,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고 있냐는 애인에게 "메리 크리스마스. 우리 딸기 케이크 만들자." 황홀함과 감격에 젖어 촉촉해진 애인의 눈망울을 나는 아직 잊지 못한다. 한동안은 그날 그녀가 내게 보인 눈빛이 내 삶의 이유이자 동기가 될 정도였으니 말이다. 우리는 통에 담긴 딸기를 케이크 위에 하나하나 올리며 서로 다른 꿈을 꿨다. 너는, 너는 크리스마스에 대한 행복에만 젖어 있었기를. 맛있고 퍽 아름다웠던 딸기 케이크에 대해서만 생각했기를 바란다. 그해 겨울 크리스마스 명동에서 있었던 일. 다들 메리 크리스마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