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19 아, 꿈만 같은 하루였다. 사실 좋아하는 이성과의 데이트란 언제나 꿈만 같은 일이라서, 어릴 때에는 용기도 요령도 없어서 꿈도 꾸지 못할 정도로 큰 무언가였던, 평생의 소원과도 같은 일이었다. 이제는 용기와 요령이 좀 생긴 걸까. 사람이라면 호감 가는 이성과 단둘이 붙어 있을 때 행복함을 느끼기 마련이다. 기억에서 사라지기 전, 오늘 예은을 밖에서 처음 만났을 때의 감정을 기록해 볼까. 과하게 꾸미지 않고 그 수수함이 묻어나 오히려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던 예은은 정말 아름다웠다. 그래도 아직은 늦겨울이라 코트는 좀 추울 법도 한데 예은은 밤색 롱코트를 입고 나왔다. 그 모습이 마치 귀여운 아기 다람쥐 같기도 해서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나 보다.
무슨 좋은 일이 있길래 웃냐는 예은의 물음에 나는 그냥 날씨가 좋아서 웃음이 나온다고 했다. 첫 데이트 치고는 생각보다 불편함이 없었고, 빵집에서 안면을 튼 사이라 그런가 어색하지 않았다. 손끝 하나 스치지 않고도 가슴이 뛸 수 있다는 사실을 오랜만에 느꼈다. 그래, 사랑은 가슴이 시키는 대로 해야 돼.
02.28 한동안 일기를 쓰지 않다가 오랜만에 일기장을 펼친다. 사실 일기란 매일 기록한다는 데에서 의미가 있는 것인데 그렇게 매일 쓰지는 못하겠다. 훗날 일기를 비워 둔 날에 대한 궁금증이 가득해질 것만 같지만, 아니, 과연 그렇게 될까?
모르겠다. 내가 쓴 일기를 다시 보기나 할까?
그런 날이 온다면 조금 더 성의 있게 일기를 쓸 걸 후회하려나.
요즘은 말이다. 하고 있는 일이 잘 안 풀린다. 일기에까지 일에 대한 이야기를 적으며 스트레스받고 싶지는 않지만, 결과가 노력이나 열정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서 회의감이 든다. 누군가를 탓할 수도 없는 법이고,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나의 노력 부족을 탓할 수밖에 없다. 결국에는 또 내가 문제다. 이상하게도 이런 생각이 들 때 예은이 보고 싶어졌다. 그냥 예은을 만나면 나의 걱정과 불안이 눈 녹듯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나의 목적을 위해 예은을 수단으로 사용하고 싶지는 않아서 연락은 관뒀다.
그럼 내가 오늘 느낀 감정은 무엇일까. 내가 지금 느끼는 예은에 대한 감정은 단순한 호기심일까?
아니면 사랑일까?
03.04 빵집에는 들르지 않고 밖에서 예은을 만난 지 벌써 세 번째다. 예은의 연락처를 얻기 전까지는 매일같이 빵을 사러 빵집에 갔다마는, 요즘 빵집에 가지 않는 이유는 원하는 것을 얻었기 때문이라든가 예은에 대한 나의 호감이 식어서가 아닌, 빵이 정말 질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제는 길가다가 빵 굽는 냄새만 맡아도 속이 안 좋아진다. 빵을 너무 많이 먹었다. 그건 그거고, 나는 최근 고민이 생겼다. 이 문제는 일기에 쓴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니 홀로 며칠만 더 고민해 보다가 결론을 내려야겠다.
03.06 요 며칠 앓고 있던 고민의 해답을 찾았다. 답이 정해진 문제라기보다 결국 내가 어떠한 선택을 하느냐에 대한 문제였는데, 그 문제가 사실 무엇이었냐면 앞으로 예은과 어떠한 사이로 남을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예은에게 관심이 있고, 예은은 예쁘고, 예은은 친절하고, 그리고 예은은, 모르겠다. 그런 그녀에게 호감을 느끼지 않을 사람 하나 없을 텐데, 나까지 예은에게 빠져버렸으니. 그날 우리는 알바생과 손님의 입장에서 만난 것이고, 예은이 거절을 잘 못 하는 성격이라 나를 몇 번 만나 준 것은 아닐는지, 우선은 예은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가 너무 성급하게 빠져버린 것은 아닌지.
대충 이런 식의 고민이었는데, 나는 고민을 전부 접었다. 나는 예은에게 고백해야겠다. 고백이라고 해서 어려울 것 없다. 내 마음을 알려야 할 것 같다. 내가 너무 성급하게 예은을 좋아하게 되었나 싶어서 생각해 보면 또 그건 아니다. 예은에 대한 나의 감정이 확실하다면, 결과가 어떻게 되든 고백 한번 해 보면 되는 것 아닌가.
그깟 고백이 뭐라고.
왜 하기 전만 되면 늘 속이 매스껍고 울렁거리는지.
그래, 고백하기 전까지, 고백하고 대답을 듣기 전까지 일기를 쓰지 않도록 하겠다.
03.08 일기를 생각보다 빨리 쓰게 되었다. 내 마음을 고백하기 위해 불러낸 예은의 모습이 또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순간 만난 이유를 잊어버리기까지 했다. 고백은 성공적이었다. 솔직히 아직까지도 이것이 꿈인지 아닌지 실감이 잘 안 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연애를 한다니. 아니, 좋아하니까 연애한다는 것이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사랑의 전개 과정은 정말 꿈만 같아서, 이제는 내 입으로 예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너무나도 설렌다. 아, 예은이 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