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09 연애라는 것을 처음 해 볼 때는 설렘을 감당하지 못한 채 이 상황이 꿈인가 생시인가 자꾸만 확인하게 되고, 다음 날 아침 눈을 떠 혹시나 꿈이 아니었는지 다급한 마음에 함께 찍은 사진을 본다거나 나누었던 연락을 확인해 보지만, 이제 그럴 나이는 지났다. 어쩌면 과거의 것이 더 뜨겁고 진실된 사랑이 아니었을는지. 예은과 연애라는 것을 한 지 이틀 차에 접어들었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그러니까 나는. 나라는 사람은 참 웃기다. 분명히 사랑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에 대하여 누구보다 잘 알고, 사랑이 내 인생을 구원해 주지 못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지만, 늘 사랑에 기대를 걸고 실망한다. 인생이 바뀌려면 사랑이 아닌 더욱 값진 무언가를 해야 할 텐데. 그것이 무엇일까?
03.11 어제는 예은과 만나 데이트를 했다. 데이트라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거창한 것이 아니다. 만나서 밥을 먹고 카페에 가서 수다를 떨고, 산책을 하고, 재밌는 영화가 상영 중이면 영화관에 가서 영화도 한 편 보고. 마치 세트장에서 움직이는 배우들처럼, 우리는, 나뿐만 아닌 우리들은 모두 그렇게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누가 시킨 것처럼 데이트를 한다. 그런데 어제의 데이트는 여태까지의 데이트와는 사뭇 달랐다. 아직은 봄이라고 하기에 쌀쌀한 감이 있지만, 그래도 날씨가 꽤나 풀렸기에 나는 청계천 산책을 권했고, 예은도 흔쾌히 수락했다. 여기까지만 들었을 때는 우리의 데이트가 여느 연인들의 데이트와 비교하였을 때,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일 터인데, 그런 생각이 들 때쯤 예은이 엉뚱한 제안을 해 온 것이었다. 청계천 강물에 발을 담그고 걸어 보자는 제안에 나는 잠시 동안 고민했지만, 결국 발을 담그고 말았다. 우리는 마주보고 한참을 깔깔대다가 맨발로 산책로를 걸었다. 발이 시려워 감각이 사라질 정도였지만 즐거웠다. 벽이 부서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03.13 내가 진정으로 갈망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던 적이 있었지만, 어떻게든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다간 어떠한 것도 되지 못한다는 현실을 일찍이 깨달았다.
어떻게든 잘살아 보려고 하는데, 그냥 남들 살 듯 살고 싶은데 그게 참 어렵다. 무얼 하며 살아가야 하나. NCS도 영 내 적성에 안 맞는 것 같다.
03.14 오늘은 화이트데이였다. 일전의 발렌타인 데이 때 예은에게 빚을 진 것이 있으니 그것을 갚을 겸 선물을 하나 사 들고 빵집으로 갔다. 그러다 예은이 한 손님과 웃으며 떠드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수줍은 듯 입을 가리고 웃는, 그 눈웃음과 입꼬리는 나에게만 제공되는 것이었으면 했는데. 물론 예은의 직업 특성을 고려한다면 이상할 일 없는 상황이었지만, 가끔은 이성적인 판단보다 본능적인 촉이 더 옳을 때가 있는 법이다. 그 남자는 예은과 어떤 관계인 것일까.
